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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백두대간 >> 백두대간이란 무엇인가?
▲ 임걸령의 저녁 노을.

간(大幹)이란 큰 줄기를 뜻하며,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m)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를 말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한다.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강산이 된다. 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1대간 1정간 13정맥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의 모든 산줄기와 통하며 우리 산의 시발점이며, 드넓은 만주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정점이다. 이 땅의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우리의 전통적인 지리인식체계의 바탕이었다.

백두대간은 그 길이가 약 1625여킬로미터 높이는 100미터에서 2750여미터까지 다양하다. 함경남도 흥남과 비슷한 위도의 마유령 북쪽은 모두 1000미터가 넘지만 그 아래 남쪽으로는 금강산(1,638m), 설악산(1,708m), 오대산(1,614m), 태백산(1,667m), 덕유산(1,614m), 지리산(1,915m)만이 1500미터 이상이다.

남북을 관류하는 세로 줄기인 까닭에 예로부터 개마고원, 영동·서, 영·호남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의 곳곳에 있는 황초령(1,200m), 추가령(586m), 대관령(832m), 조령 등의 고개가 주요한 교통로가 되어 왔다.

1대간 1정간 13정맥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펼쳐져

 
 
▲ 삼도봉 정상 헬기장에서의 아침.

백두대간이 완성된 개념으로 알려진 것은 조선 후기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1769년 영조 45년)에 의해서이다. 총 102혈(쪽)의 한 책으로 우리 족보와 같은 구성으로 씌어진 이 책에는 백두대간, 장백정간, 13정맥의 계통이 나타나 있다. 산줄기 이름은 산이름으로 된 것이 백두대간, 장백정간 등 두 개이고 나머지는 11개 모두 강이름에서 따와 그 강의 남북으로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산줄기의 순서 역시 백두대간의 북쪽으로부터 가지친 차례대로 순서를 정했다. 대간에서 갈래쳐나온 산줄기는 모두 14개인데(1정간 13정맥) 이것들은 우리나라 열 개의 큰 강을 구획하는 울타리들이다. 그런 연유로해서 정맥 이름 또한 에워싸고 있는 물길에서 따온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정맥은 산줄기의 높이, 규모, 명산 등과 관계하지 않고, 아무리 낮고 미약한 김포평야의 낮은 구릉지대라도 한강 남쪽 유역을 가르는 능선이므로 중요한 한남정맥의 줄기가 된다. 하나의 대간과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 여기에서 가지친 기맥으로 이 땅을 가늠한 산경은 이 땅의 모든 생활영역의 자연스러운 분계를 이루고 있다.

배산임수의 취락형성과 발달, 그리고 식생활과 주거양식의 구분도, 언어권의 분포도, 옛보부상의 상권과 오일장의 권역도 등이 산경의 산줄기로 쉽게 알 수 있다. 산지가 국토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산을 옳게 인식하는 것은 곧 국토를 옳게 인식하는 출발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물줄기처럼 끊이지 않는 맥으로 보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산과 강이 공존하여 산은 물을 낳고 물은 산을 가르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비록 높은 두 산이 이웃해 있어도 사이에 물이 있으면 산줄기는 돌아갔으며 평탄한 지역의 독립봉이나 평야에도 면면이 지맥이 흘러 바다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산이 그 고저를 가리지 않고 나무와 가지와 줄기처럼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전면적인 국토인식을 뜻한다.

잊혀진 백두대간 1980년대에 부활

 
▲ 덕유산 능선. 햇빛이 들지 않는 북사면이라 이른 봄이지만
눈꽃이 피어 있다.
 

이 땅의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우리의 전통 지리인식의 바탕이었다. 「택리지」의 이중환과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성호사설」의 이익이 모두 여기에 기초하여 지도와 지리서를 썼다. 그러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여 역사와 정신을 모조리 훼절하면서 백두대간의 개념은 뒤안으로 사라지고 그들이 지은 이름인 마천령, 함경, 태백, 소백 등의 이름만이 공식적인 개념으로 남았다.

1900년과 1902년에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광물탐사사업의 학술 책임자였던 고또 분지로는 탐사보고서를 펴낼 때 조선의 지리개관(The Orographic Sketch of Korea)과 조선지질도를 첨부했다.

그러나 지질학 교수였던 그는 당연히 지질 구조선에 입각하여 산줄기를 잘랐기 때문에 백두대간은 다섯으로 토막 나고 산맥은 강을 건넜으며 적유령, 마식령 등의 고개가 산맥 이름으로 붙었다.

사장되었던 백두대간이 다시 알려진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지도를 만드는 이우형씨 등이 「산경표」를 발굴하여 옛 개념을 되살린 것이다. 대간 종주가 진지하게 시작된 것은 88년 한국대학산악연맹 49명의 대학생이 종주기와 백두대간을 연회보 「엑셀시오」에 소개하면서부터고, 그후 월간「사람과 山」이 창간 1주년 기념으로 90년 11월호부터 백두대간 종주기사를 연중특집으로 다룸으로써 전국 산악동호인들에게 백두대간 종주붐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대학생들이 아니고서야 60일이란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직장인들은 1달에 두 번 정도 주말을 이용하는데 완주하자면 약 2년 정도가 걸린다. 웬만한 각오로는 힘든 일이다. 이런 점을 이용해 전국 안내산악회 가운데 절반 이상이 매주말 백두대간 구간 종주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40대 이후부터 70세까지 중장년층 등산동호인들에게 특히 각광받고 있다. 백두대간은 오천년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이어져온 한민족의 공간적 터전이다. 통일조국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우리 산줄기의 기본 개념인 백두대간을 원상복구하는 것은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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