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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순의 풍수이야기 _ 강릉

 

천하제일의 산수

 

글 사진 · 김규순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하루 앞두고 강릉으로 답사를 떠났다. 일기예보대로 평창에 들어서자 봄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이 펑펑 내리면서 세상은 흑백사진으로 변해갔다. 자동차가 순간순간 미끄러지면서 달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평상시에는 달갑지 않은 터널이었지만, 터널 안 도로가 미끄럽지 않아 반가웠다. 강릉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네 가지 요소를 지닌 고장이다. 네 가지 요소란 지리·생리·인심·산수이다. 강릉의 지리는 백두대간에서 동해로 급하게 내려오다가 100~300m 고지의 낮은 구릉을 형성하면서 다채로운 풍수지형을 만들고 있다. 생리는 작은 개천이 발달하여 곳곳에 논밭이 널려 있어 농작물 생산이 풍수하다. 인심은 오랜 세월 핍박받지 않은 여유로움이 묻어나오는 고장이다. 산수는 고개만 들어도 백두대간이 보이고, 1시간이면 심산유곡에 다다를 수 있다. 유유자적하면서 살 수 있는 고장이다. 치열한 삶을 원하거나 저돌적이고 맹렬한 도전이 필요하거나 승부욕이 강하고 끝없는 성취욕을 가지고자하는 사람에게는 코드를 맞추기 힘든 순수자연을 품은 공간이다.

 

영동지방의 오랜 중심도시

강릉이라면 우아하고 맑은 고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려 후기 무신인 김방경의 4세손인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은 “강릉의 산수가 천하에서 첫째”라고 노래했고, 조선 전기 문신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나는 생각하건대, 우리나라 산수의 훌륭한 경치는 관동이 첫째이고, 관동에서도 강릉이 제일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폭설을 헤치고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강릉대도호부를 방문했다. 고려시대부터 자리 잡은 관아였다. 앞에 남대천이 있고 그 건너 남산이 있다. 동해안에는 양양 남대천, 강릉 남대천, 평해 남대천이 있다. 남대천이라는 지명은 지방관아를 중심으로 남쪽에 있는 큰 개천을 말한다.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때에 훼손이 되었고 임영관의 부재가 남산의 오성정(五星亭)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의 건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물은 강릉대도호부 객사문(국보51호)이다. 강릉에도 신라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교사찰 유적이 광범위하게 발견되는데, 오랜 기간 영동지방의 가장 중심도시였다는 증거이다.

 

김유신, 태조, 세조가 다녀간 고을

강릉의 진산은 대관령이다. 대관령 산신령은 김유신 장군이다. 지금도 대관령 산신각에는 김유신 장군을 모시고 있다. 김유신은 화랑으로 강릉에 왔을 때 대관령 산신에게 검술을 배웠기에 죽어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산신이 되어 강릉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강릉은 한양에서 먼 고을임에도 태조 이성계와 세조가 직접 다녀갔을 정도로 뛰어난 경관과 삶의 조건이 우수한 고을이었다. 강릉의 명승지는 경포대와 한송정으로 예부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한송정은 고신라시대에 사선(四仙)이 차를 다려 마시며 노닐던 명승지였으나 지금은 동해지방해양경찰청강릉 항공대가 차지하고 있어서 출입조차 불가능하다. 그 옆에 문수보살이 지었다는 한송사지가 있었다. 한송사지에서 반출된 석조보살좌상은 국보 124호로 춘천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강릉 불교문화가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두 가문의 흥망성쇠와 외손발복지지

강릉은 백두대간과 경포대 그리고 동해가 어우러진 경관이 빼어난 고장이어서 그런지 출중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강릉의 대표적인 가문이라면 강릉김씨와 강릉최씨이다.

강릉김씨의 시조는 명주왕이라 칭했던 김주원이다. 그는 태종무열왕의 후손으로 신라의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폭우로 말미암아 알천을 건너지 못하자, 하늘의 뜻이라고 하며 군신들이 김경신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그가 원성왕인데 김주원이 고향인 강릉으로 낙향하자 명주왕의 칭호를 내렸다. 김주원의 맏이 종기(宗基)는 시중에 올랐으나 후손이 끊어졌다. 둘째아들 헌창(憲昌)도 시중에 올랐고 공주도독으로 있을 때에 국호를 장안으로 거사를 도모하였으나 실패하자 자결하였다. 현재 강릉김씨는 모두 셋째아들 신(身)의 자손들이다.

