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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 _ 백패킹 with 반려견

 

 

너와 함께여서

가능했던 길

반려견 장군이와 함께 한 영남알프스 종주

 

반려견 장군이와 백패킹을 시작한지 1년이 넘었다. 나 혼자 백패킹을 간다했으면 반대했을 부모님이 장군이와 동행이라 안심하고 보내주셨다. 이 글은 지난 초겨울 장군이와 같이 했던 영남알프스 종주기다.

 

글 사진 · 이수경(을지대학교 스포츠아웃도어학과 재학)

 

 

 

서울에서 울산까지 400여km, 혼자 이 먼 거리를 운전해 온 것은 작년 여름에 거제진맥트레일런닝에 참가한 이후로 처음이다. 그 때 첫 장비들을 가지고 장군이와 둘이 4박5일 캠핑을 다녀온 것이 얼마 전 같은데 장군이와 백패킹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장군이와 산을 다니는 몇 년 동안 마음속으로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을 넘나드는 백두대간 종주나 화대 종주 등을 해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온몸에 털을 두르고 있는 짐승인 녀석과는 함께할 수 없는 국립공원이라 마음속으로만 이따금 떠올리던 일들이다. 그러던 중 지난 가을 추석 때 영알 종주를 갈 계획이라는 한 인친분(인스타친구의 줄임말)의 피드를 본 뒤 영알 종주에 호기심이 들어 영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영알 종주는 영남알프스의 줄임말이다. 영남알프스는 울산, 밀양, 양산, 청도, 경주의 접경지에 형성된 가지산을 중심으로 해발 1천m 이상의 산들이 수려한 산세와 풍광을 자랑하며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만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알 종주에는 9개의 산을 넘는 태극종주와 7개의 산을 넘는 환종주가 있다. 많은 후기들을 읽어보니 태극종주는 2박3일, 환종주는 1박 2일 안에 끝내면 정석인 것 같았다. 일박이일 환종주도 산길 35km 정도로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장군이와 함께하기에 최적의 계절, 12월에 떠나다

종주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고려한 것은 장군이의 체력상태와 등산객들의 유동 정도. 영남알프스는 가을이면 산 곳곳이 억새로 가득한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여 전국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억새밭이 넘실대며 춤추는 가을에는 억새보다는 앞사람 엉덩이를 보며 산을 올라야 하는 곳이다. 사람 많은 곳은 녀석과 같이 다니기 어려운 점이 많다. 더욱이 장군이도 가을보다는 겨울에 더 활발해지고 컨디션이 좋아진다. 특히 영알은 억새가 많은 대신 햇빛을 가려줄 만한 숲의 그늘이 부족하다. 때문에 털이 빽빽한 이중모의 장모인 녀석이 햇빛에 지치지 않을까하는 하는 마음에 우리는 겨울이 시작되는 12월 초에 종주를 떠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1박 2일 동안의 영알 날씨는 나와 장군이에게 있어서 최고로 쾌적한 기온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따뜻하고 공기는 차가웠던 그날 우리는 영남알프스 종주를 떠났다.

해가 짧은 12월,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을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새벽 두시부터 일어나 출발해야만 했다.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배내고개에 가기 위해서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꽤나 많이 올라간다. 산 너머로 해가 올라온 지 십여 분이 지나서야 주차장에 도착했다. 해가 뜨기 전부터 산행을 시작하려던 계획이었는데, 시작 전부터 차질이 생겼다는 약간의 조바심에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칼바람이 몰아쳤다. 등산을 위해 가벼운 옷차림이었던 나는 장군이의 아침밥으로 생닭 한 마리를 주고는 다시 차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아침으로 준비한 빵도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는 강추위였다. 네 시간이나 달려왔는데 피곤함과 추위 때문에 종주에 대한 의지가 주춤해졌다. 차에 박스 채 준비해둔 핫팩을 두둑이 챙겨 가방에 넣고 난 뒤 하나를 뜯어서 마구 흔들어 댔다. 손바닥보다 작은 손난로가 주는 온기를 위로삼아 종주 완주의 의지를 마음속에 되새겼다. 막상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니 몸에서 열기가 나며 땀이 흘렀다.

 

능동산~ 천황산~재약산

첫 번째 산인 능동산은 잘 닦인 계단을 따라 무념무상 한 시간여 정도 열심히 오르면 당도하는 곳이다. 능동산 비석을 지나서부터는 능선을 따라 조망이 터진 곳이 나온다. 그러다 어느새 임도길에 들어선다. 들머리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바람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영하 십도였던 온도도 영상으로 껑충 올라갔다. 새파란 하늘과 포근한 날씨, 그제야 우리가 영남알프스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마음이 마구 들뜨기 시작했다.

