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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 제주의 숲길

 

작은 제주, 비양도 트레킹

한림읍 비양도 여행법

글 사진 · 이승태(편집위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인 제주도는 동서남북 각 방향에 사람이 사는 유인도를 품고 있다.

동쪽엔 누운 소를 닮았다는 우도가 아름답고, 북쪽 완도와의 사이 상·하추자도는 낚시인들에게

성지로 통하는 큰 섬이다. 남쪽바다엔 청보리 축제로 유명한 가파도와

국토의 최남단 섬 마라도가 신기루 같고, 서쪽엔 제주의 유인도 중 가장 작은 비양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서 본섬을 마주하고 있다.

 

어린왕자가 사랑한 섬 비양도

협재해변에서 건너보이는 비양도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쏙 빼닮았다. 아무리 봐도 똑 같다. 실제 비양도에 있는 초등학교 벽엔 어린왕자와 그의 절친인 여우가 비양도를 보며 코끼리를 닮은 보아뱀을 연상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비양봉 너머엔 바다를 건너려는 간 큰 코끼리를 닮은 바위도 있다.

비양도는 내게 숙제 같은 곳이었다. 그간 제주도를 수십 번 갔었어도 비양도는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가려고 할 때마다 바다가 심술을 부려 길이 막히거나 시간이 애매했기 때문. 이번엔 아예 작정을 하고 찾았는데, 다행히도 모든 여건이 술술 풀려서 첫 배를 탈 수 있었다.  

비양도는 0.59㎢의 면적에 해안선 총 길이가 3.5km밖에 안 될 정도로 제주의 여러 유인도 중에서 가장 작고, 한림항에서 배로 14분이면 닿을 만큼 본섬 제주도에서 무척 가깝다. 부둣가에서 보니 비양도는 비양봉 그 자체다. 섬 전체가 하나의 봉우리고 또 오름이다. 둥근 비양봉 자락에 예쁜 지붕을 한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형국이다.

“비양도 해설 듣고 가세요~!”

배에서 내리자마자 탐방객을 향해 외치는 소리에 발길이 향한 곳. 기분 좋은 미소를 가진 지질공원해설사가 비양도 탐방안내도 앞에서 비양도에 대해 친절하기 그지없는 설명을 해준다. 10분 남짓한 그의 설명만 들었을 뿐인데, 비양도가 머리속에 훤히 그려지는 듯하다.

비양도는 2005년, 고현정과 한고은 지진희, 조인성 등이 열연한 SBS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다. 이를 기념하는 대형 조형물이 마을 한복판 바닷가에 낡은 모습으로 서 있고, 작은 절 하나와 비슷한 크기의 교회, 아담한 소방서와 로스팅 카페도 있다. 마을을 휘 둘러보고는 좀 전에 들은 지질공원해설사의 설명대로 반시계방향으로 섬 일주에 나선다.

 

선생 한 명에 학생이 둘

마을의 동쪽 끝, 한라산을 마주한 바닷가에 섬의 유일한 학교가 있다. 정확한 이름은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장’. 정문 기둥에 붙은 명패가 아녔다면 그냥 너른 정원을 가진 가정집쯤으로 착각했을 게다. 빈틈없이 잔디로 덮인 운동장은 좁아서 100미터 달리기는 꿈도 못 꾸겠다. 그래도 한편에 미끄럼틀과 시소, 철봉이 보이고, 울타리로 심은 해송과 후박나무 아래로 문주란이며 수국이 아름답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 조그만 초등학교엔 교사 한 명에 학생 두 명이 전부. 6학년생이 내년에 중학교에 진학하면 남은 한 명이 전교 1등과 꼴찌, 청소당번에 주번, 반장에 전교회장까지 도맡을 판이다. 길쭉한 단독주택 같은 교사(校舍) 동쪽 벽면엔 어린왕자와 여우가 비양도를 바라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비양도가 외로워 보인다.

한전 비양도발전소를 지나 펄랑못으로 향하는 해안길, 바다 건너로 제주 본섬이 길게 늘어섰다. 마라도나 가파도에서 볼 때는 제주도가 한라산이더니 여기서는 오히려 본섬 내에서 한라산의 존재감이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협재해수욕장 뒤로 솟은 금악리의 금오름은 그 형태가 비양도와 판박이다.

