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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뇌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더워서 늘어지고 나태해지는 열대지방에는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공포기제가 어울린다. 카스트로, 장제스, 가다피, 리콴유, 수하르토 등의 독재자들은 그것을 활용해 장기집권을 했다. 그렇다면 스칸디나비아 국가, 러시아 같은 북쪽 나라는 어떨까? 러시아를 공포에 떨게 한 이반 뇌제(雷帝)와 뜨거운 사랑의 여제(女帝) 예카테리나 중 누가 더 어울릴까?

글 사진 · 김규만(굿모닝한의원 원장)

 

 # 전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이반 뇌제(雷帝)

 

바실리의 첫째 아들 이반 4세가 태어날 때 크렘린 위 하늘이 열리고 거대한 우레(雷)가 땅을 향해 내리쳤다.

1547년 이반 4세(153~1584)는 이전까지 군주의 정식 명칭은 모든 ‘Rus인의 대공(大公)’ 이었지만 러시아를 최초로 국가 지위로 올려놓고 일개 대공이 아닌 모든 ‘Rus인의 짜르’라는 칭호로 즉위한 최초의 러시아 군주였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관식이 아닌 ‘러시아 왕국’의 장엄한 대관식이었다. 그는 주변 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러시아를 동유럽의 강국으로 만드는 등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러시아는 당시에 이미 200만km2를 아우르는 거대한 국가로 영국, 프랑스, 스페인을 합한 것보다 더 넓었다. 이전에는 모스크바 대공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토가 몽골족과 돌궐족(타타르)의 지배를 받았다. 1552년 모스크바 대공국은 300여 년 동안 지배하던 몽골과 돌궐족을 물리치고 류리크 왕조를 복원했다.

이반 4세는 매우 총명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7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청각장애가 있는 동생 유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보야르(영주)들의 권력투쟁에 끼어 생존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유폐, 살해 위협, 어머니의 독살 등으로 점철된 불우한 어린 시절의 처절한 경험이 이반의 정신세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반 4세는 황후(짜리나) 아나스타샤와 사랑이 지극해서 즉위 후 13년간은 매우 안정된 명군이었다. 로마노프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와 결혼생활을 하는 13년 동안 사형이 없었고 온 나라가 부유하고 강대해졌으며 자비가 넘쳤다. 이반 4세의 궁정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화려한 곳 중 하나였고 강대한 왕국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짜르였다. 현명하고 균형감 있는 통치를 해서 러시아를 유럽의 주변부에서 중심국으로 올려놓았다. 정치적으로는 폴란드, 독일, 투르크 그리고 영국까지 도움을 요청할 정도였다. 1554년 황후 아나스타샤는 건강한 황태자를 낳았다. 아버지 이름을 따서 이반 이바노비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 1560년 모스크바에 대화재가 일어났고 사랑하는 황후 아나스타샤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이반 4세는 자신의 친모처럼 황후도 독살 당했다고 믿었다. 주위 사람들을 불신하고 분노조절 장애가 생겨서 가까운 사람은 물론 과거 유능한 참모 충성스런 전쟁 영웅들조차 고문하고 투옥시켰다. 총명한 군주였던 그는 하루아침에 잔인하기 그지없는 폭군으로 변해 자신의 최측근들은 물론 귀족들마저 숙청하기 시작했다. 6천여 명의 흑위병으로 구성된 오프리츠니크(Oprichnik, 친위대)를 두고 전 백성을 공포에 떨게 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자는 이를테면 프로페셔널 특수부대 비밀요원이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약한 어린이나 여자 노약자를 괴롭히는 것과 같다. 절대 권력, 명석한 두뇌에 잘못된 신념을 가진 이반 4세 같은 사람이다. 측근부터 귀족, 성직자, 심지어 국민들까지 대량 학살했고 결국에는 아들마저 왕홀(王笏, Scepter,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을 휘둘러 때려죽였다. 군주의 한마디 한마디가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해서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 이반 뇌제(雷帝, Ivan Grozny)라고 불렀다. 그가 죽고 나서 류리크왕조는 끝나고 로마노프왕조로 이어졌다. 이반 4세가 가장 사랑한 왕비인 아나스타시야의 동생 니키타 로마노프의 손자가 차르가 되었다. 그가 로마노프 왕조를 연 미하일 1세이다. 

