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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T(Pacific Crest Trail)를 가다⑥

 

58번 하이웨이 오버패스(Highway 58번 Overpass)~

워커 패스 로드(Walker Pass Road)  

137.7km(총 운행 거리 1,048.8km)

 

은 없다!


글 사진 · 최인섭(서울시청산악회, 전 서울시산악연맹 이사)

 

테하차피에도 한인이 운영하는 호텔과 음식점이 있다

트레일 엔젤은 약속한 대로 정확히 2시간 후에 나를 픽업해 주었다. 천사가 묻는다. “어느 호텔로 가고 싶어? 베스트 웨스턴(Best Wertern)?, 훼어필드 인(Fairfield Inn)?” “베스트 웨스턴 호텔!” 하이웨이 고가에서 약 12km 떨어진 숙소에 들어가는데 프론트 데스크에 앉아 있는 여자 분이 왠지 한국인 같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분이 대뜸 내게 묻는다. “한국인이세요?” “네” 올해 69세이신 베스트 웨스턴 호텔 대표인 유현길씨다. 미국으로 이민 온 지 무려 40년. PCT를 걷는 중이라고 했더니, 내 나이와 직업에 관해 묻고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산 다니는 사람들은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 혹시 미혼이냐?” 이러면서도 어묵탕을 끓여주고 김치와 밥을 내 준다. 한국인이 가진 정(情)이 발현(發現)되고 있다. 내일 아침엔 근처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도리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해 준다며 정보를 주신다. 이런 작은 도시에서도 한국인들이 호텔과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월마트에 가서 5일치 식량을 넉넉하게 준비를 했다. 유 대표가 동네에 사는 트레일 엔젤 명단과 전화번호를 출력해 준다. 전화하면 PCT 지점에 데려다 준다고. 코로나19로 인해 폐쇄한다느니 도움을 중단한다느니 하지만 여기엔 아직 영향이 없어 보인다. 모처럼 밥과 김치, 라면으로 배가 터질 만큼 저녁을 먹었다. 미도리 식당에 갔다. 한 마디도 하질 않았지만 고형태 대표는 금방 날 알아본다. ‘국순당 1000억’ 막걸리와 병맥주, 안줏감을 내 준다. 또다시 한국인의 마음이 읽힌다. 호텔 유 대표와는 서로 집을 들락날락하면서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내일 아침에 김치찌개를 해 준단다. 소리만 들어도 입 안에 침이 흥건히 고인다.

53일째. 미도리 식당에서 회덮밥으로 점심을 먹으며 고형태 대표와 얘길 나눴다. 30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취미가 골동품 수집이다. 흔히 말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분이다. ‘테하차피(Tehachapi)’의 뜻은 인디언 말로 ‘바람의 언덕’이란다. 그러면 그렇지, 바람의 언덕엔 풍력 발전이 맞춤이지. 또, 와인을 모르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했다. 끼가 아주 많아 보인다. 식사 후 날 집으로 초대했고 그간 모은 골동품들을 소개해 주기까지! 저녁을 김치찌개로 먹었다. 3인분 양이라 배가 터지게 먹어도 남았다. 저녁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 멀리 타국에서 한국인을 만났으니 얼마나 얘기가 하고 싶었을까! 9시에 작별 인사를 했다. 하루 더 있다가 떠나라며, 혹시라도 내일 아침에 맘이 변하면 식당에 들르라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캘리포니아 중부, 시에라 구간 시작이다

출발 준비를 마치니 유 대표께서 배고프면 먹으라며 군만두를 주신다. 무표정한 인상임에도 잔정을 보여 주신다. “기회가 되면 아내와 다시 한 번 이곳에 오겠습니다.” 트레일 엔젤인 래에(Rae)가 이틀 전 도착 지점인 58번 하이웨이 고가 옆 PCT 진입로에 내려준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유 대표에게 꼭 안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제 본격적인 시에라 구간 시작이다. ‘포기나 중단은 없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발을 뗀다. 산이 높으면 여지없이 지그재그 스위치백으로 길이 형성돼 있다. 배낭을 멘 이는 오직 나 혼자뿐. 아주 가끔 나타나는 뿔도마뱀과 꼬리가 길고 시커먼 도마뱀이 고요한 정적을 깨고 내 시선을 붙잡고는 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나는 일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 우리와는 기후와 서식 환경이 달라 녀석들의 생김새가 내겐 생소하지만 자연에서 마음껏 살고 있으니 자연 속에 있는 나와 친구가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날씨가 몹시 덥다. 체내에서 염분과 물이 다 빠져나온 듯 했다. 골든 오크 스프링(Golden Oaks spring)에서 물을 담았다. 아직 물이 귀한 지역이다. 파이프로 물을 끌어오는데 나오는 양이 적다. 앞으로 30km를 더 가야 물이 있다. 오늘 하루 약 38km를 걸었다. 반바지를 입은 지 4일째. 무릎 아래는 벌써 햇볕에 그을려 시뻘겋다. 저녁 식사 전, LA 믿음한의원 주철규 원장께서 주신 건강단을 마지막으로 전부 입에 털어 넣었다. 연락이라도 드려야 하는데 여태 하질 못했다. 케네디 메도우즈에 가면 ‘무릎 이상 없이 걸을 수 있게 잘 치료해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55일째. 오트밀 아침 식단은 탁월한 선택이다. 물을 끓인 다음 오트밀 가루를 넣어 휘휘 저으면 끝. 빵을 곁들이면 아침 식사로 손색이 없다. 달달하면서도 조리 시간이 아주 짧다. 무게도 매우 가볍다. 종류도 여러 가지. 건포도와 대추와 호두를 섞거나, 사과와 계피를 섞거나, 딸기와 크림을 섞거나, 바나나와 견과류를 섞은 오트밀 등 취향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다. 7시 전에 출발을 한다. 앞으론 매일 7시 전에 출발할 작정이다. 9시가 되기도 전에 햇볕이 뜨거워지면서 기온이 오르므로 일찌감치 출발하면 선선한 아침 시간에 좀 더 많이 걸을 수 있다.

