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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등반 _ 미국 콜로라도 라이플 마운틴 파크<하>

 

클라이머의 여행은 등반 그 자체다

채현 5.14d, 찬우 5.14b, 민수는 5.14a, 수정·예주·유빈 5.13c 완등

글 사진 · 전소영(서종국클라이밍센터)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간다고 하면, 보통 지도에서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내며 설레듯이 클라이머들은 등반지를 꿈꾸며 설렌다. 뚜렷한 등반루트를 세우고 출발한 채현이와 달리 다른 아이들은 아직 정하지 않은 등반지를 마음속에 그리며 설레었을 것이다. ‘서종국과 함께 하는 원정투어’는 늘 청소년클라이머들을 대상으로 해왔다.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클라이밍을 도전의식을 키우기 위한 목적의식보다는 어쩌면 트레이닝 목적으로 접근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진 터라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자연바위를 오르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등반의 미래를 보고, 그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코칭의 힘은 자연에서도 힘을 발한다. 자연에서의 등반은 난이도를 떠나 좋은 스트레스를 가지는 자유로운 몸짓인 듯하여 자연으로 나온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 보면 그 모습이 그대로 행복이지 싶을 때가 많다.

 

아이들과 한 달 여정으로 미국 등반여행 나서

이번 원정투어에는 처음 자연바위를 접하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등반대장인 남편과 나를 제외하고 6명으로 이뤄진 아이들 중에 3명은 외국 원정등반 자체가 처음이었다. 초등 4학년 때부터 클라이밍을 배워왔던 오수정, 등반을 한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경기등반에 그다지 메이지 않는 정민수, 부모님의 권유로 클라이밍을 접한 지 이제 1년이 되어가는 서예주가 첫 원정등반을 함께 하게 되었다. 이미 2년 전 미국 원정등반에서 14a 그레이드를 완등 했고 청소년클라이밍 국가대표 상비군인 신찬우, 멀리 지방에서 서울까지 그저 클라이밍을 좋아 배우고자 힘든 걸음을 계속하는 전유빈이 다시 함께 줄을 묶었다. 라이플 마운틴 파크(Rifle Mountain Park)를 선택한 한 달 여정의 어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비행기에 오르는지 그 마음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지만 등반자체가 그 목적의 끝임은 분명하기에 이런 저런 마음속 등반을 오롯이 이끌어 내주는 것이 이번 코칭의 목표였다.

라이플(Rifle)의 섹터마다 그 색깔이나 성질이 다 다르고 그 특성을 살피고 관찰하는 것이 등반의 시작이었듯이 아이들을 살피는 것 또한 같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난이도도 제각각인데다가 개인적 특성도 모두 달랐기에 그들의 성향에 맞는 섹터와 루트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은 등반을 마치는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등반을 즐기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몸도 맘도 편안하겠다. 그러나 등반의 그레이드를 꿈꾸는 아이들의 등반은 때론 온몸으로 땀을 쏟아내기도 하고 끝끝내 밀어내는 바위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결국 무서운 집중력으로 마침내 오른 완등의 기쁨을 쏟아내기도 하는데 하루하루가 한 시간, 한 시간이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한 달의 일정이었다.

아이들 처음 모습은 섹터에 적응하기도 전에 인기가 많으면서 난이도가 높은 루트가 많은 섹터들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츰 바위에 적응되어지는 시간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바위와 타협을 하는 경우도 생기고 지레 겁을 먹는 경우도 생기고 더러는 현재의 그레이드에 만족하려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일까 나는 원정등반을 나서며 아이들에게 늘 당부했다. 지치지 말고 하자고. 그 때문에 남편도 아이들의 식사에 비중을 크게 두었더랬다.

 

