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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의 세계산책_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수상자 크리스 보닝턴

 

크리스 보닝턴 경(卿·Sir)과 함께한 5박 6일

· 신영철 편집주간  사진 · 정종원 기자

 

인천공항 출국장 문이 열리고 크리스 보닝턴 경이 걸어 나왔다. 두 번째 방한이지만 10년 전 만났을 때와 변함이 없다. 백발에 길게 기른 하얀 수염, 꼿꼿한 자세. 울주세계산악문화상(Ulju Mountain Culture Awards·UMCA) 수상을 위한 방한이다. 산악문화 발전에 평생을 바친 세계의 산악인 중, 매년 한 명을 선정하는 영화제 메인이벤트 주인공. 아시아 산악연맹의 환영 플래카드를 본 보닝턴 경이 활짝 웃었다. 웃음까지도 십년 전과 같다. 여든 네 살이 되었는데도.

 

산을 잘 올라 기사작위를 받은 산악인

보닝턴 경의 눈부신 등반기록을 제한된 지면에 세세하게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등반에 관한 기록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알 수 있으니까. 그 대신 나는 그와 보낸 기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 전설처럼 유명한 산악인들을 무수히 만났지만, 등산 잘해 경(卿·Sir)이 된 인물은 처음이니까. 영국은 에드먼드 힐러리와 존 헌트 대장에게도 작위를 내렸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미 이승의 사람들이 아니었으므로.

여든 네 살이 된 보닝턴 경이 관조하는 산은 과연 어떤 것일까. 생리학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평생 산과 더불어 살아 온 노(老)산악인의 철학은 어떤 것인가.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허연 수염이 산신령을 닮았듯 그는 산에서 깨달음의 도(道)를 얻었을까. 알수록 실체가 모호하여 안개 같이 뿌연 요상한 알피니즘이라는 화두를 그는 단박에 풀어 줄까. 그런 개인적 감정도 섞여 있어 난 소위 ‘영접위원회’ 멤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인정 아시아연맹 회장과 정기범 한국산악회 회장, 배경미 아시아연맹 사무국장과 나. 그리고 전 일정 사진 기록을 위한 본지 정종원 기자까지 자생적으로 구성되었으나, 실체가 없는 영접위원회였다. 우리는 2년 전 라인홀드 메스너와 작년 릭 리지웨이를 공항에서 영화제 현장까지, 현장에서 귀국할 때까지 동선을 함께 해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5박 6일을 함께 보내며 국적을 떠나 존경했던 선배들 생각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은 얼마나 복된 것인가.

보닝턴 경은 혼자 방문한 게 아니다. 그와 동행한 ‘유쾌한 할머니’ 아내 로레토가 있었다. 전문산악인은 이기적이다.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한 아빠와는 거리가 먼, 오지와 극지를 평생 누비고 다녔던 보닝턴 경 아니었던가. 두 아들을 낳고 기르며 평생 보닝턴 경이 가는 길을 지지해준 첫 아내 웬디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영상을 보며 알았는데 그녀를 회상할 때면 보닝턴 경은 하얀 머리칼을 쥐어 잡고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그러다 유쾌한 할머니 로레토가 운명처럼 나타났다. 후배의 아내였으므로 서로 잘 알고 있던 사이였기에 운명일 것까지는 없겠으나 부부가 될 인연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 로레토의 전 남편은 세계산악연맹(UIAA)회장을 역임한 영국의 유명한 산악인이었다. 아들 딸 결혼시켜 손자까지 보고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 로레토는 보닝턴 경과 2016년 결혼했다. 불과 2년 전 이야기다. 그러므로 로레토를 바라보는 보닝턴 경의 시선에 사랑이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신혼부부라 해도 될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로레토 할머니는 셀카를 즐겨했다. 그 활달한 동선이 분위기를 띄운다.