 

저 많은 장비를 다 버리고 어디로 갔을까?

8시 조금 넘은 시각, 눈앞엔 있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있다. PCT 하이킹을 위한 장비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배낭, 신발, 통신 기기, 쿠킹 도구, 손전등, 필기도구, 스카프, 양말…. 이 장비들이 왜 여기에 버려져 있을까? 한 하이커가 걷는 고행을 못 견디고 집으로 돌아갔을까? 여기서 돌아갔다면 테하차피 쪽으로 갔을 테고, 그렇다면 빈 몸으로 오는 누군가와 내가 마주쳤을 수도 있을 텐데. 하여간에 어제부터 맨 몸으로 오는 누군가를 만난 적이 없으니 적어도 어제 돌아가진 않았으리라.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다면 저렇게 모든 짐을 길바닥에 내팽개치고 돌아갔을까? 짐을 버리기 전까지 그는 수백 번도 더 고민했으리라.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짐을 모두 버린 저 친구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무책임하게 버리고 가면 뒤처리를 누가 하라고? 시간이 흐르고 저 물건들은 그저 쓰레기가 될 텐데…. 나는 60세가 되기 전에 내 인생 버킷리스트인 중 하나를 실천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고, 비록 힘들 때도 있지만 즐겁고 유쾌하게, 또 더없이 만족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걷고 있다. 무거운 짐이 내 발걸음을 더디게 하지만 대자연에 동화하며 아름답게 만들어진 이 길을 걷는 이 기쁨을 한없이 만끽하고 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땀에 흠뻑 젖은 내 옷과 피부를 시원하게 해준다. 피부에 묻은 땀이 공기 속으로 기화되면서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소나무 잎들이 저 산들바람에 제 몸을 내주며 서로 수런거리고 있다. 소나무 잎들도 바람이 주는 저 시원함을 몸으로 표현하려는 걸까.

 

말로만 듣던 방울뱀과 눈싸움을 하다

오전까지는 날이 덥고 오르막이 계속돼 운행에 많은 힘이 들었다. 오후부턴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키 큰 나무들이 많아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에 잠깐씩 쉬는데 도움을 얻었다. 죽은 나무 둥치 바로 옆에 똬리를 튼 뱀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언뜻 살펴도 2m쯤 되어 보인다. 앗 뜨거워라 싶어 잠시 멈추고는 나도 녀석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녀석은 잠시 저 포유류가 얼마나 힘이 셀지 혹은 자기처럼 독을 품고 있는지를 탐색하려는 듯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다가 대가리를 곧추 세우고 미끄러지듯 슬그머니 나무 밑동으로 자취를 감춘다. 마디가 있는 노란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는데 거기서 이런 소리가 났다. ‘치르르르 치르르르’ 말로만 듣던 방울뱀인 듯 했다. 녀석은 내 카메라에 담기길 극도로 싫어하는 듯 눈길 한 번 주질 않았다.  PCT 길을 걸을 때 이 방울뱀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을 본 적이 있다. 파충류와 포유류의 눈싸움에서 포유류가 이긴 걸까, 파충류가 봐준 걸까.

오후 4시쯤 7.3리터에 달하는 물을 정수했다. 내일과 모레 오전까지 물을 만날 수가 없어 4끼 식사와 운행하면서 마실 물 준비를 위해 가지고 있는 물통에 모두 물을 채웠다.

배낭은 날 짓뭉개버리려는 듯 어깨를 사정없이 짓누른다. 하지만 어쩌랴 다 내가 져야할 짐이다. 하루 지나면 다시 가벼워질 테고. 난 걸으며 인생수업을 하는 셈이다 치고 기분 좋게 걷고 있다.