 

# 낮에는 정사(政事), 밤에는 정사(情事)로 바빴던 예카테리나

 

낮에는 정사(政事)로 바쁜 제국의 여제(女帝)

그녀는 역사상 보기 드문 대단한 정열의 소유자였다.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8번째 황제 예카테리나 여제(Екатерина Великая, 예까쳬리나 빌리까야, 1729~1796, 재위 1762~1796)는  영어로는 캐서린 대제(Catherine the Great)라고 한다. 짜르의 여성형인 차리사, 차리나로도 불린다. 그녀의 손자가 바로 ‘조국전쟁’에서 60만 대군을 거느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물리치고 파리를 점령한 다음 그를 엘바섬으로 유배 보낸 알렉산드르 1세이다.

하루에 15시간씩 정사(政事)를 돌보며 매일 수많은 사람의 알현을 받고 수많은 서류에 결재하기 바빴다. 중간 키에 승마로 단련된 금발인 예카테리나는 다양한 언어, 높은 지성과 교양 그리고 현명함을 겸비했다. 정치적인 판단력, 통솔력, 카리스마 등이 뛰어나 어떤 상황이든 극복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

대신들을 적재적소에 능력에 따라 등용하고 관대했지만 권력남용이나 부패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어려서부터 열성적인 어머니 덕분에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문학, 음악, 미술, 역사, 지리, 신학, 승마 등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녀는 명랑하고 지적이며 호기심이 컸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남자아이들을 앞장서서 이끌고 지도할 정도로 리더십이 돋보였다. 러시아에 와서 러시아어, 러시아 역사, 러시아 정교회, 러시아 전통 등을 배우고 익히는데 밤 늦도록 몰두했다. 그녀는 쾌활하고 열정적이며 서글서글한 성격에다가 총명하고 지적이며 러시아에 대한 애정이 강해서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호감과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남편인 표트르 3세는 머리가 나쁘고 성격도 안 좋은 데다 성불능으로 최악의 밉상이자 비호감이었다. 예카테리나는 일찍이 ‘표트르 3세가 러시아를 통치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프로이센 출신에 여성으로 짜르가 될 수 없었지만 쿠데타로 남편의 황위를 찬탈하고 제위에 올라 무려 34년간 러시아를 통치했다.

예카테리나를 보면서 그녀의 자신감에 놀랐다. 그녀는 표트르 대제 이후 가장 부강한 러시아를 만든 주인공으로 대외적으로 전쟁을 해서 영토를 확장하고, 서유럽과 교류를 통해 낙후된 러시아를 발전시켰다. 예카테리나 시절의 영토가 소비에트 연방이나 현재 러시아의 영토보다 훨씬 더 넓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① 동쪽으로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까지 진출해 최초의 정착지를 건설했다. 러시아-아메리카 회사(Russian-America Company)를 설립해서 개척에 나섰다.

② 남쪽으로 2차에 걸친 러시아-투르크 전쟁에 승리해서 모든 통치자들이 간절히 원하던 흑해 북부 크림반도를 지배했다. 흑해 항행권은 물론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 지중해로 진출할 기반을 확보했다.

③ 서쪽으로 프로이센과 손잡고 3차례에 걸친 폴란드영토 분할 및 프로이센, 헝가리, 동부 독일의 일부를 차지하여 러시아 영토를 25만8천km2 이상 확장시켰다. 적극적인 대외 정책으로 러시아 영토는 현저히 증가되어 세계 최대가 되었고, 인구는 즉위(1762) 초에 2,320만 명에서 승하(1796)할 때는 3,74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러시아 인구는 전체 유럽 인구의 20%로 최대 인구 국가가 되었다.

