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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의 세계산책

 

황금 단풍 물든 동화 속 마을 ‘아스펜’

· 신영철 편집주간  사진 · 정임수 작가

 

시인 김영랑이 말했던가?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하도 단풍이 고와 얼굴이나 마음까지도 물들겠다는 남도 사투리의 구수한 은유. 그 시적 상상력이 사실임을 이번 단풍사냥에서 알았다. 동행한 정임수 사진작가의 카메라가 사낭꾼 총처럼 연신 불을 뿜는 표적 단풍. 단풍사냥꾼은 정 작가만이 아니었다. 제철을 맞았다는 소문에 몰린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은 미국의 보석이다. 태평양과 미국내륙을 나누는 644km의 산줄기. 높고 너른 오지랖에 요세미티와 휘트니산(4,418m)을 품고 있다. 캘리포니아주(州) 동부를 남북으로 달리는 시에라 네바다의 뜻은 ‘눈 덮인 산맥’.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공식은 미국서도 통한다. 유명한 존 뮤어 트레일이 존재하는 이곳은 많은 시냇물, 크릭과 호수가 존재한다. 이 산맥에서 가을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단풍소식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산위에 첫 눈이 내리면 산자락엔 눈부신 색채의 향연 아스펜 단풍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단풍사냥에 촉을 세우고 있던 정임수 사진작가 전화를 받았다. 단풍 제철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말과 함께 당장 떠나자는 연락. 이곳은 사막성 기후이기에 가을 풍경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래서 때를 잘 잡아야 한다는 건 상식. 정 작가와 나는 후다닥 배낭을 꾸려 2박 3일 단풍을 쫓아 비숍(Bishop)으로 떠났다. 시에라 산맥 동쪽 기슭의 도시 비숍 일원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아스펜 단풍 군락지다. 이곳 아스펜 나무들은 유독 짙은 노란색 단풍 때문에 황금 아스펜으로도 불린다. 한국에선 사시나무로 불리는 아스펜 나무. 시에라 산맥에서는 고도 2,000m에서 3,000m 사이에서 많이 자란다. 물을 좋아하는 아스펜은 산이 흘려주는 시냇가에서 번성한다. 비숍 부근의 크릭이나 호수가 바로 그런 장소다.

395번 도로를 달렸다. 언제 달려도 멋있는 풍경도로다. 왼쪽으로 미본토 최고봉 휘트니가 보인다. 정상부엔 벌써 눈이 가득하다. 서부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롱파인(Long Pine)마을을 지나며 시나브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395번 국도는 시에라 산맥이 있음으로 풍경도로로 불리고 있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빅파인(Big Pine)을 거쳐 우리가 목적한 비숍을 만난다. 단풍 명소는 비숍에서 158번 도로를 따라 더 올라가야한다. 깊은 가을을 맞은 이 동네는 단풍 세상이다.

158번 도로를 주행한다. 점차 고도가 높아가며 노란 단풍 색도 점점 짙어지기 시작한다. 푸름을 뽐내던 나무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봉화처럼 불타오르는 숲을 만들었다. 비숍 시내가 눈 아래로 보일 정도로 시에라 산맥을 속살을 헤집고 들어서면 도원경이 펼쳐진다. 도로 곁은 아스펜 샛노랑이 점령해 버렸다. 일단의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있다. 노란 숲 바다 속에 섬처럼 떠 있는 아스펜 델(Aspen dell)이란 마을. 온통 아스펜 단풍숲 속에 들어앉은 과연 동화 속 마을 풍경이다.

 

호수 사브리나

“정 작가, ‘울긋불긋’이라는 말이 뭐야? 불긋은 알겠는데 울긋은 무슨 색을 말하는 거요?”

어째서 이곳 단풍은 노란색 일색인가. 독재, 독불치고 좋은 게 없다. 단풍은 설악산처럼 울긋불긋해야 하는 게 맞다. 사냥감을 조준하기 바쁜 정 작가가 성의 없이 대답한다.

“여러 색깔이 뒤섞인 표현이겠죠, 뭐,”

뜬금없이 시비를 건 이유는 온통 노란 단풍 때문이다. 이곳 단풍은 노랗다 못 해 샛노랑 일색이다. 물론 자세히 보면 잡목 중엔 붉은색도 있고 분홍색도 있을 터. 하지만 아스펜 나무가 절대 우점종인 이곳은 말 그대로 황금색 노랑 천국이다. 길을 달리다보면 갓길 주차해 놓은 차가 많이 보인다. 운전대를 잡은 정 작가는 그때마다 자기 맘대로 차를 세운다. 그곳엔 사냥감 단풍이 좋아 촬영 포인트라는 걸 알겠다. 차에서 내려 설 때마다 정말 볼만하다. 계곡 건너편엔 아스펜 노란 단풍 바다 가운데 별장인 듯 집이 보였다. 구색을 맞추듯 산자락엔 시원스런 폭포까지 걸려 있다. 미국식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곳일 것이다. 이런 압도적 풍경이 기다리기에 이 동네가 미국 10대 단풍여행지로 선정되었다는 걸 이제 믿는다.

