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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로 즐기는 봄산

르포 _ 감악산

  

출렁다리~법륜사~묵은밭~까치봉~정상~장군봉~보리암~감악능선~출렁다리

발밑이 흔들린다, 봄이 밀려온다

 


감악산에서 시작됐다. 파주 설마리 골짜기를 잇는 150m 길이의 감악산 출렁다리는 2016년 9월 개장한 이래 14개월 만에 100만 명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했고, 그 위력에 감탄한 여러 지자체들이 부리나케 새로운 산악현수교를 만들거나 기존 다리들을 홍보하면서 ‘출렁다리’라는 관광 상품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나 감악산은 기슭의 현수교 하나로 설명하기엔 아깝도록 크고 다양한 매력을 갖춘 산이다. 출렁다리라는 첨단유행을 흔들흔들 건너, 봄볕 아래 빛나는 감악산 진경을 탐구해보자.

글 · 민은주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고통과 울음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듯, 매년 모든 봄은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 밑에서 치열하게 겨울을 깨부수며 솟아난다. 초봄의 산은 그래서 매 걸음 진격하는 계절의 기운을 마주하는 길이다. 낭창낭창 출렁다리를 흔드는 마파람이 사납지 않고, 탁 트인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연두색 없는 산천도 마냥 칙칙하진 않다. 희끗희끗 잔설이 남은 감악산 북사면 밑자락이 꿈틀거린다. 올해도 기어코, 봄이 깨어나고 있다.

 

출렁다리 건너 맞이하는 감악산 봄볕

150m 건너기가 만만치 않다. 평일에도 감악산 출렁다리를 찾은 이들은 적지 않고 대부분 다리 여기저기서 기념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병목현상과 정체도 봄 소풍의 일부인지라 다리 끝에서 끝까지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넘친다. 주차장에서 걸어서 10분, 사실 출렁다리는 감악산 산행에 포함되지 않는 진입로 구간이다. 가벼운 일상복 차림으로 감악산을 찾은 많은 이들은 다리 건너 운계폭포나 법륜사, 혹은 십분 정도 떨어진 운계전망대에서 다시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참으로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00대 명산 중 하나이자 가평 화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 개성 송악산과 함께 경기5악으로 꼽히는 감악산은 들인 공에 비해 돌아오는 즐거움이 커다란 산이다. ‘악(岳)’으로 묶인 다른 산과는 달리 울퉁불퉁 거친 절벽들도 막상 올라보면 그 산세가 수더분하고, 코스들도 대부분 10km 안쪽이라 당일산행에 부담이 적다. 파주, 양주, 연천에 걸쳐 개성 있는 코스들이 다양하게 얽혀있고, 산행이 부담스런 이들을 위해서는 21km 거리의 둘레길도 조성돼 있다. 무엇보다 맑은 날이면 북으로는 송악산, 남으로는 북한산이 훤히 보이는 조망이 으뜸이다. 그러니 이왕 출렁다리를 건넜다면 부디 감악산 능선에 올라 명산의 진면목을 만끽해보자.

법륜사는 예부터 감악산을 오르는 가장 대중적인 들머리다. 북쪽으로는 운계전망대를 지나 운계능선길이나 선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고 쉬엄쉬엄 둘레길 손마중길 구간을 따라갈 수도 있다. 동쪽으로 난 약수터 방향 등산로를 따라 감악산 정상으로 치고 오르는 코스도 인기가 많다. 감악산의 골짜기와 능선을 모두 즐기기 위해 취재팀은 법륜사에서 동쪽 계곡을 따라 묵은밭까지 오른 후 운계능선으로 빠져 감악능선까지 크게 휘감아 내려오기로 한다.

법륜사 명상의 숲 옆 텁텁한 너덜길을 오르자 널찍한 숯가마 쉼터가 나타난다. 감악산을 걷다보면 크고 작은 숯가마터 여럿을 만날 수 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 산 여기저기에 움막을 치고 숯을 굽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묵정밭이 된 화전터 역시 감악산이 오랫동안 그 품에 사람을 거두어왔음을 짐작케 한다. 묵은밭에서 좌측으로 짧게 치고 오르면 쌍소나무와 까치봉으로 이어지는 운계능선을 만나고, 직진하면 만남의 숲과 약수터를 지나 정상에 이른다. 이왕이면 길게 산행을 즐기고픈 일행들이 가파른 비탈을 따라 까치봉 능선으로 올라선다. 따사로운 봄볕이 목덜미를 덥히고 멀리 남쪽에서 부는 바람에는 향긋한 봄 냄새가 스며있다.