 

밤에는 정사(情事)로 바쁜 침실의 여인

그녀는 남자 애인 정부(情夫)를 많이 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낮에 받은 고달픈 정사(政事)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가 저물면 감미롭고 뜨거운 정사(情事)로 풀어냈다. 그녀의 밤은 감미롭고 농염하며, 화려하고 매혹적이며, 강렬하고 뇌쇄적이었다고 사관은 전한다. 동양에서는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나는 우화등선(羽化登仙), 무아지경(無我之境), 운우지정(雲雨之情) 같은 메타포를 사용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사관은 그 자세하고 은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잠시 붓을 내려놓고 있다. 추측컨대 적당히 밀당을 하면서 비범한 ‘어장관리’로 애간장을 녹게한 것 같다. 그들과 잠자리를 하면서 하해(河海) 같은 은총을 베풀어 그들의 영혼을 뒤흔들어 충성스런 심복으로 만들어버렸다.

몇 년에 한 번씩 물갈이를 해서 병들거나 함량이 미달한 물고기는 과감하게 갈아치워 버려 어장의 신선도를 유지했다. 밀려난 정부들에게 막대한 재산과 영지, 관직 등을 하사해서 뒤탈이 없었다.

역사에 남은 여제의 수많은 정부(情夫) 중에 유명한 스타는 세르게이 살티코프, 스타니스와프 포니아토프스키, 그리고리 오를로프, 그리고리 포톰킨, 플라톤 주보프, 알렉산드르 란스코이 등이 있다.

여제는 본인의 남성 편력에 대한 당대의 비판에 대해서 전임 옐리자베타 여제가 ‘모든 황제는 여러 명의 후궁과 첩과 정부를 정당하게 둘 수 있다’고 한 말로 간결하게 정리했다. 옐리자베타 여제 본인도 잊을 수 없는 정사(情史)를 정당화하기 위해 예카테리나에게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예카테리나는 이전 옐리자베타 여제가 많은 남자와 염문을 뿌렸던 것처럼 자신도 황제로서 정식으로 정당하게 당연하고 당당하게 후궁과 첩과 정부를 둘 수 있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마음()이 일어나는(生) 대로 성(性)스럽게 후궁과 첩과 정부를 침실로 불러들였다.

황실에 전문 감별사(採靑使)가 있어서 수컷들을 관리했다. 기본적으로 의사의 건강검진, 교양과 예절 교육, 실제 잠자리 능력 시험에 통과해야 비로소 은밀한 비밀의 정원인 여제의 침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은 사가(史家) 또한 금단의 영역이었다. 그러한 공백은 작금의 상황에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이어나가야 했다. 여기에서 Fact(사실)와 Fiction(허구)을 결합한 Faction의 역할이 중요했다. 젊고 싱싱한 사내가 재빠르게 침실로 잠입한 밤이면 달은 휘영청 밝았고, 별빛은 찬란했다. 가끔 하늘 높이 폭죽이 터지고 난 후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곤 했다. 음양의 격한 충돌이었다. 밤은 화려하고 농염하여 어둡지 않는 백야(白夜)가 지속되었다.

 

정사(政事)를 정사(情事)로, 정사(情事)로 정사(政事)를

예카테리나는 정치적 파트너를 정부(情夫)로 만들어 꿩 먹고 알 먹는 고급기술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몸을 이용한 침실정치의 대가였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몸이 달았다. 여러 달 또는 여러 해 동안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수많은 경쟁자들이 앞을 다투어 심지어 목숨을 걸고 오매불망(寤寐不忘) 치열한 충성 경쟁을 벌였다. 여제는 정사(情事)와 정사(政事)를 완전히 구별하고 연결이 안 되게 했다. 그러나 인간사 늘 예외는 있다. 여제의 총애를 받은 자들 중에 드물지만, 능력이 너무 탁월하고 뛰어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어디다 두어도 자신이 필요한 적재적소를 찾아갔다. 이들은 소수 정예인 예카테리나의 총신(寵臣)으로 그녀가 즉위한 1762년부터 여제가 죽은 1796년까지 함께 했다. 총신들은 신흥 친위세력으로 국가 대사와 국내외 정책, 군사행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총신들은 당대 고위 귀족들을 견제하고 관행을 파괴했다.