 

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행사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듯 보인다. 북적거리는 인파와 거대한 건물과 구조물을 보며 보닝턴 경은 눈이 커질 만큼 놀란다. 66회를 맞아 가장 오래된 이탈리아 트렌토 산악영화제와 42회를 맞는 캐나다 밴프산악영화제에 비해 울주영화제는 이제 3회째다. 하지만 그건 경쟁부분으로 발돋움한 이후만 계산했을 때 그렇다. 밴프영화제 수상작을 받아 이곳에서 8년간 상영하며 학습과 조직을 가꾸어 왔다. 울주영화제 실무자와 밴프를 갔을 때가 있었다. 그때 실무자에게 물었다. A라는 감독이 만든 영화를 밴프에 출품하는 동시에 울주영화제에도 출품한다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우문이었고 즉시 실무자 현답이 나왔다. 산악영화는 배고프다. 따라서 그걸 만드는 감독들에게 더 많은 상영기회를 주는 게 마땅하다. 영화제마다 심사기준이 다르니 수상작도 다르다. 그러면 된다. 그러므로 A라는 감독은 작품을 인터넷으로 트렌토와 밴프, 그리고 울주영화제에 출품하고 있다. 올 해도 무려 44개국에서 388편이 들어왔다. 하여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비록 출발은 늦었으나 해외 산악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동시간대 제작되는 산악영화를 공유한다. 이것이 울주군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산악영화제를 선점한 효과일 것이다.

보통 영화제에는 레드카펫이 있듯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는 그린카펫이 있다. 울주산악영화제의 전야제에서는 한국의 유명 산악인은 물론 안성기, 이정재 등 유명한 배우들도 많이 보였다. 그러나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마지막에 등장한 이날의 히로인 보닝턴 경이 단연 돋보였다. 나이가 증명하듯 열띤 분위기 속에서도 행동 하나하나가 여유로웠다. 관중석 앞줄에 앉은 보닝턴 경의 부인 로레토 여사의 셀카 놀음이 또 시작되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는 <던 월>. 요세미티 엘케피탄에 새로 개척하는 루트 ‘던 월’을 19일에 걸쳐 두 명이 올라가는 100분짜리 장편 영화였다.

복합공간인 행사장 5개의 극장 중 가장 큰 움프시네마는 관객들로 꽉 차있다. 바위벽을 등반하는 두 사람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며 관중들은 영화 속으로 몰입해 갔다. 슬쩍 건너다보니 가장 앞줄에 손잡고 앉은 보닝턴 경 부부도 영화에 빠져 들고 있었다. 선등자가 추락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안타까운 탄식이 나왔고 어려운 부분을 돌파할 때는 박수가 나왔다. 전에 없던 현상이었다. 관중을 동원하지 말라고 이선호 울주군수는 기자들 앞에서 말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건 이제 영화제가 그만큼 알려진 덕분일 것이다. 산악영화에서 박수가 나오며 영상을 공감하는 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왔다는 반증이었다. 멀리서 찾아 온 마니아들답게 작년과는 관객 수준이 다르다고 울주군의회 간정태 의장이 말한다. 그런 열기와 진정성을 보닝턴 경도 확실하게 느꼈을 터였다.

 

알피니즘에 대하여 말하다

이튿날인 7일, 복합웰컴센터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에 앞서 선물교환이 있었다. 이선호 울주군수는 독립법인이 된 산악영화제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선호 이사장은 보닝턴 경에게 영남알프스를 찍은 액자를 선물했다. 보닝턴 경은 바위에 쇠못(피톤)을 박는데 사용하는 피톤 해머를 이사장에게 건넸다. 보닝턴 경이 1950년대부터 알프스 암벽이나 치마그란테 북벽 초등에 사용한 손때 묻은 등반 장비였다. 앞으로 웰컴센터에는 산악박물관이 만들어 질 계획인데 보닝턴 경의 피톤 해머도 그곳에 전시될 것이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보닝턴 경은 자신의 등반경력을 슬라이드로 보여 준 후, 모두 발언을 한다.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세계산악영화제를 거의 다 다녀본 경험이 있다. 인사치레로 말하는 게 아니라 울주영화제가 그 중 가장 성대하고 짜임새가 있다고 본다. 들은 말이지만 각 영화관의 예매율이 모두 매진되었다는 건 놀라운 현상이다. 어제 개막작을 보는 관객들의 환호와 탄식을 함께하며 함께 공감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누군가 1975년 에베레스트 남벽 등반 당시의 상황설명을 요구했다. 대원은 모두 18명이었으며 그중 10명은 영국을 대표하는 쟁쟁한 클라이머들이었다는 답변. 그가 1975년 남벽을 초등하고 2년 후인 1977년 한국은 노멀루트로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한국이 들썩일 정도의 성공이었는데 이미 그보다 2년 전 몇 배나 어려웠던 거벽을 성공한 보닝턴 경 등반대. 우리도 익히 아는, 당대의 걸출하지만 까탈스러운 대원들 성격을 조화시켜 원정을 성공시킨 부분에서 보닝턴 경의 리더십을 본다.

