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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호 구봉산

 

 

용담호 위에 활짝 핀 연꽃산

 

일명 연꽃산이라 불리는 구봉산. 이름만 들어도 그 모습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산이다. 용담호를 끼고 솟구친 구봉산은 그 특이한 산세로 무진장의 한 고장인 진안을 빛낸다. 비록 100대 명산으로 유명한 마이산과 운장산의 유명세에 가려져있지만 아홉 개의 봉우리가 빚어내는 한 송이의 연꽃 같은 산세는 여느 산과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

글 · 강윤성 편집장  사진 · 정종원 기자  협찬 · 노르디스크

 

“이야, 저게 바로 구봉산이구나. 마치 고흥의 팔영산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데….”

“그러게요. 외따로 솟구친 정상을 빼면 빼도 박도 못하게 똑같이 생겼는걸요.”

다도해를 배경으로 선 팔영산의 그 기이한 암봉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구봉산이 진안 용담호 옆에 판박이처럼 솟구쳐 있다. 팔영산은 중국 위왕의 세숫물에 8개의 봉우리가 비쳐 그 위세를 중국까지 떨쳤다는 전설이 깃든 산이다. 구봉산 또한 그 기이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뭇사람들이 일명 연꽃산이라 칭하고 있다.

 

흰 구름 속에 연꽃으로 피어난 구봉산

구봉산 아래 연화골이나 양명마을에서 바라보는 구봉산은 한 폭의 그림이다. 키를 다투듯 동에서 서로 우뚝우뚝 솟은 기암 연봉들이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나란히 선 8개의 암봉은 영락없이 이제 막 구름 속에서 피어난 연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구봉산이지만 8개의 봉우리와 달리 주봉 천왕봉은 서쪽에 동떨어져 있다. 천왕봉은 1,000미터 대 산답게 그 위세가 만만치 않다. 멀찌감치 서서 마치 여덟 명의 병졸들을 호령하는 듯한 형국이다. 그만치 천왕봉과 팔봉의 모습은 산세도 높이도 차원을 달리하며 솟아있다.

8월 7일 폭염에 텅 빈 구봉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대형 주차장은 차 한 대 보이지 않아 휑하다. 최근 기상이 불안정하여 새벽에 날씨 예보를 확인한 끝에 오후 산행을 결정하고, 서둘러 내려왔다. 태풍 ‘프란시스코’의 영향으로 날씨가 오락가락이다. 오전에 비가 그친 후 오후에 해가 떴다가 밤에는 또다시 비가 온다는 예보다. 그 틈을 노려 취재 일정을 힘겹게 맞췄다. 오전에 비가 그친 뒤라 습기가 많아 후덥지근한 날씨다. 다행히 구름이 잔뜩 껴있어 뙤약볕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놓았다.

구봉산 주차장에서 곧장 양명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선다. 양명마을 입구에 이정표(구봉산 정상 2.7km, 복두봉 5.4km, 운장대 10.7km)가 친절하게 세워져 있다. 200여 미터 지점의 구봉산농원 앞 산길 입구에도 마찬가지다. 산에 들어서니 울울창창한 숲길이다. 빼곡한 숲 아래 너덜지대 위로 등산로가 나 있다. 이어 나무계단을 따라 사면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선다. 벤치가 놓인 쉼터에 도착하니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세차게 몰아친다. 숲 너머로 구봉산 암릉이 우람한 풍채를 드러낸다. 천왕봉은 연봉 끝 뿌연 먹구름 아래 솟구쳐 있다.

“구봉산 1봉 가는 길은 천왕봉과 반대편인데?”

 

아홉 봉우리 연이은 전설의 바다를 건너다

정종원 기자가 데크길을 따라 암릉 우측 끄트머리에 자리한 1봉(688m)으로 향한다. 100여 미터 암릉길을 걷자 수려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리한 암봉에 다다른다. 사방으로 거칠데 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구봉산 들머리 양명마을과 남북으로 뻗은 725번 지방도 너머로 올망졸망한 산들이 길게 뻗어나간 용담호를 품고 있다. 동쪽 하늘에도 역시나 먹구름이 시커멓다. 용담호 너머로 덕유산이 곧장 보일법도 한데 도대체 분간이 안 된다.

