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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라이밍

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군포 수리산 매바위 암장

 

비가 내리면 바위는 짙어진다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협찬 · 레드페이스

 

야속한 비가 내린다. 지난달 취재를 함께했던 클라이머 남매 손승민·손소망씨와 한 달여 전부터 계획한 선인봉 남측오버행 크랙등반이 갑작스러운 비 소식에 제동이 걸렸다. 크랙등반은 직접 확보물을 설치하며 바위에 새겨진 선을 따라 오르는 등반으로, 크랙 사이에 물이 흐르거나 바위가 젖으면 안전상의 이유로 등반이 어려워진다.

“이번 취재에 대비해서 아버지, 소망이와 연습차 남측오버행에 두 번 다녀왔어요. 준비 많이 했는데, 하필 오늘 비가 내리네요…”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손승민씨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작지만 당차고 알토란같은 바위

“나는 왼쪽인 것 같아!”, “오른쪽으로 가보면 어떨까요?”, “아니야 애들아, 쭉 직진이야!”

날씨는 예보대로 비가 내렸고, 취재진은 급하게 출장지를 변경했다. 비를 피하며 등반을 즐길 수 있는 근교 암장으로 군포 수리산의 매바위를 골랐다. 기자를 포함해 매바위 등반이 처음인 취재진은 어프로치부터 우왕좌왕이다.

매바위는 광명, 안양, 군포, 안산의 경계에 우뚝 솟은 수리산(修理山, 489m) 중턱에 있다. 지난 2001년 11월, 경기클라이밍센터와 봉우리산악회에 의해 처음 개척됐으며 남한산성 범굴암, 모락산 미래암장, 삼성산 BAC 등과 함께 서울 근교 스포츠클라이밍 등반대상지로 뭇 클라이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매바위 암장을 찾는 클라이머들은 매바위를 ‘알토란같은 바위’라 표현한다. 전체 암장의 크기는 폭 50m, 높이 20m로 그리 크지 않지만, 난이도 5.10~5.11급의 루트가 고루 있으면서 5.13a(노크랙 노테라스)의 고난도 등반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이어지는 짧은 어프로치 또한 매바위 암장의 장점 중 하나다. 군포시립중앙도서관에서 시작되는 어프로치는 도서관에서 바로 오른쪽 포장도로를 따라 성불사를 향해 600m를 쭉 올라간다. 성불사에 도착하면 성불사 오른쪽 70m 지점에 슬기봉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나오는데, 이곳을 따라 10여 분 올라서면 어느새 매바위에 도착한다. 중앙도서관 들머리부터 매바위 암장까지는 20여 분 소요된다.

 

비 내리는 바위 아래서

매바위에 도착하니 궂은 날씨에도 바위를 찾은 서너 팀의 열정 클라이머들이 있었다. 오후부터 비가 더욱 쏟아질 거라는 예보에 맞춰 아침 일찍부터 바위를 찾은 듯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승민이 아닌가~” 클라이머들이 손승민·손소망씨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봬요!” 남매도 이런 만남이 자연스러운 듯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유독 암벽등반지에선 앳된 얼굴의 클라이머를 보기 힘들다. 손승민·손소망씨는 유년시절부터 산악인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고사리손으로 바위를 올랐을 터. 집 앞의 놀이터보다는 바위가 친근한 남매는 일찍부터 산악계 공식 귀염둥이로 자리 잡았을 것이었다. 나이와 세월을 떠나 선후배 간 반갑게 오고 가는 인사를 지켜보며 새삼 남매의 특별함을 다시 느꼈다.    

비를 피해 매바위 가장 좌측의 오버행(경사 90도 이상의 고난도 루트)으로 이동했다. 오버행 구간에는 ‘자유 2007(5.11b)’과 ‘노크랙 노테라스(5.13a)’가 있다. 두 루트 모두 쉽지 않은 고난도 루트이기 때문에 새삼 손승민, 손소망씨가 이번 우중 취재를 함께하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미 난이도 5.10대 루트들은 젖은 지 오래였으며, 비를 피해 등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만약 클라이머의 등반 실력이 부족했다면 고난도 루트 촬영에 난행을 겪었을 것이었다.

“여기도 홀드가 습하고 미끄러워요.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오늘 등반은 무리하지 말죠.”

