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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트레킹

해외 산행 _ 킬리만자로

 

 

뜨거운 만남,

가슴 떨리는 축복

킬리만자로 등정기

 

글 사진 · 장석규

 

 

 

킬리만자로인가?

내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은 아무리 유명해도 나에게는 상상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다.

은퇴 이후 나는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해온 편이었다. 한 동안은 편안하고 즐겁고 만족했다. 한편에서는 망각과 체념이 습성화되었고, 뭔가 새로운 걸 꿈꾸고 도전하는 일은 스스로도 무모한 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점차 쇠락의 길로 빠져드는 내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말하자면 ‘안정’이란 얌전한 동물이 부뚜막에 올라앉아 나를 감시하고 구속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었다. 자유가 그리워지면서 길로 나서기 시작했다. 동네 산책길에서부터 대관령 옛길, 제주 올레길 등 이곳저곳을 찾아 걸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90km를 걷고, 3년 전 네팔 히말라야 랑탕 지역 트레킹에 나섰다가 대지진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일본 고산 다테야마(立山) 트레킹 때에는 폭설 때문에 산장에 딸린 유황 온천이나 들락날락 했었다. 새로운 도전 대상으로 모색한 곳이 킬리만자로였다.

‘아프리카의 지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킬리만자로는 우리 한국인에게 문학작품과 노래 등으로 잘 알려졌다.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과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 박범신의 장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꽃’ 같은 문학예술 작품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하고, 그 덕분인지 몰라도 일반인들에게까지 동경의 대상이자 꿈의 산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킬리만자로는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올라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해발 5,895m)이다. 히말라야나 알프스처럼 풍광이 뛰어나지도 않으며 만년설산의 위용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사막화된 지면에서는 화산먼지가 폴폴댄다. 누구나 갈 수 있다고 하지만 고소증으로 오르기가 쉽지 않아 중도 포기하고 하산해야 하는 잔인함을 견뎌내야 한다. 온갖 악조건을 갖춘 킬리만자로이기에 도전 열망을 자극하는 것이리라. 성공한다면, 아니 나서기만 하더라도 슬슬 허물어지는 나 자신을 일으켜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말로만 듣던, 소설이나 노래를 통해 상상만 하던 킬리만자로 정상 등정에 나서기로 했다.

 

킬리만자로로 가는

멀고 먼 길

킬리만자로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양평집에서 인천공항까지 3시간, 공항에서 3시간 출국 수속, 아부다비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까지 17시간의 비행 그리고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탄자니아로 이동한다. 아슐라라는 도시를 향해서 가는데 멀리 보이는 킬리만자로의 자태가 고혹적이다. 사진에서만 보던 킬리만자로를 내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는 게 꿈만 같다. 가슴이 뛰었다. 공항에서 7시간 만에 도착한 아슐라 임팔라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킬리만자로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도시 모시로 들어가 현지 가이드와 합류했다. 40시간도 더 되는 이동 시간, 킬리만자로로 들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으리라는 건 이미 각오를 했건만 긴 여정 속에서 반복되는 기다림에 벌써 심신은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꿈꾸고 기다려 왔던 일이란 말인가. 예순 다섯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킬리만자로 등정에 나선 게 꿈인지 생신지 아직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니 그까짓 어려움은 얼마든지 감내하리라는 각오를 다져본다.

1월 31일, 오전 11시 반이 지나 ‘마랑구 게이트’에 도착, 현지 가이드에게 국립공원 출입 등록을 맡기고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생경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먹던 음식을 대충 정리하고 게이트 옆에 있는 계측소로 가 보았다. 포터들이 각자 메고 갈 짐을 일일이 재고 있었고, 포터들은 그걸 위해서 길게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포터 한 사람이 지는 짐은 15~20kg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그 중량을 초과하면 포터를 더 고용해야 한다. 포터들을 보호하기 위한 탄자니아 당국의 조치이다. 내 짐 꾸러미는 16kg으로 적당한 무게로 무사통과다.