갈림길에 되돌아 나와 돌탑이 놓인 제2봉에 올라선다. 산행에 동행한 김영선 사진작가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협곡 건너편에선 3봉에 오른 정종원 기자가 촬영을 한다. 뒤따라 3봉을 거쳐 무명봉에 올라서니 암봉 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가지에 ‘이 산이 4봉’이란 코팅된 종이 팻말이 달려있다. 아마도 높이나 외부에서 바라본 형세로 따져본 듯한데, 누군가의 그 열정이 느껴지는 메시지다. 하지만 바로 옆 봉우리에 4봉 정상석과 ‘구름정’이란 이름을 단 육각정이 자리하고 있어, 그 상징성으로 인해 우열을 겨룰 대상은 아닌 듯하다.

4봉(752m)에 우뚝 자리한 정자에 올라서려 하자 진안군청과 서부지방산림청에서 내건 섬뜩한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서 취사 및 야영을 절대 금하며 위반 시에는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제36조의2 규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백패커들이 이곳에서 무분별하게 자리 선점을 위해 대낮에도 텐트를 쳐놓는 경우가 있어 등산인들이 민원을 제기, 결국 야영을 금했다고 한다. 결국 비박 성지가 사라진 셈이다.

구름정 2층에 올라서자 서쪽으로 우람한 천왕봉이 치솟아 있다. 금남정맥 운장산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능선 끝에 솟구친 암봉이다. 운장산과 인근의 마이산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그 높이가 무려 1,002m에 이르는 고산이다. 천왕봉으로 이어진 암릉에는 올망졸망한 암봉들이 징검다리를 이루고 있다. 천왕을 향해 도열한 병사들의 모습이다.

이곳 구름정이 자리한 4봉과 건너편 암봉인 5봉 사이에는 구봉산의 명물인 구름다리가 설치돼 있다. 암봉과 암봉을 잇는 웅장하기 짝이 없는 산악형 보도현수교다. 해발고도 740m에 설치한 구름다리는 길이가 무려 100m이고, 지상고가 47m에 이른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아래 자리한 그 모습을 보니 견우직녀 설화에 등장하는 전설상의 다리인 오작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구름다리를 건너자 광풍이 마구 불어온다. 그동안의 무더위와 후덥지근한 열기가 한꺼번에 확 사라진다. 오히려 저체온증을 조심해야 할 판이다. 더군다나 천왕봉을 뒤덮던 먹구름이 심상치 않더니만 결국 비바람을 몰아치며 몰려온다. 소름이 확 돋아 얼른 다리를 건너 소나기를 피한다. 한바탕 요동치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어, 저거 무지개 아냐?”

 

태풍 ‘프란시스코’가 만들어낸 무지개 장

김영선 사진작가가 보물이라도 발견한 양 괴성을 지르며 손짓을 한다. 구름다리 너머에 거대하고 맑고 고운 무지개가 반원을 그리고 있다. 무지개는 비온 뒤 공기 중의 물방울이 태양광선에 반사되고 굴절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산골짜기를 넘나들던 구름이 천왕봉 그 뾰족한 암봉에 걸려 한바탕 비를 흩뿌리더만 연꽃산 위에 수려한 무지개를 피운 것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많이 봤던 내 마음 속의 무지개였다.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보고 있자니 가슴이 마구 환희에 찬다. 빨주노초파남보 그 색상이 흔적 없이 사라질 때까지 다들 그 화려하고 색동어린 모습을 환한 얼굴로 쳐다본다.

“그나저나 갈 길이 장난 아닌데….”

