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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자전거 여행 <하>

푸른 도시, 사마르칸트

글 사진 - 김규만(굿모닝한의원 원장)

겨울 새벽 가늘게 내리던 눈발은 낮이 되면서 가는 빗줄기로 바뀐다. 사마르칸트는 원체 물이 귀한 곳. 폭우나 폭설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눈발이 날리면 어린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사마르칸트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트랜스 옥시아나(Transoxiana,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 강 사이)의 중심 도시로 중국의 장안과 터키의 콘스탄티노플처럼 실크로드 거점이자 교역 중심지였다. 우리와 인연도 있다. 당나라와 대결하던 고구려가 스키타이-소그디아나와 동맹을 맺기 위해 보낸 사신이 그려진 아프라시얍 벽화가 있다. 소그디아나 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는 ‘돌의 요새’라는 뜻이다.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당시 그리스인들은 마라칸다(Marakanda)라고 했다. 중국에서는 강국(康國), 몽골어로 ‘바위, 딱딱한 바위’를 뜻하는 사마르칸드(Самарканд)라 했다.

1220년 칭기즈칸에 의해 사마르칸트는 무참히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그러나 14세기 정복자 아무르 티무르는 사마르칸트를 제국의 수도로 삼아 도시를 새로이 세웠고 손자인 울루그 벡이 다스리던 1세기 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중앙아시아의 마지막 유목국가인 티무르제국은 14, 15세기 이슬람의 대표적인 경제 문화 예술의 도시로 아시아와 유럽에 위용을 떨쳤다. 아무르 티무르는 죽을 때까지 거의 평생 말에서 내리지 않고 원정을 다녔지만 세계 각국의 학자를 존중하고 수 많은 장인들을 데려와 호화로운 건물을 지었다. “나를 보려거든 내가 세운 이 건물들을 보라”는 말로 자신을 어필했다. 2001년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었다.

 

레기스탄(Registan) 광장

레기스탄에 가니 근무하는 경찰과 군인들의 호기심은 우리 두 사람과 미니벨로에 집중됐다. 레기(Regi)는 ‘모래’, 스탄(stan)은 ‘땅’으로 레기스탄은 ‘모래 땅’이란 뜻이다.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레기스탄’은 ‘광장’으로 통용되는데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이 가장 아름답고 크고 유명하다. 레기스탄에서 즉위식, 사열식, 각종 행사 등 다양한 행사와 의식이 열린다. 티무르 때는 대규모 시장이 있었고, 울루그 벡 때는 마드라사(Madrasa, 학교)가 세워졌다. 마드라사는‘□’자 형 구조로 사방에 건물이 있고 가운데에 널찍한 마당이 있는 구조이므로 입구 문을 막으면 유사시 작은 성 역할을 했다. 여러 건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3개의 건물만 남아 유명한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 관광지답게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입주해 있다.

정면 중앙에 틸랴-코리(Tillya-Kori) 마드라사에서 ‘틸랴-코리’는 ‘황금’이란 뜻으로 모스크의 내부는 엄청난 양의 금을 녹여 장식하여 사마르칸트의 아름다움과 화려함과 부유함과 영원함을 자랑하고 있다.

좌측 울루그 벡(Ulugh Beg) 마드라사는 1400년대 세워졌고 200여 년 후에 나머지 두 개의 마드라사도 세워졌다. 할아버지와 달리 카리스마와 정치력이 부족해서 내란이 끊이지 않았고 즉위 2년 8개월 만에 목이 잘려서 즉위 후의 업적은 오히려 미미하다. 이 마드라사에서 천문학, 수학, 철학 등을 교육시켜 훌륭한 인재와 학자들을 양성했다. 마드라사 문 위에 ‘모든 무슬림들은 지식을 연마하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우측 쉐르도르(Sher-dor) 마드라사는 17세기에 지어진 정문(Iwan)의 아치 위에 사자가 어린 사슴을 쫓는 타일 문양이 대칭으로 그려져 있어 ‘사자의 문’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슬람에서는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사람이나 동물의 그림을 새겨 넣을 수 없지만 여기는 예외다.

