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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레킹 /  일본 북알프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

 

나그네는 산에서도

쉬지 않는다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다테야마의 만년설 장관

글 · 김갑식 편집장   사진 · 김갑식 & 자료

 

 

도야마행 비행기를 타려고 승용차를 몰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에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폭염이 계속되던 차라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환상처럼 비가 뚝 그치자 수은주는 다시 치솟았다.

탑승을 끝낼 즈음 다시 굵은 빗줄기가 공항의 커다란 유리창에 거의 수직으로 부딪치고 있었다. 굉음을 내지르며 이륙한 항공기가 구름 위로 솟구치자 고은 시인이 말한 이현실증(離現實症)을 증명이라도 하듯 창밖으로 쨍쨍한 햇볕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도야마 공항에 도착하자 도야마현 국제관광담당 미와 고토 주사와 김주희 코디네이터가 반갑게 일행을 맞아준다. 우리는 이곳의 명물 메뉴라는, 가난했던 시절의 사연이 숨어 있는 짠 맛의 ’블랙 라면‘을 가난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고 나서, 미니버스에 올라 시라카와고로 향했다.

 

동화 속 나라 시라카와고 마을

시라카와고 마을에 오자 마치 동화 속 나라에 온 것 같았다. 우리나라 초가와는 달리 경사가 높은 삼각형 지붕인데 일본어로 갓쇼츠쿠리(合掌造り)형태의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마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에도시대 때 폭설로 인한 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볏단을 두껍게 사용했고 눈이 오면 쌓이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기 쉽게 급경사로 지붕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과 비슷해 ‘합장양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눈에 시라카와고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니 동화 분위기가 더욱 풍긴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아기자기함이 돋보이는 정경은 흡사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특히 눈이 쌓인 겨울 정경 사진이 있어 살펴보니 더욱 환상적인 이국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구로베협곡을 달리는 토로코 열차

우리나라 유원지에서도 볼 수 있는 장난감과도 같은 소형 토로코 열차. 해발 2000m가 넘는 산봉우리의 겨드랑이에 깔아놓은 협궤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한여름 한낮에 한기까지 느껴지는 산바람을 맞는 즐거움은 유별나고 독특한 것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깊고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이름난 구로베협곡 양쪽으로 펼쳐지는 계곡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곳곳에 설치된 붉은칠을 한 다리와 녹음 짙은 숲 그리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흐르는 계곡물은 자연의 멋진 3중주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우나즈키역에서 출발하여 마지막 종착지인 게야키다이라역까지의 거리는 대략 20km. 1시간 반이 걸린다. 나는 쉴새 없이 셔터를 누르며 생각했다. 이 험난한 곳에 협궤를 놓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이 협궤열차는 처음 구로베강에 수력발전소를 짓기 위한 인력과 장비를 실어나르기 위해 설치되었는데, 이제는 주로 관광용으로 운행되고 있다. 중간중간 간이역이 있어 마음 내키는 곳에서 내려 조망을 즐길 수도 있다.

열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곳곳에서 만년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올해는 6월까지 보였다고 한다. 특히 종점인 게야키다이라역 부근에서도 만년설을 볼 수 있다고. 게야키다이라역 옆쪽으로 만년설이 녹은 차가운 구로베강이 흐르는데, 강 한켠에서는 온천수가 솟아 번갈아 만년설물에 발을 담갔다가, 뜨거운 온천물에 담그는 등 유별난 재미거리도 놓칠 수 없다. 토로코열차는 사방이 확 트인 객차와 유리창이 있는 객차가 있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유리창 객차를 이용하게 하는데 한여름에도 산바람이 차가와서 윈드자켓을 준비해야 한다. 이곳은 눈이 많이 와 12월부터 4월까지는 열차운행이 중지된다.