5봉 앞에 서니 먹구름이 한 꺼풀 벗어젖힌 천왕봉이 본 모습을 드러낸다. 6·7·8봉 너머로 거대한 덩치를 이루며 서 있다. 서둘러 암릉을 탄다. 8봉까지는 난간을 이룬 나무계단이 뱀이 기어간 형상으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쉬이 6봉을 넘어 암봉 사면을 이리저리 타고 올라 7봉 정상에 선다. 5봉의 구름다리와 4봉의 구름정이 수려한 암릉 너머로 보인다. 너무도 아름다운 주옥같은 암릉길이다. 한 폭의 잘 그려진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7봉을 내려서니 앙증맞은 구름다리 하나가 암봉 사이에 설치돼 있다. 오히려 운치 있고 정감이 가는 다리다. 마치 선계의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을 방불케 한다. 다리를 건너 8봉에 서니 천왕봉의 위세가 더욱 대단하다. 1봉에서 8봉에 이르는 암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웅장할 뿐만 아니라 높디높다.

“저렇게 가파른 천왕봉 오르는 길이 도대체 어디에 나 있을까? 직상할까? 아님 왼쪽으로 우회해야 하나?”

8봉을 내려서니 울창한 숲속에 안부가 나온다. 돈내미재다. 갈림길(구봉산주차장 2.3km, 구봉산 8봉 0.1km, 구봉산 정상 0.5km, 운장대 8.5km)을 지나 구봉산 정상을 향해서 우측 산길로 올라선다.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계단이 계곡을 넘나들며 가파른 사면으로 이어진다. 소나기로 식었던 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비온 뒤라 더욱 후덥지근한 날씨가 땀범벅이로 만든다. 이때껏 경험하지 못한 가파름이다. 스틱을 잡은 두 손이 두 발이 되어 네발짐승처럼 되어 땅만 보고 오른다. 숨을 헉헉 몰아쉬며 오르는 취재진의 몸에선 방금 전 쏟아졌던 소나기 같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배출된다. 정종원 기자는 연신 땀을 닦은 손수건을 짜가며 오른다. 다들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을 해서 천왕을 만나러 가는 셈이다. 그 행색이 패잔병이나 다름없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험준한 협곡을 굽이돌아 겨우겨우 정상 능선에 올라선다.

 

용담호 너머로 겹겹이 펼쳐지는 덕유, 지리 산줄기

정상 직전에 조망이 트인다. 어느새 구봉산 8봉이 멀찌감치 보인다. 붉은 석양이 내리쬐는 8개의 암봉이 꽃송이처럼 피어있다. 능선에 올라서자 정상(0.1km)과 운장대(8km)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정상에 서니 공터 한가운데 천왕봉(1,002m)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다. 넓지 않은 정상은 주변에 나무와 수풀이 다소 우거져 있지만 숲을 조금만 뚫고 나가면 조망이 확 트인다. 남동쪽으로 용담호 너머에 적상산과 덕유산 큰 산줄기가 흐르고, 남쪽에는 부귀산과 두 귀를 가진 기이한 모습의 마이산이 보인다. 서쪽으로 돌면 만덕산과 연석산이 솟아 있고, 복두봉에서 서남으로 이어진 산줄기 끝에 운장산이 웅장하게 솟아있다. 날씨라도 맑으면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도 보일 듯하다.

석양이 운장산 너머로 떨어진다. 바랑재를 향해 남쪽 능선을 탄다. 길이 거칠지 않아 한시름 놓는다. 암릉이 나올 때마다 북동쪽으로 조망이 훤히 트인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1~8봉의 모습이 더욱 빛난다. 하산 지점인 바랑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구봉산 주차장까지는 2.3km. 가파른 산사면에 내려서니 의외로 길이 푹신하다. 산사면이 가파르긴 하지만 길이 흙길인지라 거침없이 하산한다. 좁디좁은 골짜기에는 멸치골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울창한 숲을 한참 내려서니 이내 양명마을이다. 주차장까지는 0.8km. 노을 진 하늘 아래 구봉산 8봉이 또다시 반겨준다. 구름다리와 구름정까지 한눈에 보이는 한적한 마을이 마음속까지 포근함을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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