 

트레일 매직은 내 생각이 참 부질없음을 깨닫게 한다

4월 마지막 날. 무거웠던 배낭이 내 어깨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어깨가 1인치 눌러앉은 듯 했다. 그 바람에 내 키 높이 또한 얼마간 줄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운행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20리터 물통이 수십 개나 있다. 비포장과 PCT가 만나는 지점인 켈소 로드(Kelso Road)이다. 사막 구간에 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역 트레일 엔젤들이 물통을 가져다 놓았음에 틀림없다. 트레일 매직은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나를 놀라게 한다. 마술은 굳이 그렇게 많은 물을 지려고 했던 내 생각이 참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한다. 미국 여성 한 명이 텐트에서 나온다. 3일 만에 처음으로 하이커를 만난다. 그녀는 지난 밤 이곳에서 물 걱정 없이 매우 편히 지냈으리라. 안전하게 운행하라는 인사를 주고받고는 난 바로 길을 떠난다. 24km를 더 가니 버드 스프링 패스(Bird Spring Pass). 새들도 목을 축이는 고개이런가, 이곳에도 물통이 수십 개다. 여기서부터 21km 더 가야 물을 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처럼 미련하게 7.3리터를 지고 가지 말고 3리터만 지고 가다가 켈소 로드에서 보충하고 또 버드 스프링 패스에서 보충하면 된다. 그 지점엔 차량이 들고날 수 있으므로 트레일 엔젤들이 물을 가져다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앱에 표시가 되어 있으므로 앱을 확인하면 문제가 없으리라. 오늘은 길이 모두 모래 바닥이라 걷는데 푹푹 빠지는 통에 걷기가 만만치 않았다. 오늘은 드디어 1,000km를 지나 14km나 더 걸었다. 내가 설정한 기부금 액수도 어느덧 50만원. 앞으로 4일 이내에 케네디 메도우즈(Kennedy Meadows)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진짜 눈 덮인 시에라 구간이 시작된다.

 

스쳐가는 이들이 날 응원해 준다

5월이다. 바람이 밤새 태풍 수준으로 부는 통에 거의 뜬눈으로 보냈다. 엊저녁에 바람이 제법 세다 싶어 텐트에 팩을 박았는데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 앱을 확인하지 않아 1마일 앞에 아주 맞춤한 야영터가 있음을 또 놓쳤다. 그 바람에 밤새 시달렸다. 이 부주의성은 언제가야 고쳐지려나?

길이 평탄해 3시간 동안 무려 15km를 걸었다. 개울 옆에서 쉬고 있는데 오프로드 차를 타고 가는 젊은 남녀 친구들이 내게 안전과 건강을 염려해 주는 말을 하기에 나도 한 마디 “고마워!” 178번 하이웨이를 향해 내리막을 걷고 있던 중, 반대편에서 오는 중년의 하이커가 내게 말을 붙인다. “How is it going?” 말이 빨라 내가 다시 물었다. “어떤 뜻인지 천천히 다시 말해 달라” “Everything are you OK?” “알겠다, 고맙다. 난 지금 컨디션 좋다. 전혀 문제없다” 그는 자신의 트레일 네임은 레트로(Retro)이며, 2015년에 은퇴했고 일 년에 5~6개월 동안 트레일 엔젤을 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자신의 집과 메일 주소를 적어 주며, 보낼 땐 말미에 꼭 PCT 하이커라고 표시하란다. 친구는 도움을 주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로 내게 많은 말을 쏟아 붇는다. 이 친구 말대로 그의 집을 방문한다면 얼마나 정성껏 대해 주려는지 가지 않아도 알듯하다.

오후 3시 넘어 178번 하이웨이 워커 패스(Walker Pass)에 도착했다. 고개다 보니 바람이 엄청나게 세다. 하이커들이 보통 가는 오니(Onyx) 대신에 인요컨(Inyokern) 마을로 가기로 하고 하치하이킹을 하는데 차들이 서질 않는다. 도로에 서서 30분쯤을 엄지손가락으로 표시를 하고 있던 중 화물차가 내 앞에 서 준다. 친구의 이름은 조슈드 헐(Joshud Hull). 전에도 이곳에서 일본인과 중국인을 태워주었다며, 인요컨에는 로스엔젤레스나 샌디에고 행 공항이 있다는 정보까지 알려준다. 친구는 훼어매이 모텔(Fairmay Motel) 앞에서 날 내려준다. 그와 나는 즉석에서 페북 친구를 맺었다. 모텔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이 지역에 트레일 엔젤이 있으면 내일 아침에 불러 달라” 부탁을 했으나 시큰둥하더니, 버스가 다니지만 토요일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했다. 설사 버스를 타지 못해도 하이커를 위한 택시가 있으니 이용할 수 있으리라. 근처에 있는 마켓(Food market)에 가 이틀 치 음식을 준비했다. 앞으로 약 80km를 더 가면 케네디 메도우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평탄하므로 부지런히 갈 경우 이틀 반나절쯤이면 닿을 수 있다. 그다음부터는 눈길과 높은 봉우리가 시작되므로 어떤 여정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기도하고, 솔직히 일말의 두려움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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