버거운 바위 앞에서 성장해 가는 아이들

2년 전 미국 중부 레드 강 협곡(Red River Gorge)에서 등반하던 찬우와의 대화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5.13c난이도만 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등반여정의 반을 넘겼던 어느 날 등반지로 향하던 녀석이 내게 “선생님! 저도 14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 자체였다. 이번 등반지에서도 나는 찬우가 그런 확신을 쏟아내주길 내심 기대했었다. 그러나 적응이 좀 늦어지는 것에 조바심이 난 것인지 녀석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보여 안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고난이도 등반 그레이드를 가지고 있는 클라이머가 원정을 나가면 당연히 더 높은 그레이드를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본인도 어느 정도 정해둔 목표치가 있었을 테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처음에는 채현이와 같은 루트인 배드 걸스 클럽(Bad Girls Club, 5.14d)을 오르고자 했었다. 그러나 한 번 시도해보았으나 많은 부분이 까다롭고 여의치 않아 가까이에 있는 더 크루(The Crew, 5.14c) 루트로 프로젝트를 변경하였다. 결론적으로 찬우는 더 크루의 모든 무브를 풀어내고도 마무리하지 못했고 프로젝트 월의 와카 플로카(Waka Floka, 5.14b) 완등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등반은 풀어낸 대로 그 답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고 바위는 날마다 새로운 색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다로운 하단 무브를 풀어내고 나면 모든 것이 될 듯 했지만 결국 마지막 크럭스는 상단에 있었음이 자신감을 많이 끌어내리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날들이 마음을 벽으로부터 밀어내기도 하였을 것이지만 그래도 다른 루트에서 목표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루트에서 완등을 걸고 내려왔으니 그것이면 충분했다. 마지막 하루의 시간을 등반에서 내려놓을 만큼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녀석의 등반은 이미 마음에서 내려와 있었고 그저 수고했다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눈빛을 나눌 뿐이었다.

작년에 이미 이곳을 경험했던 유빈이의 등반에 대한 초점은 과연 이 어린(만 13세) 나이에 14라는 그레이드를 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었다. 등반 초기, 한 해의 경험치가 있어서였을까 유빈이는 바위에 빠르게 적응하였고 5.12c루트를 온사이트로 완등해내기에, 또 수월하게 스프레이 어 톤(Spray-a-thon, 5.13c)을 완등해냈기에 14로의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결론은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14루트는. 퀵드로우 3개를 넘어가기가 버거웠다. 역시나 등반의 그레이드는 그저 사다리 같은 층층 계단의 오름짓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피라미드처럼 쉬운 난이도부터 단계적으로 쌓인 경험치가 상위 그레이드로 오르기 위한 과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녀석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지친 기색위에 바위 앞에 기가 죽어서는 쉽게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깝기까지 했다. 어쩌면 마지막 완등난이도 5.13c에 만족하려고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다시금 마음을 세우고 5.13a 온사이트를 시도하였는데 이미 마음은 집으로 향한 등반 마지막 날. 유빈이의 등반은 거기까지였고 내년을 기약하는 바람이 그나마 위로가 되어주며 마음도 몸도 멈추어서고 말았다.

마음으로 기뻐하는 완등의 순간들

아이들의 체력과 코칭에 대하여 다시 또 생각하게 하는 꼬마아가씨가 서예주였다. 원체 마른 체형인데다 펌핑이 한 번 나면 눈물을 흘리고서야 제 몸을 회복하는 초등 6학년 아이인데 등반의 과정이, 특히나 등반에 대하여 시간제한을 두지 않는 자연바위에서의 한 호흡, 한 호흡이 몹시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 가쁜 호흡에 멈추어 섰다면 예주의 등반은 아마도 5.13a에서 그 호흡과 함께 멈추어 섰을 것이다. 그 호흡과 마음을 읽어내고 코칭의 힘을 실어주려는 남편의 노력에 예주는 스프레이 어 톤(Spray-a-thon, 5.13c)을 완등하는 성과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 스타트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크럭스 구간을 만나게 되는데 180cm가 넘는 외국인들도 대부분 그 구간을 넘지 못하고 추락을 반복하는구간이다. 예주의 무브 풀이 중에 가장 큰 볼더 무브였기에 어려움이 컸지 싶다. 몸을 분리시킬 것처럼 큰 동작을 10번 시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해도 그 무브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기어코 완등으로의 길을 열어주는 것을 보면서 등반이란 결국 크럭스를 뛰어넘는 강한 의지임을 예주의 등반을 지켜보며 알 수 있었고 절대적인 크럭스 구간을 무사히 통과한다 하더라도 마지막 상단 무브까지 완벽히 풀어내고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예주의 등반은 등반일정 마지막 날에 드라마틱하게 그녀를 행복으로 이끌어주었다. 이제 초등 6학년 어린 나이이기에 앞으로의 등반이 몹시 기대되는데 부디 자연의 바위를 스스로 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생님 이제 더 못할 것 같아요” 어느 날 민수가 내게 했던 그저 그런 넋두리, 그런데 왜 그 말이 그리 익숙하게 들렸을까 아직도 이상하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2년 전 레드 강 협곡에서 어프로치하며 찬우가 했던 말 ‘어프로치 하던 중에 이렇게 걷다가 어느 날 쓰러질 것 같다’라는 뉘앙스와 많이 비슷하게 느껴져서였을까 나는 민수가 정말 간절하게 14라는 그레이드를 갖고 싶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욕심이 참 없는 민수는 의지도 많이 약한 편이었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다는 아닐 테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 녀석은 그랬다. 절실한 무엇이 없어 늘 아쉬움이 컸고 스스로 그 의지를 채워넣기에는 늘 역부족이었던 터라 남편의 당근과 채찍이 늘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제 선생님이 건네는 당근을 뱉어내지 않았고 채찍 또한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타이밍이 좀 늦은 감은 있었다. 체중을 조절하는 게 좋겠다는 코칭에 대한 녀석의 반응은 뒤늦게 왔다. 아스날(Arsenal)에서 더 콜리네이터(The Colinator, 5.14a)를 완등하고서야 체중조절을 했으면 더 일찍 완등했을 것이고 그럼 남은 날 동안 새로운 섹터의 새로운 루트에서 하고 싶은 루트들 온사이트 등반을 많이 해 보았을 텐데 하며 아쉬움을 토해냈다. 등반 마지막 날에. 아쉬움은 그래서 아쉬움인 것임을 드러내는 마음 한 자락을 보여주는 녀석의 한 마디가 안타깝기만 했다. 등반을 떠나 달리기를 하거나 공항에서 긴거리 이동을 하거나 마트를 가거나 늘 나를 앞세우고 뒤를 보아주던 민수의 따뜻한 마음 안으로 이어졌을 완등의 순간을 그저 나는 마음으로 기뻐할 뿐이었다.