장군의 신난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편안하지만 지루했던 임도길이 끝나고 블로그나 카페 후기에서 자주 등장하던 샘물상회가 내 눈앞에도 나타났다. 이른 시간이라 문은 열지 않았었다. 샘물상회를 지나면 천황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나온다. 천황산 데크길 양 옆으로는 억새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비록 한창 때인 가을억새밭과는 견줄 수는 없겠지만 장군이와의 동행길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 팀의 등산객밖에 만나지 못했다.

천황산 비석은 7개의 비석들 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다. 혹시나 우리 사진을 찍어주실 다른 등산객이 오시지 않을까 기다려 봤지만 결국 내 사진은 남길 수 없었다. 천황산에서 재약산을 가기 위해서는 산을 한번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한다.

그 중간에 있는 사자평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다. 우리가 고프로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 것을 구경하던 아저씨와는 어쩌다 보니 재약산을 함께 올라가고 있었다. 재약산 앞 주암상회 데크에서 주무신 아저씨는 상회에 무거운 가방을 잠시 내려두시고 천황산에 다녀오시던 길이였다. 울산에 사시는 아저씨는 거의 매주 이 곳 영알 산들 등지로 등산을 하러 오신다고 하셨다. 백패킹 가방을 메고 지치지 않은 척 아저씨의 발걸음을 따라 잡으려니 숨이 거칠어지고 땀이 흘렀다. 혼자였음 쉬엄쉬엄 올랐을 텐데 발 빠른 일행이 있었던 덕분에 빠르게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재약산 비석은 천m 고지의 산 비석 치고는 작고 볼품없었지만 삐죽삐죽한 바위들 위에 위치해 있어, 풍경은 가장 멋있는 곳이었다. 아저씨 덕분에 장군이와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아저씨로부터 이래저래 산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그 중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바위는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기가 약한 사람들이 바위 위에서 살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였다. 사실을 확인한 바 없지만 어쩐지 그럴듯한 이야기에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재약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아저씨의 가방이 있는 주암상회에 들렸다. 영알에 주말마다 오신다던 아저씨는 주암상회 주인아저씨와도 매우 친해 보이셨다. 주암상회에서 아저씨가 사주신 라면 한 그릇을 겨우겨우 비워냈는데 이 때 라면을 먹지 못했다면 하루 종일 쫄쫄 굶을 뻔했다. 라면을 먹은 뒤 난로 앞에서 믹스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길을 떠났다.

주암상회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정말이지 멀고도 험했다. 동영상 촬영을 위해서 스틱을 포기했던 나에게는 낙엽이 가득 쌓인 계곡길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장군이나 나나 발을 내딛는 족족 미끄러지며 맥을 못 추었다. 언제쯤 이 길이 끝나나 속으로 백번쯤 되세 길 때쯤 겨우 주암마을에 당도할 수 있었다. 주차되어 있던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타고 청수골짜기로 향했다. 차타고 삼분 거리인 곳이지만 장군이는 차에 타자마자 금세 곯아떨어졌다. 시각은 오전 한시 반, 모든 게 순조로웠다. 우리의 종주가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불시 야영

영남알프스 종주 시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영축산을 올라가는 청수골짜기 길로, 골짜기의 길이 여러 갈래로 갈리고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길을 헤매기 좋은 곳이다. 우골이나 다른 길로 빠지게 되면 고생하므로 좌골로 진행해야 한다, 제대로 좌골을 타고 오르면 한 시간여 정도 만에 단조성터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아저씨와 기분 좋은 헤어짐을 하고 등산로가 나있는 데로 삼십분 쯤 올라왔을까, 그제서야 처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위치를 확인해보니 이럴 수가! 지금껏 우골에 들어서서 진행하고 있었다. 우골로 계속 갈 것인가 다시 내려와 좌골을 찾아갈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하산을 감행했다. 사실 이 때 계속 우골로 진행했다면 조금 힘들지언정 제 때 단조성터에 도착했을 것이다.

다시 내려와 좌골을 찾는 순간부터 고생길에 들어섰다. 좌골 입구는 식당이 사유지로 막아놔서 계곡을 통해 조금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아예 산을 내려와 신불산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신불산자연휴양림을 통해서 가는 길은 반듯한 등산로와 확실한 이정표가 있는 산책코스 수준의 등산로여서 이 길을 통해 가면 단조성터까지 30~40분이면 오를 수 있다고 들었다. 휴양림이지만 휴양림 방문이 목적이 아니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지만 역시나 장군이는 절대로 출입시킬 수 없다는 침울한 대답만 듣고 다시 내려와 청수골짜기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괜찮다며,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식당 뒷마당에도 들어가 보고, 이리 저리 헤매다 겨우 좌골 등산로를 발견했다. 이제 부지런히 올라갈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잔뜩 쌓인 낙엽 때문에 올라갈수록 등산로가 끊기다 이어지다를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버렸다. 바위가 많은 골짜기 길이어서인지 이 바위가 그 바위인 것 같고 헷갈리기 시작했다. 시각은 세시 반 정도, 일몰은 정각 다섯 시 정도이지만 산골짜기여서 영축산 너머로 해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내가 한 뼘 올라가서 해를 붙잡아도 해는 빠르게 도망갔다.