지난달 지인이 카톡으로 설악산 단풍 사진을 한보따리 보내왔다. 그걸 보며 역시 단풍은 한국이야! 거기에 비하여 미국 단풍은 무언가 그리다 만 풍경처럼 보였다. 내 머리에 세팅된 울긋불긋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말로만 들어 왔던 노랑색 바다에 풍덩 빠지니 비겁하게 생각이 바뀐다. 시나브로 노랑 예찬론자가 되어 가는 중. 동양에서는 노란색(黃色)을 긍정적으로 본다. 황금색은 황금이나 돈 등을 상징하여 부와 권위가 넘치는 색으로 표현했다. 중국에선 매우 귀한 대접을 받으며 황제의 색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노란색이 황제의 색이기에 조선에서는 설움도 받았다. 조선 왕과 왕비가 노란색 예복을 입을 수 없었던 것. 찰칵거리던 정 작가는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었는지 표정이 밝다.

“노란색 한가지로도 보기 좋네. 노랑은 동양에서는 귀한 색깔이니까. 우리 오방색 중 노란색이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잖아. 혹시 울긋불긋에서 울긋은 노란색 아닐까?”

실없는 말을 떠드는 중에 도로 표시판은 이제 해발고도 2400m를 넘는다고 알린다. 사우스 호수와 사브리나 호수 갈림길을 만났다. 사브리나 호수를 오르는 도로 양쪽이 단풍으로 더욱 눈부시다. 이윽고 사브리나 호수에 도착한 임 작가가 시동을 끄며 말한다.

“서양에서는 노란색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요. 옐로(Yellow)는 영어로 겁쟁이를 뜻하는 은어일 정도니까요. 요즈음 횡행하는 가짜뉴스나 선정적인 언론을 옐로페이퍼 즉 황색언론이라고 부르고 있잖아요. 누렇게 뜬 얼굴이 선배는 보기 좋아요?”

과유불급. 차면 넘친다고 쓸데없이 노란색 예찬으로 돌아 섰다가 한방 세게 얻어맞았다. 이거 복수해야 한다. 틈을 노리자. 하긴 우리도 노란색에 대한 존경심은 없어 진지 오래다. 버릇없는 청춘들에게 ''싹수가 노랗다''라고 애꿎은 노란색을 들먹인다. 속이 좁고 인색한 어른들에게는 ''노랑이''라는 은어를 사용한다. 부와 황금과 황제의 권위였던 노란색의 추락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릭, 즉 계곡 시냇물 따라 빼곡한 아스펜은 노랑강물을 이루고 있다. 강태공 하나가 허리까지 몸을 담근 채 아스펜 단풍이 녹아 있는 잔잔한 시냇물에서 플라이 낚시를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수채화 같은 풍경이었다.

호수에는 보트를 즐기는 사람과 낚싯줄을 드리운 사람이 많았다. 씨알 굵은 송어 낚시로도 유명한 사브리나 호수.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보이는 사람들은 역시 단풍 사냥꾼들이다. 일본 카메라가 90% 이상 동서양 헌터들 샷건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들은 전문 사냥꾼이다. 스마트 폰을 휘두르는 우리는 아마추어. 과연 단풍이 드리워진 호수는 이발소 그림을 닮듯 상상 속 선경이다. 호수 건너편 우람한 시에라네바다 바위산들이 짙푸른 하늘을 떠받치듯 우뚝하다. 그중 가장 높은 암봉이 4,000m가 넘는 펠리세이드 봉이 분명해 보인다.

 

사시나무 떨 듯 떤다

우리를 몽환으로 이끌고 사냥에 나서게 한 황금빛 단풍. 큰 나무 한그루는 봉화불, 작은 나무는 촛불처럼 일제히 타오른다. 이런 마법의 단풍을 피워 내는 아스펜은 특이한 나무다. 수령은 100년 남짓으로 수 천 년씩 사는 장수나무에 비하면 짧은 생이다. 하지만 아스펜의 뿌리는 땅 밑으로 대나무처럼 서로 얽혀 있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보는 아스펜 숲은 사실은 하나의 생명체인 것이다.

