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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길을 걷다

 

제2회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 걷기

 

퇴계 선생의 귀향길 마지막 구간 함께 걷기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올린 퇴계 이황 선생은 보름 동안 약 300km를 걸어 안동 도산에 도착했다. 1569년 음력 3월의 일이다. 450년 만인 2019년에 도산서원과 선비문화수련원에서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지난해는 코로나 때문에 행사를 열지 않았지만 올해는 방역수칙을 지키며

4월 15~28일 2년 만에 그 길을 다시 걸었다. 마지막 구간을 함께 걸었다.


글 · 서승범 객원기자  사진 · 정종원 기자

 

1567년 선조는 왕이 되었다. 선왕 명종이 서른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 세자 연이 왕위를 이은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연은 대군이 아니었다.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가 갑자기 사망해 후사를 찾다가 발탁되어 명종의 양자가 되었고, 왕 승하 후 왕의 자리에 올랐다. 방계 출신의 첫 임금이었다. 왕자도 아니었던 어린 왕은 기댈 곳이 필요했고 안팎으로 신망이 두터웠던 퇴계를 곁에 두고자 고향에 있던 선생을 조정으로 불렀다. 1568년 예순일곱의 나이에 다시 궐에 들어간 선생은 이듬해인 1569년에 마지막 귀향을 했다.

 

물러나는 걸음, 그 시작

그 뒤로 450년 하고도 2년이 더 흘렀다. 지난 4월 15일 경복궁 사정전 앞. ‘제2회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 걷기’가 시작됐다. 퇴계 선생은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고향으로 출발했고, 재현단은 국민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장정을 시작했다. 출발에 앞서 재현단을 이끌 도산서원 김병일 원장의 인사말과 강경환 문화재청장 등의 인사말이 있었다. 개막 행사를 마친 재현단은 멀고 먼 귀향을 시작했다. 퇴계 선생의 귀향길을 따라 걷는 행사는 도산서원과 선비문화수련원이 주최하고 도산서원 참공부모임이 주관해 이루어졌다.

귀향 재현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가을 어느 날, 참공부모임을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병일 원장이 퇴계 선생께서 마지막으로 귀향하시던 길을 따라 걸어보면 어떨까, 의견을 냈다. 권력의 핵심에서 보통의 자연으로 돌아오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선생의 가르침과 삶을 되새겨본다면, 책이나 강연으로 접하는 것보다 마음속에 깊이 그리고 오래 남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모임의 모든 인원이 찬성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퇴계 선생은 한양에서 안동 도산까지 어떤 길로 왔을까. 음력 3월 4일 한양을 출발해 보름 후인 17일 도산서원에 도착할 때까지 선생의 일정을 파악해야 했다. <퇴계선생연표월일조록>을 기본으로 <퇴계선생문집>과 <퇴계선생연보>, <퇴계선생연보보유>를 참고하고 선생의 지인과 벗들이 남긴 문헌의 자료로 보완했다. 하여 서울의 몽뢰정, 봉은사를 거쳐 무임포, 여주, 충주, 청풍, 단양, 풍기, 영주를 거쳐 3월 17일 도산서원에 도착한 일정이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의 ‘해동지도’를 참고하여 노정을 파악했다. 이후 답사 등 실무적인 준비를 거쳐 2019년 4월 10일에 봉은사를 출발해 4월 21일 도산서원까지 328.8km를 걷거나 배를 타고 이동했다.

 

물러나는 걸음, 그 길에서

4월 27일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 재현단이 지날 예정인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들어섰다. 조용한 산골 시골 마을이다. 이제 작은 산만 하나 넘으면 도산이다. 아마도, 죽령을 어렵사리 넘어 몸이 고단했을 퇴계 선생이 고향을 앞에 두고 몸과 마음을 추슬러 애써 힘을 냈을 것이다. 연락을 취해 보려 하는데 영주 두월리 쪽에서 재현단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인원이 참가하지 않도록 조정했고, 걸으면서도 간격을 유지하도록 했기에 멀리서도 알아볼 규모는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차분하게 걷고 있는 모습이 말그대로 고향을 향하는 선비들 같았다.

매정리에서 도산서원까지는 약 14km. 용두산을 넘어 운곡리의 용수사에 도착하는 6km 조금 넘는 구간만 지나면 코스는 그리 험하지 않았다. 용두산(664.6m)은 퇴계 선생의 조부 이계양 공이 마을 터를 잡으면서 산의 생김새가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용두산 자락에는 용수사가 있다. 용두산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면 그 여의주가 용수사 자리다. 그 기운을 받고자 함이었는지 인근의 많은 선비들이 용수사에서 학문에 정진했다. 퇴계 선생 또한 어린 시절 용수사에서 공부를 했고 자손들도 공부를 용수사에서 시켰다. 선생은 1567년 명종의 부름을 받고 서울 가던 길에도 용수사에 묵으며 시를 남겼다. 그리고 한양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명종은 세상을 떠났다.

