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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용의 춤추는 알프스

 

썰매 타고 등반하고 설원의 광대가 되다

글 사진 · 임덕용(꿈속의 알프스 등산학교)

 

썰매는 수레보다 더 오래된 운송 수단이었다. 북유럽에서는 바퀴가 발명되기 전부터  이미 사용되었다. 특히 목동이나 농업, 과수원을 하는 사람들이 경사진 땅과 잔디 위에서 건초와 나무, 농작물을 나르기 위해 사용해왔다. 지금도 티롤 알프스와 돌로미티의 많은 마을들은 눈이 없는 급경사의 초원지대에서 건초와 나무 등을 썰매로 나르는 경기를 개최, 지역의 유명한 전통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아 썰매 트레킹과 비아 페랏따 등반 나서

겨울철 산악 스포츠로서 산악 스키와 설피 트레킹이 있지만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가족들이 같이 즐기는 썰매 트레킹도 그 인기와 폭이 매우 넓다. 이곳의 대부분 각 가정에는 식구들 수만큼 썰매가 있는 게 기본이다. 필자의 집에도 역시 애들이 어릴 때 타던 썰매를 포함하면 가족 인원수의 두 배나 되는 8대가 있다.

유럽에서 썰매는 14세기가 되어서야 수송 수단에서 레크리에이션용으로 발전했고, 산타 할아버지가 썰매를 타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동화가 널리 퍼지면서 ‘겨울철 놀이 문화’로 발전되었다. 또한 봅슬레이를 비롯한 각종 썰매 류가 스포츠화 되면서 여름철 스키장을 찾아 트레킹을 하던 사람들은 이제 88열차 같은 봅슬레이 레일 위에서 썰매를 즐기기도 한다.

케임브리지 의대에서 공부하는 딸인 유리의 친구들이 볼차노에 왔다. 한국계로 독일에서 자란 카트린과 싱가포르인 첸이 2박 3일간 아빠에게 부탁한 것은 돌로미티의 산에서 마음껏 걷고 싶고, 산을 느끼고 싶다는 주문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주문이 어디에 있겠는가? 눈이 많은 고산에서 썰매 트레킹을 하고, 산을 배우고 깊이 느끼고 싶다는 주문을 받아 비아 페랏따(Via Ferrata) 등반을 하기로 했다.

볼차노에서 1시간 거리인 발 가르데나(Val Gardena)는 돌로미티의 창문이라고 불린다. 긴 가르데나 계곡을 약 20분 올라가면 어마어마한 병풍을 이룬 암봉이 우리를 압도한다. 특히 눈 덮인 돌로미티와 수 억 만개의 크리스마스 츄리가 된 나무들을 보니 동화 속에 들어온 착각이 들 정도다.

나무 조각 장인 가문의 공방과 전통적인 매장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들은 거리를 모두 조각 예술로 승화시켜 놓았다. 굽이굽이 마다 자리한 이들의 조각 매장은 산과 인간을 주제로 한 초대형 나무 조각들을 거리에 전시하고 있다.

힘겹게 오른 설산, 썰매로 20분 만에 활강

빠쏘 가르데나(Passo Gardena)에 주차를 한 후 눈이 신발에 안 들어가게 주의를 주고, 각자 썰매를 끌고 눈 사면을 걷기 시작했다.

출발 전 한바탕 눈싸움으로 몸을 덥히니 기분이 고조되어 모두 어린이들이 된 것 같다. 독일의 대도시와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자라고, 런던 근처에서 공부하는 의대생들이 산골 마을의 소년 소녀들이 되었다.

눈이 잘 다져져 있어서 설피를 안 신어도 되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경사진 눈길을 올라가는 것도 힘들고 썰매를 끌고 올라가는 것은 더 힘든데, 처음 신어보는 설피는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서 눈을 처음 보는 싱가포르 출신 첸은 매우 신기한 듯 계속 눈을 먹어보기도 하고 얼굴로 비벼 보기도 하며 어린이처럼 계속 영어로 신나게 떠들며 즐거워한다.

아빠와 산행을 많이 해본 유리가 앞장서서 애들을 격려하며 올라간다. 능선에 오르니 칼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재킷을 입고 잠시 썰매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오른다. 힘들게 올라가도 내려갈 때는 썰매에 앉아서 신나게 내려갈 생각에 은근히 겁도 나고 기대도 하는 눈치이다. 클라이밍, 비아 페랏따 등반, 스키와 썰매를 많이 타본 유리가 쉬는 시간마다 썰매 운전법을 강의한다.