 

비양도의 보석 같은 풍광을 만나는 해안일주

펄랑못은 바닷물이 스며들며 만들어진 습지다. 때문에 간만(干滿)에 따라 펄랑못 수위도 바뀐다. 비양도 사람들 대부분은 ‘펄랑못’이라고 부른다는데, 부둣가의 안내도엔 ‘펄렁못’이라 적혀있다. 습지 둘레를 따라 마련된 산책로에서 보니 비양봉엔 억새와 소나무가 많다.

습지를 지나자 아까 해설사분이 자랑하던 섬의 뒷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주름처럼 펼쳐진 용암구조물인 ‘파호이호이 용암해안’과 비양도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용암구조물을 전시해 둔 ‘비양도 암석 소공원’도 보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애기 업은 돌’이라고도 부르는 ‘용암굴뚝[호니토, Hornito]’. 용암이 솟아오르던 모양 그대로 굳은 용암굴뚝은 제주에서도 흔치 않은 것으로 예전엔 비양도 해안을 따라 40개가 넘었다는데, 부잣집 정원석으로 하나둘 팔려나가고 이젠 20개쯤만 남았단다.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천연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때마침 막 물질을 마친 해녀가 테왁망사리를 들고 나온다. 다시 보니 용암굴뚝은 해녀를 닮은 듯도 하다.  

용암굴뚝해변을 지나니 이번엔 바다로 들어가려는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눈길을 끈다. 아까 해설사분이 “자기 혼자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다가 하는 코끼리”라고 하던 그 코끼리바위다. 우리나라 코끼리바위 중 가장 크단다. 굴업도의 코끼리바위가 시커멓기만 한데 비해 비양도 코끼리바위는 등짝에 자란 풀과 머리 쪽을 덮은 갈매기 배설물로 인해 컬러풀하다. 주변에 커다란 화산탄도 널렸다. 게 중엔 10톤쯤 되는 큰 것도 있다. 그 검은 돌무더기 사이에서 사람들이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어 다가가보니 파도에 밀려온 미역을 채취중이란다. 태풍이나 큰 파도가 지난 후엔 섬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채취가 가능하단다.

 

비양도 탐방은 반시계방향이 좋다

해안을 따라 조금 더 돌아가니 길옆으로 6각 지붕을 한 쉼터가 보이고, 그 옆으로 비양봉으로 오르는 계단이 놓였다. 짧은 계단 끝에서 이어진 조릿대 숲을 지나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양도의 풍광이 펼쳐진다. 듬성듬성 소나무가 서 있는 비양봉 사면 가득 억새가 무성하다. 펄랑못에서 본 비양봉 풍광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길을 따라 뽕나무가 지천이다. 길은 곧 왼쪽으로 갈리며 살짝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직진하면 곧장 마을로 이어진다. 계단 시작점의 작은 팻말에 ‘정상 500m’라 적혔다.

잠시 후 닿은 능선. 깊이 파인 분화구 건너 비양봉 정상에 하얀 등대가 우뚝하다. 여기서도 반시계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까 해설사의 조언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걷자니 오른쪽으로 바다 건너 한라산과 제주 본섬의 서쪽 해안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발아래엔 비양리의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며 그림 같다.

이대가 길을 뒤덮은 구간을 지나니 망원경이 설치된 전망대가 나타난다. 예전엔 이런 망원경을 보려면 500원 동전을 넣어야 짧은 시간 렌즈가 개방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전국 거의 모든 망원경들이 공짜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전국 버스정류장이나 역 대합실의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몇 십 원씩 냈었다. 요즘은 공짜가 참 많아졌다.

전망대를 지나 가파른 비탈을 오르니 정상인 비양도등대다. 무인등대인 비양도등대는 육지에서 한림항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에게 중요한 항로표지 역할을 하고 있단다. 일대 바다가 얕아서 그 어느 등대보다 요긴하다고. 1955년에 점등되었다고 하니 짧지 않은 역사도 지녔다.

등대를 중심으로 비양봉 분화구는 둘로 나뉜다. 둘 모두 생각보다 깊고 가팔라 놀랍다. 하산은 북쪽 분화구를 한 바퀴 돈 후 남쪽 화구벽 능선을 지나 올랐던 길을 만나 마을로 내려서면 된다. 그나저나 속 시원히 뚫린 사방 조망 때문에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야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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