보닝턴 경에게 묻는 기자들 질문과 응답은 늘 듣던 이야기의 재판이니 재미가 없다. 보닝턴 경의 경력도 그렇다. 잠시 인터넷만 뒤져도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인데 판에 박힌 질문과 응답. 극지법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상업등반에 대하여서는요? 이런 질문과 대답은 모범답안이었으니 생략하자. 다만 등반에 도움을 주는 셰르파에 대한 견해는?이란 질문에 대한 답.

“1960년대 히말라야 등반 때 만났던 셰르파와 지금도 교류를 하고 있다. 내가 아는 강한 산악인들은 등반의 동료였던 셰르파들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 존재와 강인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일부 원정대는 셰르파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자존심이거나 외부시선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무릎을 쳤다. 한국원정대 중 셰르파 도움 없이 히말라야 고봉을 오른 적이 있었던가? 보고서에 셰르파의 절대적인 헌신과 기여를 기록한 적이 있었던가? 그들은 돈을 받고 고용된 용병이고 우리는 돈과 관계없는 알피니스트라 그런가? 슬그머니 부끄러운 감정이 솟았다. 거침없이 나오는 등반에 관한 부끄러운 일화도 재미있다. 눕체 초등정 당시 고소캠프에서 주먹다짐까지 갔던 대원간의 불화. 지금도 만나지 않는 고집은 일부 한국원정대와도 닮은꼴 아닌가.

알피니즘은 동서양 구분이 없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서양의 알피니즘은 정복의 개념이지만 동양의 알피니즘은 융합이고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한 견해는?”

동시통역으로 그 질문을 이해한 보닝턴 경이 즉각 반응했다.

“노우, 전혀 그렇지 않다. 알피니즘이란 칼로 자르듯 단박에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산은 종합적 해석이다. 내게 등산의 기쁨이란 정상에 올랐을 때 뿐 아니라 정상까지 가는 그 길이다. 산을 누가 정복하는가?! 산은 존중받고 존경해야 한다.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는 시련과 극복, 동경과 모험,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 갈등과 공존 등이 있다. 그런 총합이 알피니즘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오르고 있다.”

나 역시 이제는 도전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서구의 알피니즘을 벗어나 산을 관조하는 한국적 철학이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이분법적 생각이 틀렸다.

“한창 기운이 넘쳤을 때, 즉 40살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우 경쟁적이었고 야심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정복이란 말을 싫어한다. 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갖고 오르다보면 어떨 때는 정상에도 오르게 되지만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내게 등산의 기쁨이란 정상에 올랐을 때뿐만 아니라 정상까지 가는 그 길이기도 하다.”

소름이 돋는다. 보닝턴 경의 말을 듣고 막연했던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산을 오를수록 시간이 더 흐를수록 실체가 모호했던 나의 알피니즘에 대한 단상.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노(老) 산악인이 평생 몸으로 체험한 이런 철학이야 말로 진국 아닌가. 산을 조금 안다고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시선에 대한 준열한 꾸짖음으로도 들렸다. 노산악인의 차분한 인생과 숙성된 산을 보는 시선을 따라가며 즐겁다. 살아오며 연륜이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영웅인 자신을 내세우려는 치기가 없다. 보닝턴 경의 행동과 말에서 몸에 배인 겸양을 느낀다. 역시 고수다. 산 앞에서 우리도 그러한 것이다.  