조선시대 강릉김씨 김광철의 딸이 허엽에게 시집을 갔다. 김광철(1493~1550)은 예조참판을 지낸 문인으로 풍수명당에 애일당(愛日堂)을 지어놓고 가문을 빛내는 후손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으나 허엽과 동침한 딸이 이곳에서 허균을 낳았다. 애일당의 뒷산 이름은 교산(蛟山)이다. 능선을 따라가면 해변가에 교문암(蛟門巖)이 있다. 교문암은 이무기였던 교룡(蛟龍)이 바다로 들어간 통로였다. 광해군 때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역모에 연루되어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 김제남(1562~1613)이 죽었다. 허균도 영창대군의 역모에 엮여 1618년 형장에서 사라지고 김제남은 부관참시 당한다. 허균이 자신의 호를 교산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이무기로 전락한다는 예언이었을까. 그의 소설 <홍길동전>은 조선 양반사회의 적폐를 고발함과 동시에 그의 이상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강릉최씨 최치운(1390~1440)이 오죽헌을 지었다. 오죽헌은 이율곡 선생의 생가이다. 최치운은 태종 때 과거에 급제하였고 세종 때 이조참판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의 차남 최응현이 살다가 딸에게 상속을 했다. 그녀는 남편 이사온과의 사이에서 낳은 둘째 딸 용인이씨에게 상속했으며, 용인이씨는 오죽헌에 살면서 신명화와 다섯 명의 딸을 두었는데 맏딸에게는 장인우(張仁友)가, 차녀 신사임당(申師任堂)에게는 이원수(李元秀)가, 셋째에게는 좌찬성 홍호(洪浩)가, 넷째에게는 권화(權和)가, 다섯째에게는 이주남이 장가를 왔다. 조선전기에는 부잣집 처가가 딸에게도 재산을 상속하였으므로 사위들은 처가로 와서 살았다. 신사임당은 홀로된 친정어머니를 돌보러 자주 강릉에 왔으며, 이곳 오죽헌에서 이율곡 선생을 낳았다. 오죽헌은 넷째 딸(남편 권처균)에게 상속되었다. 오죽헌은 모계로 3대를 이어서 상속이 진행되었으므로 최응현의 사위 이사온, 이사온의 사위 신명화, 신명화의 사위 권처균 등 세 명의 사위가 줄줄이 오죽헌으로 장가온 것이다. 최치운이 뿌린 풍수씨앗이 조선 유학의 대학자 율곡선생으로 꽃을 피우기까지 100년의 세월이 걸렸다.

강릉최씨는 이율곡(1536~1584)을, 강릉김씨는 허균(1569~1618)을 외손으로 보았으니 강릉은 외손발복지지가 아닌가? 오죽헌은 대학자를 배출하였고, 애일당은 시대를 앞선 모험가를 낳았으나 두 분 모두 명이 짧아 더 큰 뜻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역사의 반복은 운명과 숙명이 된다

김유신 장군이 강릉의 진산인 대관령의 산신이다. 그는 신라를 중심으로 삼한을 일통시켰지만, 망국의 왕족이었고 ‘흥무왕’이라는 칭호에 만족해야했다. 김주원도 왕이 되지 못하고 ‘명주왕’의 칭호에 그쳤다. 그 아들도 왕이 되려고 거사를 하였으나 실패하여 자결하였다. 이러한 기운이 허균에게도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허균도 교룡으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로 전락했다. 홍국영은 정조의 신임을 받아 외척이 되었으나 왕위계승문제에 개입하려다가 오히려 정치적인 제거의 대상이 되어 강릉으로 유배되었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듯이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면 운명이 되고 숙명이 된다. 땅의 기운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장벽이라 하면 그 땅을 피하던지 즐기던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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