 

비비하눔 모스크(Bibi-khanum Mosque, 1399~1404)

티무르의 애첩 비비하눔은 제왕이 인도 원정에서 돌아오면 개선문 같은 최고의 모스크에서 축하해주기로 작정했다. 모스크 건설을 책임진 페르시아 건축가가 비비하눔을 짝사랑하다가 마지막 아치 하나 남기고 조건부 키스를 요구했다. 비비하눔은 ‘다른 색깔로 칠해진 계란이라도 겉은 다르지만 속은 똑같다’라며 다른 여인을 소개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건축가는 ‘투명한 물이 든 잔과 투명한 술이 든 잔은 겉은 같아 보이지만 속은 다르다’는 말로 거절했다. 건축가의 청을 계속 거절할 수 없어 한 번 허락한 날카로운 첫 키스는 비비하눔의 볼에 치명적인 자국을 남겼다. 티무르가 이 사실을 추궁해 안 후 불같은 질투와 분노로 건축가를 즉형에 처했고, 비비하눔은 자루에 담아 미나레트 꼭대기에서 아래로 던졌다는 설이 있다. 이후로 모든 여성들에게 얼굴을 가리는 차도르를 쓰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 웅장함과 거대함이 레기스탄의 마드라사들을 뛰어 넘지만 금단(禁斷)을 어긴 탓인지 무관심 속에 수 세기 동안 방치됐다. 지금 모스크는 지진에 여기저기 금이 가고 부서지고, 세월에 바라고 닳아, 사랑을 잃고 무관심 속에서 시들어가 여인처럼 쓸쓸하고 짠해 보였다.

 

샤히진다(Shahi-zinda) 영묘들

울루그 벡 천문대를 향해 방향을 잡고 가다보면 아프라시얍 언덕 기슭에 수 많은 영묘들이 있다. 세계에서 최고 화려한 영묘들의 총체(總體, Ensemble)이다. 사마르칸트에 눈발이 날리고 있다. 샤히진다는 14~15세기에 지어진 당대를 주름잡던 왕족 귀족 종교 지도자들의 영묘가 모두 25개나 있다. 푸른색 위주 타일로 장식한 위엄을 자랑하는 사각형의 정문은 안에 누운 자들 뒤에 남은 권력과 존경을 상징한다.

울루그 벡 천문대(1428~1429년)

아미르 티무르가 통치할 때 세워진 이 천문대에서 천체를 관측하고 천문학을 연구했지만 세월이 가면서 망각과 모래 속에 덮여 있다가 1908년 러시아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이 천문대는 3층이고 지름이 46m, 지하 11m 지상 30m인 거대한 육분의(六分儀, sextant)를 세웠다. 그의 천체 관측 연구결과에 따르면 1년은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오늘날 측정한 365일 6시간 9분 9.6초와 비교해 오차가 1분 미만이라고 한다. 행성 관측 기구인 아스트롤라베(astrolabe)의 곡선 트랙도 남아 있다. 그가 여러 학자들과 함께 제작한 〈울루그 벡 천문표(天文表)〉는 당대에 가장 정확해 유럽은 물론 중국과 조선(세종 때)에서도 사용되었다. 티무르의 손자로 뛰어난 수학자, 천문학자, 역사학자였던 울루그 벡은 문화 학문 예술을 보호하고 장려했다. 또한 학자와 예술가들을 우대하여 티무르제국의 문화 학문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아프라시얍(Afrasiyab) 유적지

아프라시얍은 기원전 5세기부터 국가가 있었고 알렉산더 동방원정 당시 소그디아나의 수도였다. 중국 장안에서 유럽에 이르는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으로 번성하다가 1220년 칭기스칸의 몽골군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되기 전까지 존재했던 고대와 중세의 ‘구도시’였다. 모래 속에 묻힌 문명은 다시 망각과 무관심 속에 묻혀 버렸다. 1965년 도로공사 사전 발굴조사를 하다 7세기 경에 만들어진 아프라시얍 궁전벽화가 발견되었다. 7세기 바르후만 왕 즉위식(卽位式)에 참석한 외국 사절단 벽화에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찬 고구려 사신이 있었다. 현재 아프로시얍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아프라시얍 읍성(邑城)에는 하즈라트 휘즐 모스크가 있는 남쪽 케슈문, 북쪽 끝에 나우베르 문, 시엡 강변 동북부에 부하라문, 동남쪽에 중국문 등 4개의 큰 관문이 있어 이 도시가 전성기였을 때 아프칸, 페르시아, 인도, 중국 등지에서 온 수십 마리 낙타에 짐을 싣고 온 대상들로 넘쳐났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이 솟아나는 다니엘 영묘