마지막 질문 역시 의례적이었다. “산은 당신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보닝턴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상투적 질문이었고 수없이 답변했을 부분이었을 텐데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때 분명하게 보았다. 보닝턴 경의 눈가에 물기가 번지는 걸. 그가 입을 열었다.

“마음속 깊이 열정을 가지고 사랑했고 사랑하는 존재가 산이다”

산은 사랑이다. 모든 사랑이 우선하는 곳이란 영국 노신사의 수줍은 고백이었다.

84와 94

신불산 자락 아래는 행사장이 있고 제일 위쪽으로 우리의 숙소인 SM리조트가 있다.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유년시절 데리고 놀았던 풀벌레, 여치가 무수히 보인다. 확실히 공기가 달다. 8일은 오후 4시에 크리스 보닝턴 경의 삶과 등반, 저술, 영화에 관한 강연과 질의응답이 있을 뿐 모처럼 휴식이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볼까 했는데 그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관객 점유율이 평균 104.4%를 기록했다는데 미리 가지 않으면 입장 불가다. 자원봉사자인 학생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뿐 ‘내가 누군데’가 통하지 않는 걸 체험(?)했기 때문.  

청명한 가을의 눈부신 신불산 공룡능선을 바라보니 오르고 싶었다. 숙소 뒤로 등산로가 있었는데 가파른 탓인지 탐방객이 없어 조용했다. 정종원 기자를 채근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간밤에 마신 알코올을 녹여 내느라 헉헉 거리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난다. 보닝턴 경 부부와 배경미 국장이었다. 그들도 깜짝 놀란다. 함께 밥 먹고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며 같은 숙소를 쓰면서도 반가운 이유는 동질감을 이심전심 느꼈기 때문이라 그렇다. 작년 릭 리지웨이도 이렇게 산행에서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고 우린 함께 웃었다. 그들은 홍류폭포 쪽으로 갔고 우리는 공룡능선 릿지를 거쳐 신불산 정상에 섰다.

정상에서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진행 중인 복합웰컴센터가 한눈에 든다. 과연 거대한 행사장이다. 그런데 하산시간을 가늠하니 큰일 났다. 4시 보닝턴 경의 강연과 질의응답에서 내가 사회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공룡능선 쪽으로 하산은 더 시간이 걸릴 것이어서 간월재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겨우 시간에 도착하여 꽉 찬 강연장에서 벌렁거리며 뛰는 심장을 추스르고 있는데 유쾌한 할머니 로레토 여사의 셀카 놀음은 여전히 바빴다.

강연에서 보닝턴 경은 자신의 삶과 등반, 저술과 영화에 관한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특히 스코틀랜드 오크니섬의 30m 사암 기둥 ‘올드맨 오브 호이’ 등반이 인상적이었다. 보닝턴 경이 32살이었던 1966년 올랐던 수직 바위였다. 그 코스를 80살이 되었던 지난 2014년 다시 오른 것이다. 그것은 영국 방송에 중계가 될 만큼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 시간에 난리가 났다. 수준 높은 질문자 두 명을 선정해 보닝턴 경의 자서전 <어센트>를 사인과 함께 증정한다는 내용 때문. 산서만 출판하는 하루재 클럽에서 방한에 맞추어 출간한 이 책은 두께가 장난이 아닌 만큼 정가도 51,000원이었다.

여기저기서 손을 드는 걸 확인하는 동시에 나는 강연담당자 눈치도 봐야했다. 시간이 넘었다며 그만하라는 사인이 따랐으니까. 그럼에도 질문을 중지하지 못한 건 산악계의 어른인 김영도 회장님 때문이었다. 자꾸 손을 드는데 다른 사람에 밀려 기회를 주지 못했다. 눈치로 담당자에게 사인을 보낸 후 김영도 회장님에게 마지막 마이크를 드렸다. 그런 분위기를 안 듯 질문이 간단명료했다. “보닝턴 경! 지구에 더 오를 산이 아직 있습니까?” 쩌렁한 그 질문에 담긴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문명이 발달하고 정보가 실시간 공유되며 산은 한 없이 낮아졌다. 에베레스트도 줄 서서 올라야 하는 게 현실이다. 더 이상 지구에 오지는 없다. 그러므로 ‘고도보다 태도’를 강조하는 김영도 회장 질문은 일종의 선문답이었다. 보닝턴 경은 10년 선배인 김영도 회장과 이미 인사를 나누어 서로를 알고 있던 사이. 문득 두 분의 나이를 합치니 178세가 된다.