 

뽈레 뽈레,

어설픈 발걸음을 내딛다

국립공원 출입 절차를 마치고 오후 12시 40분에 마침내 게이트를 통과하였다. 5박 6일의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다. 일행은 여자 4명, 남자 10명 등 모두 열다섯 명, 그중 내가 제일 연장자다.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일렬종대로 세우더니 자신이 앞장선다. 그런데 발걸음 속도가 이상하다. 너무 느리다. 고소에 적응하기 위한 속도라며 자기를 앞질러 가지 말라고 강조한다. 자주 심호흡을 하면서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한다. 올라갈수록 건조해 지니 물을 하루 2리터는 마실 것을 주문한다. 누가 뭐랄 것인가. 현지 경험이 많은 가이드의 이야기는 킬리만자로 초보자들에게 곧 법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순리다. 우리는 일순간에 순한 양이 되었다.

가이드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니 익숙한 장면이 떠오른다. ‘쇼팽의 소나타 2번 3악장’, ‘딴 따다 다 다 따다 다 다 단, 딴 따다 다 다 따다 다 다 단’, 군악대가 연주하는 느린 음악에 맞춰 한 걸음 가다 멈추듯 한 걸음 가다 멈추듯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떼는 국립묘지의 운구 행렬, 딱 그 장면이 연상되었다. 우리 일행은 그런 발걸음으로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열대 우림으로 깊숙이 빨려들듯 걸어가고 있었다.

킬리만자로 등정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북이 같이 느린 속도와 리듬으로 걸어야 했다. 발걸음이 빨라지게 되면 호흡 유지가 곤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고도를 더할수록 길을 가다가 킬리만자로에서만 산다는 동물이 나오거나 색다른 야생화를 볼 때, 멋진 풍치를 만날 때 사진을 찍고 돌아설 때면 당장 호흡이 가빠지고 살짝 현기증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수시로 ‘뽈레 뽈레’하고 걸음을 제지하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었다.

사실 킬리만자로 최고봉 등정의 성공 여부는 고소에 적응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가 점점 희박해지다가 해발 5천 미터가 되면 산소포화도가 5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지 않는가. 고소에 적응하려면 ‘긴 호흡을 하라, 물을 자주 먹고 하루 2리터 이상 마셔라, 천천히 걸어라, 잘 먹고 잘 배설하라, 체온 유지를 잘 해라, 특히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지 마라, 말을 많이 해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는 게 그동안 산행을 준비하면서 보거나 들은 이야기거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게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몸소 체득하였다.

첫날은 그렇게 열대 우림을 통과하는 길 8km를 거의 5시간이나 걸어서 만다라 산장(해발2,720m)에 도착했다. 경사도 적은데다가 잘 정비된 흙길이어서 걷기에 쾌적한 편이었다. 중간에 야생 원숭이와 카멜레온을 보는 행운도 얻었고, 휴식을 하던 중 야생 커피나무에 다닥다닥 달린 커피 열매를 본 것은 커피 마니아인 나에게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만다라 산장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가이드와 요리사, 포터들을 소개 받는 순서를 가졌다. 가이드 8명, 요리사와 보조 5명, 포터 32명 등 모두 45명이나 되는 대부대가 한 사람의 선창에 따라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특히 ‘하쿠나 마타타 Hakuna Matata’ 노래는 우리 일행의 기분을 한껏 고무시켜 주었다. 초저녁, 머리 위로 흐르는 별들의 선명한 궤적을 보고 나서 침낭에 들어가 꿀잠을 잤다.

2월 1일 둘째 날, 해발 3,720m에 있는 호롬보 산장까지 11km의 거리를 8시간에 걸쳐 올라가는 것이 목표다.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역시 고소 적응을 위한 속도 조절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하는 일행 모두 가벼운 몸놀림인 듯하지만, 어떤 이는 약간의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8시에 일행이 모여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출발, 맨 앞에는 가이드 치키라가 서고 내가 바로 뒤를 따라 간다. 열대 우림이 이어진다. 긴 턱수염 같이 생긴 이끼를 치렁치렁 달고 있는 나무들을 오가는 흰꼬리칼리바스 원숭이들이 보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원숭이의 재롱을 구경하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지만, 가이드는 재촉하기보다 역시 ‘뽈레 뽈레’를 강조한다.

쉬는 시간이 되어 가이드 치키라와 이야길 나눠본다. 미남인 치키라는 스물아홉 살로, 사업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결혼한 지 4년 만에 7개월 된 예쁜 딸을 얻었다며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준다. 두어 시간을 지나니 키가 1~3m에 불과한 관목 숲길이 나온다. 이제부터는 그늘은 기대하기 힘들다. 뜨거운 햇볕에 노출되어 걸을 수밖에 없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이나 얼굴, 목 등 노출 부분을 잘 보호해야 한다.