시에라 산군엔 산불이 잦다. 자연적 산불이다. 사브리나 호수를 에워싼 산등성이 여기저기 산불의 흔적이 보인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숯으로 변한 흉물스러운 모습도 많다. 그런 가혹한 자연재해에서도 아스펜 나무들은 살아남았다. 아스펜은 덩치 큰 파인트리들이 숯으로 변했어도 끄떡없이 견뎠다. 산불이 아무리 심해도 뿌리가 살아 있다면 아스펜은 다시 살아난다. 지금 한 철 잘 보내고 동면에 들어간다는 듯 노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런 생존 능력 때문에 유타주의 아스펜 군락지는 8만년을 넘기고 있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연전, 존 뮤어 트레일을 종주 할 때였다. 호수를 호위하듯 우뚝한 배경의 펠리세이드 봉 고개를 넘던 생각이 난다. 동시에 지금 보기에도 아득한 고개를 넘었던 내가 슬그머니 자랑스럽다. 고개를 넘기 전 야영했던 장소가 바로 물 좋아하는 아스펜나무 숲속이다. 사람 역시 물 없이 못 살기에 인연이 되었던 아스펜. 종주 내내 생존을 위해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던 아스펜 숲. 나무나 잎 모양새를 자세히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겹도록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뭇잎은 하트를 닮았다. 아주 작은 미풍에도 무수히 달린 수천수만의 하트가 일시에 흔들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아스펜은 한국에선 사시나무라고 불린다. 우리 선조들은 그것을 빗대어 겁먹어 떠는 모습을 ‘사시나무 떨 듯 떤다’고 표현했다.

아스펜 숲에서 막영을 할 때면 아스펜은 교향악을 들려주었다. 아스펜 잎사귀가 서로 부딪치며 차르르 차르르 합주하는 음악. 금속도 아닌 나뭇잎이 동전들 부딪침처럼 청량한 울림으로 귓전에 앉으며 꼭 자장가처럼 들렸다. 그런 초록 하트가 가을이 오고 산정에 첫 눈이 내리니까 이렇게 샛노란 단풍으로 바뀌었다. 갈 때를 알고 마지막 한순간을 노란불꽃으로 승화시키는 자연의 이법. 아스펜 단풍 숲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체득한다. 노란 등산로를 따라 걷다 나는 그때 들었던 차르르 소리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색깔이 너무 고와 무수한 황금 동전이 무시로 부딪치는 음악이었다.

그때였다. 낚시꾼이 데려온 개가 갑자기 호수로 첨벙 뛰어 들었다. 청둥오리를 사냥감으로 본 야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야 그러던 말든 오리 떼는 유유자적 호수를 노닐고 있다. 무시를 당한 개가 헐떡거리며 밖으로 나오더니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물을 털어 내려는 몸짓이었지만 공연히 헛웃음이 나온다. 눈앞은 한마디로 단풍특선이다.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피어난 노란 아스펜은 물속에 기둥을 세웠다. 파란 코발트 빛 하늘과 산을 반영으로 담고 있는 호수는 평화 그 자체였다. 늦가을 공기는 상큼하고 아스펜 잎사귀를 관통한 햇살이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는 가을. 그 속에 내가 서 있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스 레이크

사브리나 호수에서 오른쪽으로 비포장도로가 있다. 운전하기가 망설여지는 높은 도로를 오르니 광활한 분지가 나타났다. 거기에 노스 레이크 호수가 있다. 사브리나는 몇 번 왔으나 이곳은 처음이다. 정작가의 단풍 사냥이 이곳에서 끝나면 마지막으로 사우스 레이크로 갈 것이다. 395번 도로에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바라보면 도무지 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삭막한 산맥으로 보인다. 도로 주변이 모하비 사막이니까. 그러나 산속에 들면 신기루처럼 어디에도 없을 그런 무릉도원이 펼쳐진다. 바로 비숍의 산과 이 호수들이 그 증거다.

이곳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세 개의 호수는 나름 특색이 있다. 고도차가 다른 만큼 단풍 역시 색감에서 차이가 난다. 해발 2,700m가 넘는 고도의 노스 레이크는 크기가 작다. 그러나 분지를 흐르는 시냇물과 광활한 갈대밭은 또 다른 노란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곳도 아스펜이 우점종이다. 노란 단풍을 활짝 피어 놓았으나 사브리나 색감과는 또 다르다. 고도 차이도 있지만 철분이 함유된 땅에서 자랐기에 약간 붉은 기가 섞인 듯 보인다. 잔잔히 흐르는 냇물과 에워싼 산들과 흔들리는 억새 때문인지 동양화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아스펜 숲 속에 호수를 따라 도는 트레일이 있기에 걸었다. 걷다보니 반짝이며 쏟아지는 햇살도 노랗다. 햇살이 무수한 노란 단풍을 투과해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만산홍엽이 아니라 만산황엽(萬山黃葉)이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아스펜 단풍이 부딪히며 맑은 노래를 한다. 과연 시청각이 행복하다. 북쪽 호수 뒤로 우뚝한 시에라 네바다의 고봉들. 그 정수리엔 신설이 내려앉아 하얗게 햇빛을 퉁겨 내고 있다.