 

믿음과 끈기, 세심한 코칭

오래전부터 클라이밍이라는 걸 배우면서도 해외원정등반이 처음인 녀석이 수정이다. 처음 선운산을 갔을 때도 등반지로 향하는 길가 나뭇가지 사이로 거미줄에 걸린 이슬방울이 예쁘다며 사진에 담던 수정이의 눈에 미국은 어떤 곳이 될지 그 등반지의 웅장한 바위들은 또 어떻게 담아낼지 몹시 궁금했다. 꿈을 꾸듯 등반을 할 것만 같은 수정이의 바위적응은 역시나 좀 더뎠다. 남편이 늘 강조하는 클라이밍의 기본은 올바른 발놀림에서 시작되는데 수정이의 발은 도드라지게 드러내지 않는 자연바위 위에서는 늘 불안했다. 발을 딛고 서야 다음 홀드로의 이동이 편안할덴데 그 어려움이 지속되어지는 날들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자연만을 즐기기엔 역부족인 시간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남편은 수정이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다. 모두가 힘들겠다 하여도 남편은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코칭을 놓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스프레이 어 톤(Spray-a-thon, 5.13c)을 완등했다. 처음으로 사용해보는 무릎보호대(Knee-Bar 패드)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이미 이곳 등반지에서 무릎보호대는 초크백이나 암벽화 같은 아주 일반적인 장비일 뿐이었다. 어린 예주와 늘 비슷한 그레이드의 프로젝트를 했던지라 적잖이 스트레스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바위 앞에서 남녀노소는 구분되어지지 않는다. 다만 클라이머가 그 벽을 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클라이머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며 수정이의 첫 원정등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담아냈을 것이다.

이번 원정등반의 대장이었던 남편의 등반은 그저 아쉬움이 가득했다. 일반적으로 원정등반을 나서기 전 되도록 전체적인 컨디션을 맞추고 출국하는 편인데 이번엔 대회세팅이 매주 이어져서였을까 좋은 컨디션으로 등반을 꾸리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등반을 향한 열정은 여전히 끓는 피였던지라 제 등반에 힘쓰며 최선을 다하였지만 스스로에게 이렇다 할 등반성과를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코칭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새로운 섹터, 루트를 대부분 온사이트로 오르며 홀드에 대한, 혹은 무브에 대한 세심한 코칭을 놓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모든 아이들의 등반에 나름의 성과가 있었음이 대장으로서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반을 오름짓으로 코칭하는 남편의 수고로움은 등반 마지막 날 마지막 시도의 순간까지 놓지 않았고 그의 코칭의 힘이 채현이는 5.14d를, 찬우는 5.14b를, 민수는 5.14a를, 수정이와 예주와 유빈이는 5.13c를 본인의 그레이드로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여 나는 늘 그의 등반을 응원한다. 끓는 피로 식지 않을 열정을 내내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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