땡볕을 마주하며 걷자니 불현듯 그리움이 솟구친다. 무슨, 누구를 향한 그리움이란 말인가. 어느 시인은 ‘그리움은 본디 부재와 상실을 이상화할 때 생기는 달콤한 감정’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치명적인 ‘부재와 상실’을 겪은 내게 불쑥불쑥 밀려드는 ‘쓰디쓴 그리움’의 감정을 나는 주체할 수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메어지다가 이내 통곡하곤 했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떠오르는 그리움의 실체는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 킬리만자로 등정에 나서겠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NASA가 공개한 킬리만자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1993년과 2000년 각각 촬영한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설 모습인데,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불과 7년 만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사라진 만년설,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과 실제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만년설의 모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라진 것들을 향한 그리움, 특별히 아직은 상상의 세계에 불과한 ‘킬리만자로의 눈’이 녹아서 없어진다는 데서 오는 연민, 그 ‘애틋한 그리움’이 내 발걸음의 답답함에 포개지고 있었다.

계획대로 8시간 만에 해발 3,720m에 위치한 호롬보 산장에 도착했다. 산소포화도를 재보니 82~85% 수준이다. 호흡을 하는 데 아직은 어려움이 없으나 앉았다 일어설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살짝 현기증이 느껴진다. 그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해야 했다.

 

고산 산장에서

줄다리기를 하다

2월 2일 셋째 날, 아침 여섯 시에 기상해서 밖으로 나갔다. 먼동이 트면서 펼쳐지는 노을이 장관이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반복하다가 몸을 움직여 본다. 돌이라도 묶고 있는 것처럼 묵직한 느낌이 든다. 허리를 돌려 본다. 역시 뻑뻑하다. 목운동을 한다고 좌우로 돌리니 머리가 빙그르르 도는 것 같다. ‘아차. 여기가 해발 4천 미터 가까운 곳이지.’ 그때야 깨닫는다.

오늘은 고소 적응을 위한 날이다. 오전 4시간 가량만 가볍게 걷고 다시 산장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일정이다. 2시간 동안 걸어서 해발 4,050m ‘얼룩말 바위’까지 올라갔다. ‘자이언트 세네시오 킬리만자리’란 나무의 군락지를 만났다. 이 나무는 킬리만자로 중에서도 4천 미터 이상에서만 자라는 식물로 물을 좋아해 습지에 군락을 이루어 분포하며, 추위와 바람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낙엽을 떨구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곳곳에 세네시오 군락지가 형성되어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게 인상적이다. 얼룩말 바위까지 올라가다가 휴식 시간 중에 메인 가이드 실바노와 보조 가이드 치키라에게 내가 몇 살쯤 돼 보이냐고 물었더니 실바노는 48살, 치키라는 45살 아니냐고 되묻는다. 65살이라고 하자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조금은 너스레를 떠는 것 같은데도 갑자기 20년 젊어진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치키라에게 지천으로 깔려있는 꽃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친절하게 글씨를 써서 알려준다. 줄기와 이파리는 잿빛인데 노란 꽃을 달고 있는 ‘엘바라스팅(Evalasting Flowers)’, 라벤더를 닮은데다가 이파리를 뜯어 냄새를 맡아보니 향도 비슷하다. 측백 같이 녹색이 짙은 줄기 끝에 조졸조롱 노란 꽃을 피운 ‘라니아나 카마라(Laniana Camara)’, 그런데 이 식물들을 눈여겨보니 어떤 건 이미 꽃이 져서 하얗게 말라있는가 하면 어떤 건 꽃을 피울 생각이 없는 건지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다. 거의 동시에 피었다가 한꺼번에 지는 우리 꽃들에 비하면 마냥 자유를 누리는 게 틀림없다. 피고 싶으면 피고, 아무런 생각 없이 피고 지는 것 같지만 고산지대에서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리라.