“그래서 창의적 등반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대세이며, 그렇게 진화될 것으로 미래의 희망을 본다.”고 보닝턴 경은 진지하게 답했다. 대덕고승들의 짧으면서도 내공이 넘치는 한판을 본 것 같았다. <어센트> 한권을 챙기며 담당자에게 말했다. 2008년 1월 보닝턴 경이 처음 방한했을 때 내가 특집으로 인터뷰 했고 그때 <사람과 산>을 챙겨주었으니 이건 책 교환인 거라고.

 

10년 후에 다시 만나자

보닝턴 경 자서전에 고마운 덕담이 담긴 싸인을 받았다. 김영도 회장님 나이인 10년 후 94세가 되었을 때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는 글을 써달라고. 보닝턴 경이 웃으며 그렇게 써 주었다. 나는 셀카에 여념이 없던 유쾌한 할머니 로레토 여사를 단상으로 불러내었다. 결혼에 대한 설명을 들은 관중은 큰 박수로 노부부를 축하해 주었다. 관중의 호응에 고무되었을까? 두 사람은 자연스레 키스를 하였고 관중은 다시 큰 박수로 현세에서의 마지막 사랑을 축하해 주었다. 보닝턴 경은 이 행사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말 그대로 영화제이니까 산악인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국가 간 장벽이 없는 알피니즘을 통하여 산과 대중과 좀 더 가깝게 만드는 축제이다. 3년 만에 이렇게 멋진 산악영화제를 만든 게 놀랍다. 초청을 받은 사람으로서 의례적으로 하는 수사가 정말 아니다. 놀랍도록 대단한 영화제다. 행사 내내 그걸 느꼈다.”

영화제는 11일까지지만 9일에 보닝턴 경의 마지막 공식 행사가 끝났다. 자신 이야기를 다룬 영화 크리스 보닝턴 경 삶과 등반에 대한 영화(Bonington Mountaineer) 상영이었다. 그 영화를 끝으로 우리는 경주로 달렸다. 한국산악회 정기범 회장이 경주에서 큰 기업을 운영하는 덕분에 불국사주지와 다담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보닝턴 경과 주지스님과의 대담을 곁에서 듣다보니 역시 선문답처럼 무게가 실려 있었다.

문화해설사의 안내와 불국사 경내를 돌아보며 로레토 여사의 셀카가 또 바쁘다. 보는 우리가 무안하게 틈만 나면 사랑 표시를 하는 부부를 보며 이인정 회장이 그에 한마디 한다. “못 말리는 닭살 부부인데 이번 기회에 ‘코리안 베이비’를 하나쯤 생산하라고 해” 그 말을 들은 것일까, 두 사람은 또 자연스레 키스를 나눈다. 경주불고기가 그렇게 유명한 줄 그때 알았다. 보닝턴 경 역시 그렇게 맛있는 소고기를 처음 먹어 본다고 했으니까. 저녁 후 우리는 조명이 밝혀진 첨성대와 왕릉을 산책했다. 보문호숫가 현대호텔에서 하루를 보낸 후 KTX편으로 서울로 와 한국적 문화를 맛보라고 인사동을 들렸다.

이제 마지막 감동을 줄 차례. 2년 전 라인홀드 메스너도 가칭 영접위원회 마지막 펀치에 확실한 친한파가 되었으니까. 그건 이인정 회장의 별장 ‘풀바리’였다. 김창호 대장 등 몇 명의 지인들이 별장 잔디밭에 모여 배경미 국장이 직접 만든 음식으로 주담을 나누었다. 배경미 국장의 손맛은 보닝턴 부부에게 또 다른 감동이었다. 역시 바쁘게 로레토 여사의 셀카가 움직였고, 그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보닝턴 경의 눈엔 사랑이 넘치고 있었다. 그렇게 가칭 영접위원회 밤은 깊어갔고 다음날 인천공항까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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