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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등반기
해외등반지
해외트레킹
▒ 해외 등반기
▒ 연세산악회 99브로드피크(8,047m) 원정대
▒ 우리 승관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원정대(대장 임공택)는 뜻하지 않은 파키스탄·인도간의 분쟁으로 모든 행정처리가 지연되는 바람에 2주 동안이나 무더운 이슬라마바드에서 시간을 보내고, 7월 10일 해발 4900미터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이미 베이스캠프에는 칠레,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미국 등 10개팀으로 북적되었고 우리는 스카르두부터 일정을 같이 한 동국대팀(대장 박영석)과 베이스캠프를 함께 설치했다. 우리 원정대원 전체는 고산등반경험이 전무한 상태라 경험 많은 박영석대장과의 합동등반은 원정대에 큰 힘이 되었다.

베이스캠프 도착 후 이틀동안 카라반의 여독 풀라는 듯 눈이 내렸다. 우리는 베이스캠프를 정리하고 등반에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분류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처음 고소를 접한 일행은 두통과 무기력을 호소했으며, 급기야 7월 12일 임공택(00세)대장은 고소순응을 위해 콩코르디아로 하산했다.

7월 13일, 대원들은 동국대팀과 함께 해발 5400미터의 올드캠프(Old Camp)에 전진캠프를 구축하기 위해 등반에 나섰다. 우리가 등반할 서릉 초등루트는 베이스캠프에서 정면으로 대침니를 바라보고, 그 왼쪽 설사면으로 우회하여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가 설사면 초입에 도착했을 때는 눈이 많이 녹아 군데군데 바위나 얼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진캠프의 판상 눈사태

한국인 최초로 요트를 타고 단독세계일주를 한 강동석대원(00세)은 컨디션 난조로 빙하를 건너기 전 등반을 포기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갔다. 그러나 훈자일대에서 등반을 마치고 트레킹중이던 경희대 추모 트레킹팀의 가세로 많은 짐을 한번에 전진캠프까지 수송할 수 있었다.

전진캠프에 4동의 텐트를 설치한 후 허승관(00세), 현창길(00세)대원과 동국대팀의 박영석대장(00세), 이치상(00세), 오은선(00세), 강성규(00세), 박강모(00세)대원은 고소적응과 1캠프 설치를 위해 전진캠프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필자와 홍종현(00세)대원과 동국대팀 김형우(00세), 함동호(00세), 한성수(00세)대원, 경희대 트레킹팀은 베이스캠프로 철수했다.

오후에 접어들며 전진캠프 아래 설사면은 습기를 잔뜩 머금었고 하산 중간에 작은 판상 눈사태에 함동호, 윤인혁(경희대트레킹팀)대원이 쓸렸으나 고정로프에 걸려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이 후 등반은 순조로웠다. 7월 14일, 해발 6150미터 지점에 1캠프를 설치했고 15일에는 6800미터 지점에 2캠프를 설치했다.

현창길대원은 1캠프에서 자던 중 '엄마'를 찾으며 앓아 밤새 선배들의 애간장을 태운 뒤 15일 베이스캠프로 하산했고, 허승관대원은 이치상대원과 함께 2캠프에서 고소적응 한 후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필자는 동국대팀의 김형우, 함동호대원과 함께 식량과 장비 보충분을 전진캠프까지 수송했다. 또한 고소증세로 콩코르디아까지 하산했다가 올라온 임공택대장이 합류하여 18일까지 2캠프까지 진출하며 고소적응을 마쳤다.

캠프설치와 고소적응 기간 중 만난 외국 등반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원정대의 경우 대부분이 중년이상의 산악인으로 구성된 상업등반대였지만 때묻은 장비를 착용하고 설사면을 군더더기 없는 유연한 자세로 올라 우리를 감탄하게 했다. 또한 피켈 한자루를 휴대한 우리와는 달리 스키 스톡과 피켈을 적절히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주일만에 한자리에 모인 대원들의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난생 처음 고소를 몸으로 접하면서 느낀 바를 나눴고, 각자 휴식을 취하며 장비를 점검, 보수하고 영양을 보충하는 등 다음 등반을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등반기간동안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우리가 늦은 일정으로 캠프를 설치하고 있을 때 외국등반대들은 정상공격을 감행, 칠레,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대에서 등정자가 나왔다.

19일, 96년 정상등정 후 실종된 경희대 한동근, 임순택, 양재모대원과 악우회 장용일대장, 전남의 박현재대원 등 브로드피크에서 유명을 달리한 악우들의 뜻을 기리는 추모제를 지냈다. 베이스캠프에 제단과 그 위에 다섯 개의 케른을 쌓은 후 쿡 푸르만이 만든 종이꽃을 꼽았다. 푸르만은 96년 당시 경희대팀의 쿡으로 실종된 대원들과 각별한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추모제가 끝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학군단훈련에 참가해야하는 홍종현대원을 포함, 연세대 트레킹팀의 윤옥석(00세), 배수연(00세), 장정동(00세)대원과 경희대 트레킹팀의 윤인혁(00세), 이종윤(00세), 나현삼(00세 단국대YB)대원이 하산했다. 눈이 큰 윤옥석대원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한꺼번에 7명의 식구가 빠져나간 베이스캠프는 일순 썰렁해졌다.