 

사우스 레이크

이제 우리 단풍순례는 사우스 레이크만 남겨 두었다. 남쪽 호수의 아스펜 단풍은 호수보다 그곳에 이르는 계곡이 백미였다. 길고 긴 계곡을 따라 노랗게 단풍을 피워 낸 아스펜 숲은 그 품에 몇 개의 캠핑장을 품고 있다. 사브리나의 명성에 가려 이곳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그 깊은 속살을 아는 사람은 여기를 더 사랑한다. 속살을 아는 사람은 물론 다리 힘 좋은 산악인들이다. 사우스 레이크가 산악인들에게 더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출발하는 비숍패스 트레일(Bishop Pass Trail) 때문.

이 트레일은 시에라 산맥에서 인기 있는 루트 중 하나로 꼽힌다. 무수한 호수를 돌아 오르는 아름다운 트레일이다. 멋진 전망을 보장하기에 입소문까지 나 있다. 나는 이 비숍패스를 통하여 존 무어 트레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가파른 길에서 만난 사슴들과 눈싸움을 하면서, 이런 풍경이 계속 이어지며 힘든 줄을 몰랐다. 자연이 자연에 의하여 만들어 진 조화로움의 극치. 눈앞에 펼쳐지는 믿지 못 할 풍경에 ‘산 채로 화석이 되어도 좋을 각성’을 했다고 『걷는 자의 꿈 존 무어 트레일』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그 기억이 하도 강렬하여 호수 왼쪽에서 시작하는 비숍 트레일을 따라 한참 올랐다. 당연히 이 트레일에도 아스펜 단풍은 지천이었다. 산천은 의구하다는 말처럼 예전의 기억이 아스펜 노란 단풍처럼 화르르 살아났다. 노란 터널을 지나 고도를 높이며 이제는 단풍사냥꾼이 아닌 많은 트레커들을 만났다. 거미줄처럼 많고, 그림처럼 예쁜 트레일을 따라 깊은 가을을 몸으로 즐기려는 산악인들이다. 존 뮤어 트레일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비숍패스 자체로도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그들은 얻어 갈 것이다. 롱 레이크(Long Lake)까지 갈 요량이었으나 시간에 쫓겨 달콤한 소풍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하산 길, 늦은 시간임에도 도로는 단풍사냥에 나선 차량으로 붐볐다. 정 작가는 사냥이 모두 끝났다는 듯 오전과는 다르게 차를 세우지 않았다.

“올해 제법 좋은 작품을 건진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색감을 표현할 수 있었던 건, 빛도 도와주고 단풍이 예쁘게 피어줘서 그런 거지요. 이번엔 운이 좋았습니다.”

할 일이 다 끝나 더 이상 정 작가 카메라가 단풍사냥을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한다. 나는 사진을 모르므로. 뭐랄 것이 없으나 정 작가의 말꼬투리가 잡혔다.

“정임수씨, 단풍은 피어나는 게 아니라 지고 있는 거요. 몸통인 아스펜이 그 역할이 끝났음에 잎새에 공급했던 물을 끊어 지금 죽어 가는 중이요. 죽는 데 피어난다고? 그리고 죽는  색깔이 아름답다? 말이 좀 이상한 거 아니요?”

오전에 노란색이 어떻고 하다가 정 작가에게 한 방 먹은 것에 기억해 놓았기에 복수전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우리는 말싸움이 취미다. 그런데 웃자고 한 말이지만 뱉어 놓고 보니 정말 그렇다. 단풍은 죽어가는 색깔이 맞다. 화려했던 단풍은 곧 낙엽이 될 것이다.

“미학은 해석 나름이죠. 촛불도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활짝 피어 날 때가 절정이듯 단풍도 그렇고요. 그 낙엽은 내년 봄, 자신의 분신 새싹들 자양분이 되어 거듭 날 겁니다. 우리는 한 번 죽으면 끝이지만 아스펜 단풍은 내년에도 윤회를 거듭하며 영생하는 겁니다.”

회심의 일격을 날리고 느긋했는데, 어째 이번에도 내가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아무렴 어떨까. 죽는 색깔이 이렇고 곱고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도 아름다운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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