“썰매 운전대는 썰매 앞에 있는 두 개의 손잡이인데 여기를 발로 운전해야 해, 오른발을 손잡이에 대고 왼편으로 밀면서 살짝 누워서 왼손을 눈 바닥에 대면 물 위에서 배가 왼편으로 도는 것처럼 왼쪽으로 썰매가 움직여. 오른편으로 가고 싶을 때는 왼발로 앞의 손잡이를 오른편으로 밀면서 오른손을 뒤로 뻗어서 눈을 만지는 것처럼 하면 되고, 속도 조절은 두 발꿈치로 제동을 걸어야 해.”

경사가 약한 곳에서 몇 번의 연습을 했지만 산행을 끝내고 막상 활강하려니 겁이 나나 보다. 한번 미끄러진다면 20~30분은 그냥 쏟아져 내려갈 정도의 경사와 거리이니 몇 번의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두 세 번의 회전 연습을 한 후 다시 개구쟁이 어린이들처럼 소리를 지르며 눈발을 휘날리며 내려가기 시작한다.

경사가 약해지는 곳에서 몇 번의 휴식을 취하며 각자 썰매 운전법에 대해 상의를 한다. 의대생다운 매우 과학적인 토론의 시간이었고 그 다음 활강에 적용해 보느라 노력한다. 2시간을 걸어 올라간 거리를 20분이 안되어 신나게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서 내려오고 싶은지 자꾸 산 위를 올려다본다.

 

서커스 공연하듯 비아 페랏따 등반

다음날은 산의 깊은 맛을 보기 위해 비아 페랏따(Via Ferrata) 등반을 했다. 약 1시간 30분을 남으로 내려가서 트렌토(Trento) 아르코(Arco) 지역의 드로(Dro) 협곡을 올라갔다. 예전에는 폭포가 많이 있었지만 위 산골 마을에서 저수지를 만들어서 지금은 건폭으로 변했으며 한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철에도 찬바람이 없는 협곡이라 서늘한 느낌이 확 들지만 춥지는 않아 벽 등반하기에 좋았다.

처음 벽에 매달려 본 아이들의 겁먹은 모습이 유리가 시범을 보이자 점점 풀리며 이제는 와이어 로프에 매달려 춤을 추는 것처럼 두 손을 활짝 벌리고 한발을 허공에 벌려 보기도 한다. 두 개의 카라비너를 교대로 옮겨 가며 확보를 하는 법도 익숙해진다. 군 유격 훈련처럼 외줄 와이어 다리가 나오자 탄성이 터져 나온다.

“오우, 정말 저기 건너가는 거야? 환타스틱, 어메이징.”

발아래 물이 흐르는 폭포가 내려다보이고, 몸의 밸런스가 깨지면 외줄 다리가 출렁거리지만 웃음으로 이겨낸다.

추운 날 벽 등반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만의 벽 등반이었다. 보이는 것만큼 보는 것처럼 오르는 만큼 더 많이 보이고 스스로 이겨내고 있다는 자신감과 만족감은 더 커진다. 휘날리는 눈발 속을 괴성을 지르며 신나게 썰매를 타고 내려왔던 쾌감이 이제는 태어나서 생전 처음 벽을 기어 올라가며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즐기는 의대생들.

 

이틀을 산에서 지냈음에도 밤샘 공부하는 공부벌레들

이틀을 산에서 지내고 내려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 썰매 트레킹과 비아 페랏따 등반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것을 보니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된 기분이다. 자다가 새벽 3시경 화장실을 가는데 아래층에 불이 켜져 있어서 조심스럽게 내려가 보았다.

‘설마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몰래 간식이라도 먹나?’ 하는 궁금증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3명이 모두 식탁에 앉아서 정말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 마이 갓, 플리즈, 공부 좀 제발 그만 해라.”

공부벌레들의 공부 경쟁을 눈으로 확인하고 조용히 간식을 챙겨주며 2층으로 올라온다. 6개의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무섭다. 하루 종일 티롤 알프스의 설산을 올라가서 썰매를 탔던 것과 벽 등반도 대단한 운동이고 피곤한데, 내일 아침 7시에는 케임브리지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차를 타고 몇 시간 공항으로 가야 할 텐데….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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