 

동서남북 풍경이 으뜸인 산

감악산의 감(紺)은 검은 빛을 띤 청색을 의미한다. 감색 짙은 바위산에 어울리게 하늘이 고맙도록 푸르다. 일단 운계능선에 닿으면 이후부터는 내내 감탄사가 쏟아지는 조망이 펼쳐진다. 휘고 굽은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를 지나 새부리처럼 뾰족한 암석이 있는 까치봉, 호쾌한 팔각정까지 모두 탁 트여 시원한 경치를 자랑한다. 남쪽으로는 천보산, 수락산, 북한산이 우뚝하고, 북쪽으로는 걸어온 능선을 따라 임진강, 그리고 가본 적 없어도 그리운 북녘 땅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아침 뉴스에 북미정상회담이 오르내렸던 날이라 북쪽을 바라보는 눈길이 더욱 각별하다.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북녘산천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며 길을 재촉한다.

감악산은 정상의 묘미가 적은 산이다. 철책 기다란 군 시설과 헬기장이 조성됐고 양주, 연천, 파주의 등산로가 교차해 산꼭대기라기엔 동네 장터 같은 분위기다. 너른 평지 한쪽에 서 있는 낡은 비석은 정상석이 아니라 파주시 향토유족 8호로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이 확인되지 않아 ‘몰자비’, ‘설인귀비’, ‘빗돌대왕비’ 등으로 불려왔는데, 신라 진흥왕순수비라는 설도 있고 당나라 설인귀 장국이 적성 출신이어서 그의 고향 땅 제일 높은 곳에 비석을 세우고 제향했다는 설도 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십분 정도 능선을 타면 정상보다도 풍경이 좋은 임꺽정봉이 나타나고 여기서 장군봉을 지나 보리암 돌탑공원까지 가는 길은 감악산의 백미라고 할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저거 볼트 아닌가요?” 취재를 함께한 김경락씨가 장군봉 정상에서 북사면을 가리킨다.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보니 거친 화강암에 쇠붙이가 반짝인다. 계단을 따라 장군봉 내려와 우측으로 돌아서자 슬랩과 페이스로 구성된 5~6개의 암벽등반 루트들이 눈에 띈다. 바위가 지천인 감악산은 훌륭한 암벽등반지이다. 부천 벽오동 암벽회 소속의 열혈 클라이머인 김경락씨가 감악산 정상 인근의 설귀암 암장, 도로변에 새벽암장 등도 개척되어 있다고 알려준다.

시원시원한 풍광을 즐기며 감악능선을 걷다보면 법륜사와 청산계곡길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연달아 나온다. 청산계곡길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하다보면 보리암 돌탑공원을 만나게 된다. 제각기 모양이 다른 12개의 돌탑은 한 개인이 오랫동안 쌓아올린 것으로 여러 매스컴에 소개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여기서 느긋한 등산로를 따라 삼십여 분을 걸으면 출렁다리로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출렁다리, 둘레길 조성으로 인기 상승

돌아가는 길에도 역시 출렁다리를 건넌다. 다리 앞에는 신형 감악산 등산코스 지도가 설치돼 있다. 양주, 연천, 파주에서 시작되는 복잡다단한 등산로와 손마중길(3,905m), 천둥바윗길(4,349m), 하늘동네길(4,689m), 임꺽정길(3,506m), 청산계곡길(2,275m) 예쁜 이름의 둘레길 다섯 코스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뒤를 돌아보니 감악산 정상의 수신탑이 가깝게 보인다. 출렁다리 구경삼아 찾았지만, 출렁다리만 보고 가기엔 아깝게 크고 아름다운 산이다. “봄꽃 피면 다시 와봐야겠어요.” “둘레길도 느긋하게 좋을 것 같아요.” 다음을 기약하며 건너는 출랑다리는 어쩐지 아침에 비해 그 거리가 짧아진 느낌이다. 출렁다리 아래로는 45m의 허공, 그 사이로 살랑살랑 남풍이 분다. 꽃 한 송이, 연두색 새싹 한 잎 보지 못했지만 감악산 산행 내내 발바닥 아래 새로운 계절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출렁출렁 발밑으로 봄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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