장군이는 아침 일곱 시부터 시작된 산행이 고된지 계속 가다 멈춰 서서 그만 올라가자는 눈빛을 보내왔다. 내 눈에서는 당장에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 주시며 무사히 완주하라던 아저씨에게 전화해 길을 잃었다고 도와달라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가 영축산 골짜기에서 세 시간 여를 헤매는 동안 단 한명의 등산객도 만나지 못했다. 일행이라고는 장군이와 나 둘 뿐이지만 이 팀의 리더이자 선등자인 나는 강행해서라도 올라갈지, 다시 내려갈지, 여기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을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다시 내려간다고 한들 내일이라고 등산로를 찾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텐트 칠 곳을 알아보기로 했다. 바위가 워낙 많은 곳이라 텐트를 칠 만한 적당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계곡을 등지고 있는 큰 소나무 바로 앞 평평한 곳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텐트를 치는 동안 편히 쉬라고 깔아준 매트 위에 누운 장군은 십초 만에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텐트를 친 공간은 딱 그라운드시트 크기만 해서 플라이를 덮으니 팩을 박을 공간도 없었다. 막상 텐트를 치고 보니 경사도 약간 져 있어서 자는 동안 소나무 뒤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팩을 단단히 박고도 텐트에 들어가서는 자는 동안 텐트가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느라 텐트 안에서도 조심조심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몸뚱아리 겨우 땅에 눕히고 보니 시각이 다섯 시가 조금 안되었다. 한 숨 눈 좀 붙일까 하면서도 잠이 오질 않았다. 가방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스랑 버너 없이 비화식으로 음식을 가져왔다. 프로틴바와 물에 불려먹는 귀리, 빵과 고기통조림을 두 끼씩 챙겨왔는데, 내일 단조성터까지 올라가는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으니 물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다. 초콜릿 맛인 프론틴바 하나를 뜯었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내일에 대한 걱정과 피곤함에 핸드폰을 두드리며 길을 찾느라 무언가 먹을 생각이 도저히 들지가 않았다.

백패킹을 다니면서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일박을 결정한 적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종주에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피곤하면서 잠은 안 오고 속은 비었는데 먹을 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텐트에 들어와서는 자세 한 번 안 바꾸고 자던 장군이 자기 밥그릇에 사료를 붓는 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나 사료를 다 먹고는 곧바로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녀석의 천하 태평한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제주도 백패킹 중 초속 수십m로 부는 바람에 텐트가 날아갔을 때도 쿨쿨 자던 녀석이었다. 장군이의 담담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장군이와 단 둘이 다니다 보면 말도 못하는 녀석과 무언의 감정들을 교류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다. 이 고난 또한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번에 완주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또 오면 되는 것이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싶어서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졌다.

 

세상 영특한 장군이가 앞장서 찾아준 길

흠칫, 몇 시쯤 됐을까? 텐트 밖이 밝다. 시계를 보니 아침 일곱 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장군이 아침밥만 챙기고 서둘러 떠날 준비를 했다. 12시간을 꼬박 넘게 잔 장군이는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전날 초조할 때는 보이지 않던 이정표들이 간간히 보이고 핸드폰 지도와 비교해보며 올라가다 보니 모든 게 순조로웠다. 헌데 간간히 묶여 있는 매듭을 따라가다 보니 좌골 등산로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골짜기들이 워낙 많이 패어져 있다 보니 길도 그만큼 다양하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좌골길과 격차가 많이 벌어져 있지 않을 때 좌골길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gps를 켜 놓고 길을 찾다보니 핸드폰 배터리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출발한지 20분 정도 밖에 안됐는데 배터리가 30%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 가는 산길을 종주 한다면서 종이지도 하나 가져오지 않은 나를 자책하기도 하면서도 배워도 써먹지를 못하는 독도법 개나 줘야지 하는 심정에 막막했다.