얼룩말 바위를 지나 해발 4,100m가량 되는 능선까지 올라섰다. 오른쪽으로는 마웬지 봉(5,149m)이 고딕 양식의 건물처럼 작은 봉우리들이 우뚝우뚝하고, 왼쪽으로는 킬리만자로의 주 봉우리인 키보 봉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가까이 설수록 식탁 위에 화채 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킬리만자로 키보 봉이 근엄해 보인다. 마웬지 봉과 키보 봉 사이는 풀들도 거의 살지 못하는 황량한 사막지대다. 그 가운데로 훤히 나 있는 길,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키보 산장(해발 4,720m)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킬리만자로 최고봉 등정을 위해서는 저 길을 지나야 한다. 나도 내일이면 바로 저 길을 걸어갈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호롬보 산장으로 돌아왔다. 오후, 긴 휴식을 갖는다. 가져간 책을 보려는데 자꾸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하는 되물음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만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어려움을 자초하려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들이 나 자신을 향해 쏟아졌다. 옆 사람에게 지나는 말처럼 슬쩍 물어 보았다. “쫛쫛선생은 왜 킬리만자로를 오르려 하세요?” 그 사람의 대답은 참 간단했다. ‘그냥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얼마나 단순 명쾌한 답이란 말인가. 나는 그동안 얼마나 복잡하게 생각을 해 왔던가. 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갈만한 가치가 있는가, 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기다림, 그리움, 사랑, 꿈, 열정, 자유, 도전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상상 등 나를 합리화하려는 여러 단어와 가치를 들어 이해하려고 하고 설명하려고 해 왔는데…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 가사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내가 지금 여기 킬리만자로에 와서, 저 높은 봉우리에 오르려고 하는 이유와 목적을 나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물을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올라가 보자. 애써서 올라가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으리라.

호롬보 산장의 저녁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식당 한쪽에서는 독일 사람들 넷이 모여 앉아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소리가 떠들썩하다. 이에 질세라 우리 일행 중 몇 사람이 한국에서 가져온 믹스커피 막대 봉지 4개를 가지고 즉석 윷놀이를 하며 시끌벅적이다. 밖에서는 외국인 트레커들이 막 올라왔는지 가이드들과 함께 ‘하쿠나 마타타’ 노래를 불러가며 신나게 춤을 추는 모양이다. 그렇게 고산 산장의 평화에 점점 황혼빛이 물들어 가고 있었다. 국외자처럼 그런 광경을 여유롭게 즐기는 내 심연에는 도리어 긴장감이 서린다. 과연 심야에 잠도 자지 않고 8시간 이상 걸리는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고소를 잘 이겨내야 할 텐데 하는 은근한 걱정이 산장에서 누리는 평화로움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했던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실감나게 떠오른다. 그래, 나 또한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 두렵지도 않다. 다만 킬리만자로가 주는 영혼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을 뿐이다.

2월 3일 넷째 날, 우선 키보 봉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 있는 키보 산장까지 올라가는 게 목표다. 해발 4,000m를 지나자마자 관목지대도 끝나고 사막지대가 나타난다. 어쩌다 고개를 내민 풀들마저도 시들고 메말라 잔뜩 쪼그라져 있다. 바닥에 엎드린 잿빛 엘바라스팅 이파리가 바람에 하늘거릴 때는 햇볕에 반사돼 은빛 찬란하다. 마웬지 봉에서 흘러나와 키보 봉으로 이어지는 허리선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과연 위대한 자연이 만들어낸 곡선미의 극치이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도 저런 곡선을 그려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막 한 가운데로 난 길을 걸으면서도 풍치를 감상하는 나는 아직 고소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심호흡을 자주하고 목마르기 전에 물을 마시고, 먹는 것도 잘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하쿠나 마타타’ ‘다 잘 될 거야’ 스스로 주문하듯 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산소포화도는 72%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호흡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서 걷는다.

아침 7시에 호롬보 산장을 출발한지 7시간 만인 오후 2시에 해발 4,720m의 키보 산장에 도착했다. 거리는 불과 10km, 경사도 완만한 길인데 시간당 평균 1.5km 정도로 천천히 걸은 셈이다. 키보 산장에서 쉬는 동안 얼마나 고소 적응을 잘하느냐, 얼마나 잘 쉬고 먹느냐 하는 것이 등정 성공과 직결된다고도 한다. 산소포화도를 재보니 74% 수준이다. 아직은 괜찮은 편이다.