예언자 다니엘의 묘(Tomb of the prophet Daniel)는 이란의 수사(Susa)에 있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성지라고 한다. 다니엘은 '무함마드가 올 것을 예언한 구약의 선지자'였다. 아무르 티무르가 이란 수사에 원정을 갔다가 다니엘 묘에서 팔과 정강이 뼈를 가져와 여기에 묘지를 만들었다. 묘지를 만드니 샘물이 솟아나고 아몬드 나무가 자라났다. 팔과 정강이 뼈가 자라서 18m의 큰 관을 만들어야 했다.

 

하즈라트 히즐 모스크(Hazrat Khizr Mosque)와 대통령 묘

시압 바자르 건너편 아프라시얍 언덕 초입에 반쯤 망가져 방치되어 있다가 1990년 부하라의 어느 부호 도움으로 화려하게 복원된 하즈라트 히즐 모스크가 있다. 옆에 우즈벡 초대 대통령(Islom Karimov, 1938~2016)묘가 안치되어 있다.

 

구르 에미르 영묘

생전에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투르크계 몽골 군주 중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로 추앙받지만, 죽으면 말없이 사각형 관에 갇혀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는 것이 ‘영웅본색’이다. 타직어로 구르(Gur)는 무덤, 에미르(Emir)는 지배자란 뜻이다. 구루 에미르의 웅장한 영묘 위 세로로 주름진 입체감과 푸른 색조를 띤 돔(Dome)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무함마드(570~632년)의 나이인 63개의 주름이라 한다. 돔 아래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코란 문구가 쓰여 있다.

이곳은 티무르는 죽기 2년 전 이란 원정(1403년)에서 전사한 가장 사랑했던 손자(무함마드 술탄)를 기리며 지은 영묘이다. 영묘를 조성할 때 8kg의 황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1405년 명나라를 정벌하러 갔던 티무르가 전사한 후 이곳에 묻혔다. 아미르 티무르의 까만색 석관을 중심으로 티무르의 스승과 손자, 무하마드 술탄, 울르그 벡, 아들 샤루흐, 손자 미란샤 등 총 7개의 석관이 있는데 모두 메카를 향해 있다. 티무르의 석관은 세계 최대 크기 한 덩어리로 된 흑옥이라 한다. 티무르는 스승의 관을 제일 크게 했다. 모든 유해는 석관에 없고 지하 납골당에 있다. 아미르 티무르 공원에는 이슬람의 선교사로 티무르의 또 다른 영적 스승인 루호보드(Rukhobod) 영묘가 있다.

푸른 도시 사마르칸트를 떠나며

티무르 생전에 푸른색을 좋아해서 푸른 돔이 많았다고 한다. 푸르름을 좋아하는 원초적 본능이 궁금했다. 이들도 우리처럼 무의식적으로 청색과 녹색이 헷갈리는 ‘문화적 색맹(色盲)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청색은 숨 쉬는 하늘의 색이고, 녹색은 메말라 죽은 땅을 살리는 생명의 색이다. 그래서 생명에 필수불가결한 청녹색을 좋아하는 것일까?

조선의 백자에 푸른색으로 그림을 그리던 안료가 멀리 이곳 아라비아에서 온 회청(回靑)이다. 회청이 바로 코발트블루(Cobalt Blue)이다. 코발트 불루는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에서 별빛이 빛나는 깊고 푸른 밤하늘이기도 하다. 아무르 티무르가 앉아 있는 청동상이 있는 로타리에서 택시를 타고 사마르칸트 역으로 갔다. 눈발이 날리는 푸른 도시 사마르칸트를 뒤에 남겨두고 상념에 잠긴 채 타슈켄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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