용두산을 향하는 길로 접어들어 조금 걸으니 매정저수지가 나왔고 끄트머리에는 수령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몇 그루가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정자와 나무 그늘에 서넛씩 모여 앉아 도시락으로 준비한 김밥과 음료를 먹으며 땀을 식혔다. 이제 매정리를 지나면 용두산으로 접어들어 용수재를 넘어야 한다. 잠시 쉬었다가 의관을 정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2019년의 경험은 자료집과 책으로 묶었다. 후일 그 길을 따라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해서다. 국립중앙도서관의 학예연구관인 이기봉 선생이 자료집에 기고한 글을 보면 걷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옛사람들의 거리 단위인 리, 우리는 10리를 4km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일제 강점기에 생겨났을 뿐이며 조선시대에 10리는 약 5.5km였다. 자동차가 없었던 당시의 평범한 사람들은 대개 하루에 90리 정도 무리 없이 걸었다고 한다. 대략 50km에 이르는 거리다.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을 길을 불편한 장비만으로도 그렇게 걸었던 거다.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거리다. 물론 퇴계의 귀향길을 따라 걷는 행사는 재현보다 되새김에 의미를 두었기에 무리하지 않도록 25~30km 정도를 걷도록 했다.

 

물러나는 걸음, 그 깨달음

지금 우리에게 퇴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용수재를 내려오면서 김병일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인터뷰 참조) 학교 다니던 시절에 외워야 했던 이기론이나 사단칠정론을 다시 뒤적거려야 할까. 김병일 원장은 삶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이론과 원리에 대한 이야기라면 책과 강연이 유효한 방법이겠지만, 삶에 대한 이야기라면 길과 걷기가 제격이다.

치재 홍인우(恥齋 洪仁祐, 1515~1554)는 퇴계 선생과 성리학에 대한 입장이 달랐다. 선생은 관계와 질서와 예의를 중시했던 반면 화담 서경덕의 가르침을 받은 치재는 세상사를 뜬구름처럼 여기는 무위(無爲)의 경향이 있었다. 선생은 치재에 대해 학문적으로 경계하였으나 인간적으로 깊이 교류하였다. 훗날 홍인우의 아들이 도산으로 선생을 찾아와 인사를 올리자 크게 기뻐했다는 기록도 있다.

퇴계 선생은 첫 번째 부인이 아들 둘을 낳고 사망한 후 권 씨 부인을 두 번째 아내로 맞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내였지만 아버지(장인) 권질의 부탁에 이를 받아들였다. 선생이 애처가였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지적장애를 가진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흠은 드러내 나무라기보다 품고 다독거렸다. 흉한 버선을 만들어 내밀면 기꺼이 신고 입궐하였고, 도포에 빨간 천을 덧대 꿰매도 탓하지 않고 일을 보러 갔다. 사람들은 수근거렸겠지만, 선생은 그저 빙긋 웃고 말았다 한다. 그런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들들은 시묘살이를 했고 선생 또한 부인의 묘 곁에 암자를 짓고 묘를 돌봤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배우자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1569년 3월에 고향으로 온 선생은 고향에서 두 번의 봄과 두 번의 가을을 보내고 이듬해인 1570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재현단과 함께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마지막 구간을 걸으면서, 선생이 태어났던 태실(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60호)을 둘러보면서, 어린 이황이 뛰어놀면서 보았을 산줄기와 물줄기를 보면서 그리고 선생께서 좋아했다는 청량산을 멀리 바라보면서 궁금했다. “무엇이 선생을 물러나게 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나아가고, 드러내고,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학문적으로 왕보다 높았던 명예를 뒤로 하고 ‘퇴계(退溪, 계곡으로 물러나다)’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그 힘이 궁금했다.

 

다시 걷고픈 퇴계의 길 그리고 나의 길

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가 되는 혹은 되고자 하는 학문, 곧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을 찾고자 애를 써 군자의 길에 가까워지고자 한다는 뜻이다. 퇴계 선생이 어려운 개념과 난해한 이론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했던 것이다. 선생은 스스로 얼마나 군자의 길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을까. 끝내 부족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선생의 가르침은 몇 백 년의 세월을 거쳐 지금도 선생의 뜻을 헤아려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다시 걸어볼 수 있을까. 300km가 훌쩍 넘는 길을 걷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아감 대신 물러남을 생각하고, 드러나지 않아도 성급해지지 않고, 차지하는 대신 기꺼이 나눌 수 있는 태도를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다. 순례자의 마음을 헤아리려 머나먼 곳을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선비의 마음을 곱씹으며 우리 이웃들이 살아가는 강산을 걸어보는 것 또한 근사하겠다.

어느 볕 좋은 봄 혹은 가을에 퇴계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을 떠올리며 그 길에 다시 서고 싶은 건 꼭 퇴계 선생께서 걸었던 길이기 때문이 아니라 고향[溪]으로, 변경으로, 어떤 시작 혹은 초심으로 돌아가는[退], 그래서 선생의 길이 아니라 나의 길이고 걷는 각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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