 

실수로

고소 폭탄을 자초하다

오후 4시에 저녁 식사를 하고 일찍 잠을 자다가 밤 11시에 일어나 각자 등정 준비를 마치고 12시부터 산에 오르기로 되어 있다. 밤 12시에 헤드랜턴 빛에 의지해서 출발, 6시간 동안 절벽 같은 길을 지나 ‘길만스 포인트’라는 능선에 올라서 두세 시간을 더 가서 최종 목적지인 ‘우후루 피크’에 도달할 계획이다. 그야말로 악조건 속에 진행하는 강행군이다.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입고 가야 할 옷가지들과 배낭에 넣어가야 할 여벌의 방한 피복과 아이젠 등을 따로 챙기고 나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결전을 치룰 전사의 심정이 이럴까? 극심한 경사와의 싸움, 해발 고도 5,000~5,895m에서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고소와의 싸움, 영하 7~10도의 추운 날씨와 매서운 바람과의 싸움, 무엇보다도 그러한 악조건들과 맞닥뜨릴 나 자신과의 싸움을 앞두고 긴장감이 높아진다. 침낭을 굴리며 잠을 청해도 오히려 갖가지 의문이 일어난다. 헤밍웨이가 소설에서 얘기한 그 표범은 왜 살기 좋은 초원을 떠나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올라가서 죽었을까. 초원 생활에 진력이 났던 걸까.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초월한 사랑과 우정, 아니면 또 다른 이상세계를 그렸던 걸까. 결국은 만년설 위에서 생명을 잃고 썩어져서 세상에 남긴 건 쓸모없는 털가죽과 앙상한 뼈 조각 몇 개뿐이지 않은가. 참으로 소설 같은 상상이 날개에 날개를 편다.

나 자신을 향한 현실적인 질문도 쏟아진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나서 왜 이곳까지 와서 생고생을 하느냐, 왜 위험한 그곳까지 올라가려느냐, 이곳에서 멈춰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니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니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중도 포기할 수는 없다. 끝까지 가는 거다.’ 비몽사몽간에 누워 있다 보니 11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머리가 묵직하다. 어차피 일어나야 한다. 내복을 입고, 방한복을 챙겨 입었다. 마치 비무장 지대로 작전을 하러 들어가는 병사처럼 무장을 하는 기분이 든다. 식당에 가니 희멀건 보리죽이 기다린다. 속이 조금 거북하다. 잘 내키지는 않지만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밀어 넣다시피 한다. 다시 침상으로 돌아와 초콜릿 바 몇 개와 사탕 봉지 그리고 온수를 담은 보온병을 챙긴다. 배낭을 메고 방한 털모자 위에 헤드랜턴을 썼다.

2월 4일 00시, 드디어 출전이다. 짙은 어둠을 랜턴으로 밝히며 해발 5,000m에 근접하니 호흡 조절이 쉽지 않다. 급작스럽게 숨이 헐떡여질 즈음 마침 휴식을 갖는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심호흡을 해보지만 여의치 않다. 다시 출발해서 슬금슬금 뒤돌아보니 어스름 속에 며칠 동안 한참 위로 올려다보던 마웬지 봉이 내려다보이니 희열이 차오른다. 갑자기 배변 기가 느껴졌다. 두 번째 휴식 시간이 되자마자 어둠 속에서도 남에게 보이지 않을 큰 바위를 찾아서 그 뒤에 쪼그리고 앉는데 두 다리와 팔이 ‘짜르르’하다. 미미하게 감전된 것 같은 느낌이 오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올라갔더니 바로 출발 준비다. 서둘러야 했다.

배낭을 메고 얼마를 올라갔을까. 한 십여 분?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어서 핸드폰을 넣어두었던 주머니를 만져보니 아차, 빈 주머니였다. 순간 당황스런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앞장 선 가이드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니 다른 보조 가이드를 붙여준다. 가이드가 야생마처럼 뛰어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 역시 뛰어야 했다. 핸드폰은 일을 보던 바위 뒤에 달빛을 받고 누워 있었다. 다시 본대를 따라 잡으려고 걸음을 재촉하려니 이미 호흡이 정상이 아니었다. 아무리 심호흡을 하고 물을 마셔도 한 번 흐트러진 호흡의 리듬은 돌아오지 않는다. 헉헉 숨이 차 올라오더니 동시에 고소 증세가 파도처럼 나를 덮쳐왔다. 스스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 두통이 심해지면서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번이나 연거푸 토해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얼마간을 올라가다가 또 토했다. 물만 조금 나올 뿐이다.