계속되는 기상 악화

허전함을 달래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새롭게 정리했다. 또한, 오스트리아대와 프랑스대의 초대에 응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프랑스대는 리용공과대학생으로 이루어진 '청소원정대'로 K2와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의 쓰레기를 수거하여 그들의 베이스캠프에 설치한 소각로와 금속절쇄기를 이용하여 처리하는 특이한 원정대였다.

그들은 꼴까지 진출했으나 동행한 카메라 기자의 폐수종으로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했다. 연일 베이스캠프 날씨는 좋지 않았다. 밤에는 어김없이 비나 눈이 오는 날이 많았다. 몬순의 시작임을 의심했지만 카라코람지역이 몬순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분석에 기대를 걸어본다.

본디 UCLA재학중인 강동석대원은 유창한 영어로 독일대와 스페인대와 접촉하며 기상정보를 수집했다. 대원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베이스캠프에서 보냈다. 이치상대원은 바람의 방향을 바꾼다며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등반을 마친 외국대가 속속 베이스캠프를 철수하니 나중에는 우리와 프랑스, 스페인원정대만 남게되었다. 스페인원정대에는 폴란드 출신 산악인 피터가 포함되어있었다.

화학공학자인 그는 지난 해 브로드피크 등반중 전위봉 근처에서 강풍으로 포기한 바 있으며 당시 프랑스의 에릭 에스코피에 일행의 실종을 증언한 바 있다. 또한 지난 해 가을 마칼루 등반 도중 박영석대장과의 우정으로 이번 등반을 같이 하려 했으나 연락상의 문제로 뒤늦게 스페인팀으로 오게된 것이다. 그의 주선으로 스페인팀과 함께 정상공격을 하기로 했다. 아침햇살에 K2가 모습을 환하게 드러낸 26일 아침이다. 스페인의 기상정보도 향후 3∼4일 날씨가 양호하다는 예보다.

아침식사 후 27일 처음이자 마지막인 정상공격을 시도한다고 결정했다. 전종주, 허승관대원은 박영석대장, 강성규, 박강모대원과 함께 1차 공격조에, 임공택대장과 현창길대원은 이치상, 오은선, 김형우, 함동호대원과 함께 2차 공격조로 편성되었다. 27일 새벽 4시 구토와 복통을 호소한 현창길대원을 제외한 10명 대원들은 전진캠프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등반 루트는 베이스캠프에서 보낸 8일 동안 환경의 변화가 많이 있었다.

하단부는 눈이 거의 녹아 바위면이 드러나 있었고 낮에 흘렀을 물은 고드름이 되어 얼어붙어 있었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하산을 걱정했다. 오랜 휴식으로 리듬이 깨져서인지 몇몇 대원들이 힘들어했지만 전진캠프까지는 순조로운 운행을 했다. 1차 공격조는 전진캠프에서 잠시 쉰 후 다시 제1캠프로 향했다.

제1캠프로 향하는 설사면도 눈이 많이 녹고 얼음이 드러나 있어 중단 이후부터는 고정로프를 사용해야 했다. 운행속도도 각기 달라 필자의 경우 선두와 2시간 정도 차이가 났다. 8일 동안의 강설로 망가진 1캠프의 텐트를 보수하고 추가로 텐트 한동을 더 설치하였다. 28일 아침 1캠프를 출발한 1차 공격조는 리지상의 고정로프 구간을 지나 기존 3캠프지인 설원으로 이어지는 설사면에 이르렀다.

이 설사면은 전짐캠프와 1캠프 사이와 마찬가지로 얼음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고 심지어는 크레바스도 드러나 있었다. 기존 캠프지에 도착한 대원들은 잠시 숨을 고른 뒤 2캠프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을 향해 설원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암릉과 그 위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도착한 2캠프에는 오스트리아대가 버리고 간 3∼4인용 텐트가 있어 유용하게 사용했다. 또한, 복통으로 베이스캠프에 머물고 있던 현창길대원은 새벽 4시에 운행을 시작하여 1캠프로 합류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29일 아침, 약간은 무거운 머리로 일어났지만 전반적인 컨디션은 양호했다. 그러나, 허승관대원은 두통을 호소했다.

이 날은 7300미터 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외국원정대의 텐트를 사용하기로 되어있어 짐이 그리 많지 않아 부담을 덜어줬다. 3캠프까지는 설사면이 지루하게 이어진 코스로 허대원이 자꾸 처지기 시작했다. 국내 훈련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소유자였던 그가 한발 한발을 무겁게 옮기더니 급기야 설사면에 주저앉고 말았다. 2캠프의 스페인대 캠프에서 허대원을 40분 정도 기다린 필자는 허대원에게 접근 그의 짐을 넘겨받고 그에게 하산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허대원은 아주 천천히 2캠프로 하산을 시작했다. 필자는 3캠프에 먼저 도착한 선두보다 2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고 허대원 대신 1차공격조에 편입된 함동호대원은 오후 5시경 3캠프에 도착했다.