배낭을 내려놓고 바위에 다가가 손을 올리니 촉촉한 한기가 전해졌다. 오늘은 도전적인 등반보다는 여유롭게 진행하기로 하고 등반준비를 시작했다. 군데군데 새겨진 새하얀 투지의 흔적들이 씻겨나가는 동안에 바위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확실하고 신중하게, 가볍고 재빠르게

“5.11b 등반은 언제 끝냈어요?”

최근 기자는 난이도 5.11b의 등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오랜 시간 고전하고 있다. 남매에게  등반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다 문득 기자와 같은 난이도(5.11b)의 등반을 언제 끝냈는지 물으니 손승민씨는 초등학생 때, 손소망씨는 학창시절이라 말했다.

등반준비를 마친 손승민씨가 자유 2007에 붙었다. 난이도 5.11b의 자유 2007은 손승민씨가 이미 십수 년 전 초등학생 때 끝낸 그레이드. 어디 그뿐이랴, 개인 최고 난도 5.14d의 기록을 가진 그에게 5.11b는 준비운동 수준일 것이다.

손승민씨가 별다른 루트파인딩 없이 등반을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온사이트 시도에 홀드상태도 좋지 않았기에 잠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이는 노파심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손승민씨는 다섯 번째 퀵드로 전후 크럭스(Crux, 가장 어려운 구간)에서 니바, 아웃사이드, 인사이드, 한쪽 팔 버티기 등의 자세를 구사하며 촬영을 위한 극적인 연출을 만드는 여유를 보였다. 이후 단숨에 완등앵커에 로프를 걸며 보란 듯이 온사이트에 성공했다.      

“저는 퀵 두 개마다 텐션 받아 가면서 천천히 등반할 거예요~!” 뒤이어 손소망씨가 긴 팔과 다리를 쭉쭉 뻗으며 등반을 시작했다. 손소망씨는 4번째 퀵드로에 로프를 걸고 다음 등반 방향을 찾으며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한 번에 크럭스를 돌파하고 완등 앵커에 로프를 걸었다. 출발 전 그녀가 던진 말이 얼마나 겸손한 표현이었는지는 그녀의 등반이 증명해주었다.

남매의 등반은 닮은 점이 많았다. 동작이 확실하고 신중했으며, 가볍고 재빨랐다. 특히 로프를 퀵드로에 걸 때 조금도 조급하거나 소란스럽지 않았다. 실력과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침착함이 곧 이들의 등반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의심할 여지없는 실력이다.

 

물 흐르는 5.13a는 5.13a가 아니다  

무릇 젖은 바위와 미끄러운 홀드는 등반자를 두렵게 한다. 자유 2007을 연달아 두 판 붙으며 몸풀이를 끝낸 손승민씨가 매바위 암장 최고난도 루트 ‘노크랙 노테라스(5.13a)’ 등반을 시도한다. 그의 움직임에서 불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등반거리 20m의 노크랙 노테라스는 7개의 볼트에 모두 고정 퀵드로가 설치돼 있었다. 누군가 프로젝트 등반을 진행하거나, 많은 클라이머들이 찾는 인기 루트에는 설치·회수의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퀵드로가 걸려 있곤 하는데 그런 일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노크랙 노테라스도 등반의 재미가 있는 루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날카로운 세로 선이 가득한 노크랙 노테라스 두 번째 퀵드로에 로프를 건 손승민씨가 다음 동작을 향해 몸을 던지다 짧은 추락을 먹는다. 손승민씨가 다시, 또다시, 연달아 십여 차례 몸을 던지며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손발 홀드가 모두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감히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그의 오름짓을 미끄러운 홀드가 막고 있었다. 바위는 더욱 젖어가고 홀드의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그가 발휘하는 투지를 마냥 말릴 수는 없었다.  

뒤이어 노크랙 노테라스에 붙은 손소망씨도 세 번째 퀵드로를 앞두고 미끄러진다. 더 이상의 진행은 안전상 무리라고 판단돼 취재진 모두 하산을 결정한다. 짧은 등반이 아쉬웠는지 손승민·손소망씨가 매바위 중앙의 기존B(5.10a)에서 마무리 등반을 진행한다. 기존B 루트는 바위 전면이 비에 젖어있었으나 손발 홀드가 크고 등반거리가 짧아 등반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배낭을 챙겨 돌아 오른 길을 다시 돌아 내려섰다. 비가 내리면 바위는 짙어지고, 짙은 바위는 클라이머의 오름짓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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