무작정 진행하고 있는데 내 뒤를 따르던 장군이가 갑자기 내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곧잘 쉬운 길, 편한 길을 찾아내는 영리한 녀석이기도 하고, 내가 진행하고자 했던 왼편으로 나아가는 걸 보고 장군이 뒤를 잠자코 따르기로 했다. 장군이를 따라 작은 골짜기도 한 번 내려갔다 올라오고 대나무 숲도 헤집고 올라가기를 10여분 만에 기적과도 같이 등산로에 당도했다. 이 영특한 녀석을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후부터는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 키가 큰 억새가 가득한 단조성터까지 15분 만에 올라갈 수 있었다.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미로 같은 골짜기에서 벗어나니 이보다 기쁠 수가 없었다. 더욱이 길을 찾아낸 녀석이 너무 기특해서 어젯밤의 고생과 고민 따위는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길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갑자기 심한 배고픔이 밀려왔다. 프로틴바 하나를 순식간에 먹고 아끼고 아껴두었던 물도 몇 모금 들이키고 나니, 이놈의 몸뚱이는 더 많은 음식과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발걸음을 지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걸음을 바삐 옮기며 앞으로 올라가야 할 봉우리인 영축산을 바라보았다.

영축산의 첫 인상은 배가 불룩한 거인 같았다. 볼록 튀어나온 봉우리 하나가 민둥민둥하니 경사도 제법 가팔랐다. 앞서서 영축산 봉우리를 올라가는 두 등산객의 뒷모습을 보니 어쩐지 그들이 고소 등반을 하는 듯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도 오르막 중간 쯤 신불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내 가방과 장군이 가방을 내려놓고 부지런히 오르막을 오르던 중 우리 뒤를 따라 영축산을 오르던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영축산과 신불산 사이 능선에서 하룻밤을 보내신 아저씨는 엄청나게 거대한 비박 가방을 메고도 성큼성큼 올라가셨다. 아저씨의 도움으로 정상 비석 옆에서 장군이와 사진을 한 장 남길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새로운 낯선 아저씨와 동행하게 되었다. 전날 물이 부족했던 우리에게 감사하게도 물 500ml 한 병과 떡, 사과, 초콜릿 등을 나눠주셔서 장군이와 나눠먹을 수 있었다.

 

짧지만 길었던 우리의 종주 엔딩

신불산과 간월산의 능선은 정말이지 알프스처럼 아름다웠다. 신불산과 간월산을 멀리서 보면 낙타 등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봉우리 다 오르막을 오르기 전 신불재, 간월재로 데크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정상까지는 깔딱 고개 한번만 오르면 정상에 오른다. 길을 헤맬 것도 없이 한 길로 쭉 이어진 두 산은 마치 거대한 제주도의 오름을 오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신불산에서 간월재로 내려가는 길목은 등산객들이 꽤 많아 장군이와 각 측 보행을 해야만 했다.

다행인 것은 사람들 대부분 장군이를 예뻐해 주시고 맹인안내견인 리트리버라며 아는 척을 해 주셨다. 사실 리트리버가 순하고 영리해서 맹인안내견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리트리버 개체가 다 순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견종의 견공들이 특별히 사납거나 똑똑하지 않아서 맹인안내견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리트리버 특유의 선해 보이는 얼굴 때문에 반감이 들지 않는 이유에서이지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을 뿐더러 장군이가 맹인안내견인 리트리버인 것은 사실이기에 사람들이 좀 더 너그럽게 대해준 것 같다. 아무튼 황금빛 휘날리는 잘생긴 개가 자기 짐이 든 가방을 메고 다니니 사람들은 기특해 하며 장군이와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아저씨와 간월재에서 헤어진 후, 간월재 쉼터에서 컵라면과 삶은 달걀 그리고 물 500ml 한 병을 구매해 뒤편 벤치에 앉았다. 계란 두 개를 얻어먹은 녀석이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는 사이 나도 달콤한 휴식을 가졌다. 종주가 다 끝나간다는 기대감에 간월산으로 가는 오르막은 달갑기까지 했다. 간월산에서 배내봉으로 향하는 길만 남았는데 나에게는 마지막 이 길이 너무나 곤혹스러웠다. 간월산에서 배내봉까지 나진 능선길이 그저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편안한 길인 줄 알았더니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구간이었다. 사실 고도차가 심한 오르막 내리막은 아니었지만 간월산에서 이미 종주를 완주했다는 거만심이 허파까지 차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정신적으로 제법 힘들었던 곳이다.

종주 중에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이 두 번이었는데 한 번은 영축산 골짜기에서 길을 찾았던 때이고 다른 한 번은 바로 이 때 배내봉에 다다랐을 때이다. 배내봉우리에서 보이는 노을빛이 가득한 오후의 풍경과 배내봉이 세워져 있는 그 조용한 공터는 마치 영화의 엔딩 장면을 장식할 듯 아름다웠다. 배내봉에서 배내고개까지의 가파른 계단을 후들 후들 내려와 차에 타서야 우리의 짧지만 길었던 종주가 끝이 났다.

장군이와 둘이 장기 도보여행을 떠나게 되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어쩔 때는 같이 동행하고 싶지 않아도 길이 맞아 함께 하기도 하는데 지나고 나면 모두 기억에 남는 감사한 인연이다. 이번 종주 여행에서도 두 명의 은인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두 분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참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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