 

일본의 지붕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

알프스 산맥이 유럽의 지붕이라면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Alpine]루트는 ‘일본의 지붕’ ‘일본의척추’로 불리며 유럽 알프스 못지 않은 ‘동양의 알프스’ ‘일본 알프스’의 명성을 얻고 있다.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산악강국이었던 영국의 산악인들이 이 지역을 다니며 알프스 산맥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인 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것.

다테야마(立山?3015m)는 ‘하얀 신들의 산’으로 불리는 하쿠산(白山?2702m), 후지산(富士山?3776m)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영산(靈山)으로 손꼽힌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는 다테야마 연봉을 급경사 전차, 케이블카, 로프웨이, 트롤리버스 등 독특한 교통수단으로 지나는데, 도야마현에서 나고야현까지 이어지는 약 88km의 루트로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풍광, 일본 최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오르기 위한 여정은 해발 475m에 위치한 도야마현의 다테야마역에서부터 출발한다. 이곳에서 ‘다테야마 케이블카’를 타고 7분간 올라가면 해발 977m의 비조다이라역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다테야마 고원버스’를 이용하여, 교통수단이 닿는 가장 높은 곳 무로도까지 움직일 수 있다.

폭염 속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수백 년 거목들의 자태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의 삶이 왜소하고 빈약하기까지 여겨진다. 한 가문이 대대로 생명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저 나무는 저 산기슭에 뿌리를 내리고 혼자서 굿굿하게 생명을 어어온 것이 아닌가. 시간이 공간 속으로 녹아드는 착각, 아니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시공이 하나라는 말의 의미가 순간적으로 깨달아진다

해발 2,450m의 무로도에서부터 3,015m의 다테야마 정상까지는 트래킹 코스가 있어서 많은 트레커들이 오르기도 한다. 트레킹 대신 하이킹 정도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고산에 있는 2개의 호수와 당장이라도 알프스 소녀들이 뛰어나와 요들송을 부르며 다닐 것 같은 크고 작은 언덕의 무로도 주변을 산책한다.

8월인데도 지상과 섭씨 10여 도 차이가 날 만큼 서늘하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폭설과 한파로 입산을 금지하는데 4월부터 6월까지 무로도로 이어지는 도로 양 옆으로 10층 건물 높이의 눈벽이 쌓여 감탄을 자아낸다고.  

 

 

해발 1,500m에 웅장한 모습으로 건설된 아치식 구로베댐

스위스 융프라우로 가는 암벽 속 터널을 뚫는 데만도 수십 년이 걸렸다는데 다테야마 터널도 만만치 않은 세월이 걸렸다고. 무로도에서 10분가량 다테야마 터널을 지나는 트롤리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일본알프스와 구로베 호수, 그리고 해발 1,500m에 건설된 멋진 아치식 구로베댐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다이칸에 도착한다. 구로베댐 건설은 일본 역사의 큰 획을 긋은 대사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공사중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요즘도 그들을 추모하는 위령비 앞에는 항상 헌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다테야마 로프웨이’를 타고 약 5분 동안 하산을 하게 되면 구로베다이라에 도착한다. 구로베다이라에서 구로베 케이블카를 타고 5분간 올라가면 구로베댐에 닿는다. 정상 부위의 만년설이 녹아 에메랄드빛으로 반짝거리는 구로베호수의 물과, 일본에서 가장 높은 구로베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구로베댐은 6월부터 10월까지 관광객들을 위하여 안개 물을 뿜어져 나오게 하는데 멋진 무지개를 만들어내며 장관을 이룬다.

여정을 마치면서 어디서든 사람 사는 모습은 대동소이하다는 것, 결국 이 지구라는 별에 사는 모든 인류는 한통속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마지막 숙박지, 만텐 비즈니스 호텔에서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는 타카오카의 밤거리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겨 둔다.

다음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은빛 날개를 자랑하는 거대한 비룡 같은 항공기가 도야마 공항의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자 여독에 지친 나는 차츰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다테야마의 깊고 서늘한 계곡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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