돌아오지 않은 허승관대원

한편 2캠프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던 허승관대원은 힘들게 2캠프에 도착한 현창길대원과 함께 1캠프로 하산을 시작했다. 텐트를 나서는 허승관대원에게 임공택대장과 오은선대원은 미숫가루를 탄 수통을 건넸고 허승관대원은 특유의 미소로 답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모습이 허대원의 마지막 모습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후 5시. 3캠프에 있던 필자는 하산하는 허승관, 현창길대원을 무전으로 불러 상황을 알아보았다. 현창길대원은 고정로프가 없는 설사면을 내려섰으며, 1캠프가 보이는 고정로프 시작점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답했다. 필자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밤 9시경 현창길대원으로부터 긴급한 무전이 왔다.

하산중 허승관대원과 헤어졌으며 자신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랜턴이 없는 관계로 더 이상의 운행은 어려우며 그 위치에서 비박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2, 3캠프에 있던 대원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당황했다. 박영석대장은 현창길대원에게 비박에 필요한 주의사항을 전달했고 안전을 당부했다. 그리고, 허승관대원은 먼저 제1캠프에 도착 현창길대원을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30일 새벽 2시. 3캠프의 다섯명의 대원들은 정상공격을 위해 기상했다.

양송이스프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후 텐트 밖 상황을 보니 밤사이 눈이 많이 내렸다. 공격조는 고심 끝에 당일 공격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잠을 청할 무렵 비박을 하던 현창길대원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자신의 비박지가 1캠프 바로 위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1캠프에 도착한 현대원은 캠프에 허승관대원이 없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알려왔다. 그렇다면 허승관대원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즉시 침낭 수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그의 대답은 3개였다. 원래 4개가 맞는데 한 개가 없는 것이다. 허승관대원이 침낭 하나를 가지고 전진캠프로 하산했다는 추리가 가능했다.

급히 현대원을 전진캠프로 하산시켜 확인토록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생각 없다. 좁은 텐트에 앉아 무전기만을 쳐다보며 소식을 고대하던 끝에 전진캠프에서 올라온 소식은 '허승관대원이 없다'였다. 또한 폭설로 하산중이던 스페인, 프랑스 대원에게 무전으로 부탁하여 외국캠프지를 수색했지만 허승관대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실종'이었다. 원정대는 즉시 등반을 포기하고 수색작업에 나섰다. 2캠프의 이치상, 김형우대원이 먼저 1캠프로 향했고, 나머지 대원은 캠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같이 등반에 나섰던 피터도 수색작업에 동참했다.

3캠프의 대원들이 2캠프에 도착한 후 이치상대원으로부터 1캠프지 아래 설사면에서 붉은색 물체를 발견했다는 연락이 왔고, 허승관대원 의류색상에 대해 물어왔다. 붉은색에 검정색 배색. 하산 당시 허대원은 붉은색 파카에 검정색 덧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 물체는 1캠프로 하산하던 모든 대원들에게 목격되었고 형상으로 보아 허승관대원으로 여기게되었다.

그러나, 신설로 인한 눈사태의 위험과 화이트아웃으로 인한 시계불량으로 접근은 다음날로 미루어졌다. 31일, 수색을 위해 1캠프에 남아있던 대원들은 가스가 걷히기를 기다려 고정로프와 등반로프를 이용하여 문제의 물체에 접근했다. 그 물체는 허승관대원이 아닌 그의 우모 파카였다. 그리고, 사방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계속되는 분설과 가스로 수색을 중단한 대원들은 베이스캠프로 철수를 시작했다.

전진캠프아래구간은 따뜻한 날씨로 반 이상이 폭포를 이뤘고, 계속되는 눈사태와 낙석이 대원들을 공포로 몰아갔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대원들은 다음날까지 망원경으로 사고지점 주위를 관측하고 산의 하단부를 수색했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우모 파카가 발견된 지점 아래에는 거대한 크레바스와 세락이 형성되어있다. 그렇다면 그쪽으로 빠진 것일까? K2메모리얼에 허승관대원의 이름을 새긴 스테인리스 접시를 박으면서도 그의 부재를 실감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의 특유의 미소로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글·전종주 객원기자 사진·원정대 제공>

■ 원정대일정

6월 12일 선발대 출국
6월 19일 본대 출국
7월 10일 베이스캠프(4,900m) 건설
7월 14일 1캠프(6,150m) 설치
7월 15일 2캠프(6,800m) 설치
7월 29일 3캠프(7,300m) 설치
7월 29∼30일 1캠프로 하산중 허승관대원 실종
7월 31일 1캠프 부근 수색
8월 3일 베이스캠프 철수
8월 11일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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