프로이센에서 혈혈단신 시집와서 자신의 세력이 없었다. 처음에는 가슴 뛰는 단순한 연애로 시작되었지만 차츰 황태자비인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미래가 촉망되는 젊고 건장한 남자, 부유한 귀족의 자제, 유능하고 야심적인 장교들을 간택했다. 자신에게 충실한 정부(情夫)들을 친히 거두어주었다. 1762년 쿠데타 이전에 황태자비의 성은을 입은 그들은 학연 지연 혈연을 능가하는 강력한 결속력으로 나중에 큰 세력이 되었다. 때로는 권력을 위해서 애정을 이용하고, 애정을 위해 권력을 이용했다. 사랑 따로 욕정 따로 또는 사랑과 욕정이 겸해진 경우도 있었다. 젊고 건강한 수컷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받으며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카타르시스할 수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삶이었다. 이들 젊은 귀족과 장교들의 도움으로 쿠데타에 성공하여 여제가 될 수 있었다.

여제는 그들에게 여신(女神)이 되어 최고의 섹시함으로 자체발광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권력이 자신의 최고의 섹시함이다’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녀를 추종하는 수컷들 머리를 조아리고 코를 벌름거리며 추종하는 것을 즐겼다. 그녀에게 남녀상열지정사(男女相悅之情事)는 정사(政事)를 잘 돌아가게 한 최고의 윤활유였다. 정사(政事)를 다스리며 받은 모든 스트레스와 피로 긴장 불안 고민 등을 젊고 건장한 남자들과 정사(情事)를 하면서 해소하고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그녀에게 정사(情事)는 최고의 아편이자 최고의 최음제였으며 최고의 활력을 주는 에너자이저(Energizer)였다.

도덕적 순결주의자가 아니라도 정사(情事)로 늘 바쁜 밤은 보낸 여제에 대해 모멸과 비난과 질시를 할 수 있다. 수많은 남자 후궁 첩 정부를 두면서 사적으로 즐기고 뜨거운 밤을 보낸 그녀를 생각하면 거부감으로 구역질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에카테리나 여제는 세계적으로 비난과 질시보다 훨씬 더 존경과 찬미의 대상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정사(情事)보다 정사(政事)를 보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시적(可視的)으로 이룩한 영토 확장에 따른 행정 개혁, 군사적 승리와 영광, 당대 유럽의 최고 아름다운 도시와 호화로운 궁정은 예카테리나를 더욱 위대한 인물로 평가하게 했다.

여제가 되고 난 후에 침실의 출입문의 높이를 크게 낮춰 머리를 숙여야 들어올 수 있게 했다. 절대 권력과 무력과 재력을 가진 목에 힘이 들어간 사람은 제외되었다. 부유한 귀족, 높은 관직을 가진 재상, 군을 지배하는 장군들은 자격이 없어진 것이다. 반면 평민, 시종, 관리, 젊은 귀족, 장교 등 낮은 신분을 간택했다. 그들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하는 것은 즐겼지만 권력을 기웃거리거나 줄을 대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궁정 내에서 남자 후궁들끼리 스캔들이나 다툼 암투가 벌어진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워낙 경험이 많고 명석해서 국사(國事)와 침사(), 국정(國政)과 사정(私政), 정사(政事)와 정사(情事)를 혼동하지 않았다. 이 또한 여제의 탁월한 ‘어장관리’ 능력이었다.

러시아의 역사에서 ‘대제(The Great)’라고 호칭되는 사람은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2세 단 2명뿐이다. 그들이 곧 러시아의 영광이고 번영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영광은 눈에 보이는 않는 수천만 러시아 백성 농민들의 피눈물 착취 죽음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 희생자들에게 The Great(大帝)는 暴君(the Tyrant)으로 와 닿을 것이다. 농노해방을 외치다가 갑자기 농노제도를 강화하고 폭력을 통해 저항과 반발을 잠재운 구시대적 모순은 당대에는 푸가초프 반란(1773~1775)으로 터졌고, 한 세기 반이 지나가면서 억울한 한과 분노가 쌓이고 농축되어 마그마가 되어 끓고 있다가 볼셰비키 혁명(1917)이란 화산으로 강력하고 격렬하게 폭발하며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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