그러기를 다섯 차례,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가이드가 내 배낭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가져갔다. 토할 때마다 가이드가 등을 두드려줄 뿐 동행하는 이 어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아마 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차라리 제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게 고마웠다. 하지만 이제는 토하는 게 두려웠다. 원정에 나서기 전 읽은 어느 책에서는 고소 증세로 가장 심각하고 위험하게 여기는 게 바로 토하는 것이며, 가이드가 한두 번 토하는 상태를 지켜보다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가차 없이 하산 조치를 취한다는 게 생각났던 것이다. 여기까지 올라와서 하산 당하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아깝잖아. 끝까지 견뎌봐. 아니야, 그냥 내려가!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마침 몇몇 사람이 중도에 포기하고 하산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는 걸까. 아직 정신은 살아있는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한다는 의지가 ‘이러다가 사고를 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맞서서 나를 추동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후루 피크에 서다

먼동이 터올 무렵 그 절벽 같던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서 능선을 올라탔다. 시계를 보니 6시, 출발한지 6시간 만에 해발 5,685m ‘길만스 포인트’라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고소 폭탄을 맞았으면서도 마치 사선을 뚫고 일어섰다는 감동이 가슴 깊이 밀려들었다. 길만스 포인트까지만 와도 킬리만자로 등정 인증서를 준다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스텔라 포인트’를 지나 최고봉인 ‘우후루 피크’까지 가려면 두 시간 이상을 더 가야 한다. 이미 고소증 때문에 기력은 없어도 정상을 향한 도전욕이 불타올랐다. 가이드에게 배낭을 돌려달라고 해서 다시 메었다. 다행스럽게도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극심한 곳이 많지 않았고, 다만 눈길만 조심하면 되었다.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스텔라 포인트로 가면서도 두 번이나 더 토했다. 속이 메스꺼워 가던 길가에 주저앉아 토했지만 이제는 물도 나오지 않았다. 계속 헛구역질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가이드가 다시 배낭을 달라고 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배낭도 메지 않고 빈 몸으로 정상에 이른다는 것은 킬리만자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리라. 우후루 피크 쪽이 손에 잡힐 듯한데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내야 한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제부터는 눈길이다. 하지만 아이젠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간 발자국만 따라가도 그다지 미끄럽지 않았다.

7시쯤 해발 5,756m 스텔라 포인트를 통과했다. 이제는 앞으로 쓰러져도 우후루 피크에 닿을 듯하다. 힘을 내자. 다행스럽게도 속이 조금은 진정되고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다. 겨우 고소에 적응되는가 싶은데 이제는 기력이 없었다. 출발 전 먹은 것도 부실했던 데다가 그마저 다 토하고 말았으니 저혈당 증세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마저 든다. 그렇다고 무엇을 먹을 만큼 속이 안정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정상을 향해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이제는 간간이 눈 덮인 분화구가 저 아래 보이기도 하고 왼쪽으로는 우람찬 빙벽이 듬직하다. 저게 녹아내리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곳곳을 향해 셔터를 눌러본다.

저만치 우후루 피크에 몇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장갑을 꼈지만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려온다. 바람이 몹시 거칠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키보 봉의 정상 우후루 피크에 올라섰다. ‘MOUNT KILIMANJARO UHURU PEAK, TANZANIA 5895M’라고 적힌 노란 글씨가 햇살에 더욱 선명하다. 마침내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에 품고 기다려 왔던 순간인가. 승리자처럼 두 손을 치켜들었다.

해발 고도 6천 미터 가까운 데서 맞는 햇살은 눈을 뜨기조차 힘들 정도로 찬란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마주하고 선 것보다 눈이 부셨다. 바람이 또 심술을 부린다. 어렵사리 사방을 둘러보려는데 가이드가 내려가자고 옷깃을 잡아끈다. 아니 벌써? 조금 더 있자고 해도 안 된단다. 표범이 어디에 쓰러져 있던 건지, 과연 표범의 사체는 있기는 한 건지 돌아볼 틈새도 없이 내려가야 하다니… 정상에서는 추위도, 바람도, 햇빛도, 아니 가이드마저도 방해꾼이란 말인가. 이처럼 아쉽고 허망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눈꽃 한 송이가 녹아내릴 만큼도 안 되었다. 표범처럼 죽어서 그대로 산이 되리라는 각오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자유를 누린다는 건 언감생심이리라.

식민 통치를 받다가 갈망하던 자유를 되찾은 탄자니아인들과 모든 아프리카인들의 자유를 상징하는 곳으로 영원할 우후루 피크. 그것이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누리고픈 자유는 희생되어도 가슴에 새겨진 킬리만자로의 혼은 무궁하리라.

 

하산, 그리고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더 머무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접어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 들어섰으나 기력이 너무 없었다. 초콜릿 바 한 개와 초코파이 한 개를 가이드와 나눠먹었다. 고맙게도 하산할 때는 ‘뽈레 뽈레’ 걷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는 고소증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이토록 험한 급경사 길을 어떻게 올라왔지?’ 할 정도로 험한 길을 서두르는 바람에 엄지발가락이 까맣게 상하고 말았다. 8시간 걸려 올라간 정상에서 키보 산장까지 3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오 가까울 무렵 키보 산장에 도착해 끓인 누룽지 한 그릇을 비우고 호롬보 산장까지 내려 왔다. 거의 기진맥진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15시간이나 진행한 지독한 강행군이었다.

이튿날 마랑구 게이트까지 단숨에 내려와 모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케냐로 넘어와 암보셀리 국립공원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표범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킬리만자로를 올려다보는 암보셀리 평원은 드넓었다. 초지와 적당한 습지, 거기에서 살아가는 얼룩말과 누, 가젤 같은 다양한 초식동물군, 한마디로 표범이 지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이 어디에 또 있으랴. 물론 표범을 직접 보지 못해서 그런 건지 두 시간밖에 안 되는 사파리 관광이 지루하기만 했다. 대평원이 표범에게도 천국이긴 마찬가지였으리라. 주위에 마냥 널려 있는 먹잇감들, 얼마든지 배를 채우고, 남은 먹이는 나무 위에 걸쳐 놓았다가 배고프면 다시 먹고, 낮잠을 즐기다가 슬슬 사냥에 나서는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 단지 사자와 호랑이처럼 자기보다 덩치 크고 힘센 동물만 조심하면 될 일, 나는 불과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하품을 했는데 거기서 나고 자라서 반복적인 일상을 지내던 표범이야 오죽했을까?

저 멀리 바라보면 흰 눈 덮인 킬리만자로가 보였다. ‘그래, 심심한데 저기라도 한번 올라가 볼까? 혹시 저 외로워 보이는 킬리만자로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하다가 차차 거듭된 고민 끝에 결행했을 터. 얼마나 올라갔을까? 아마 네 발로 사뿐사뿐 걷다가 어슬렁어슬렁 대기도 했을 테니 고소증은 겪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높은 정상에 오르는 동안 기력이 다해 탈진해 쓰러졌을 것이다. 다시 이빨을 갈고 발톱을 세우고 단단한 근육을 살려 새로운 도약을 꾀했을지 모를 일이다. 재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동안 멀리 바라보며 상상하던 산에 올라 맛보는 자유로운 세상, 표범은 다시는 초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일찍이 소설에서 얘기 하듯이 표범이 왜 그곳까지 올라가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며, 그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얘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의 이런 상상은 그냥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 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자유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닌가.

비록 일시적이지만 문명·비문명을 초월한 생활이야말로 자연에 잘 어울리는 것일 게다. 5박 6일 내내 몸에서 땀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비문명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땀 냄새는 별로 맡아지지 않는 걸 보면 내 몸에서도 안 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치질만 간단히 할 뿐 세수, 면도, 샤워, 발씻기, 빨래를 포기하고 지냈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 손과 발, 얼굴은 물티슈로 몇 번 문지르면 그것으로 끝이다. 샤워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이 귀할 뿐 아니라 고산 지대에 올라와서 머리를 감는 거나 샤워를 하는 행위야말로 고소증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하니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지낸 것이다. 매일 샤워를 해야 하던 사람이 며칠을 씻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자기 냄새는 스스로 맡지 못하고, 서로를 사랑하면 또한 상대방의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는 데서 그 답이 있지 않을까. 폴폴 나는 냄새를 의식하지 않고 나를 품에 안아 자유를 누리게 하고 행복을 맛보게 해준 킬리만자로를 사랑하지 않고 어찌 배기랴.

킬리만자로의 실체를 내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면서 상상을 넘어서 현실적인 관계를 맺었다. 이제 나와 킬리만자로는 잊을 수 없는, 적어도 내 기억에서는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시들어가는 인생에 도전할 용기를 북돋아준 킬리만자로! 고된 여정 끝, 눈꽃 한 잎 녹아내릴 잠깐의 만남! 절실한 그리움의 맨 꼭대기에서 이루어진 그 뜨거운 만남은 가슴 떨리는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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