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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등반기
해외등반지
해외트레킹
▒ 해외 트레킹
▒ 몽골 알타이산맥과 보그다산군
▒ 산악여행 전문가 채경석씨가 탐사한 체체궁산과 뭉크하이한산

몽골에는 사람이 귀해서 멀리서 온 친구에게 아내를 빌려준다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이는 같은 몽골리아인 시베리아 에스키모에서도 있는 풍속이다. 왜 그들은 가장 아끼는 부인을 아무에게나 빌려주는 것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몽골이나 시베리아와 같이 척박한 자연환경이라면 그리 이해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수렵시대에 자식이 많은 것은 그만큼 일손이 많아짐을 의미했다. 이동할 초지를 찾아 혹은 사냥을 위해 며칠씩 집을 비우는 남편은 아내의 신체리듬을 놓치기 쉽고 부부간에는 아이가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없어 애태우던 집안에 손님이 왔다. 그 손님이 간지 얼마 안되어 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면 옆집의 부러움을 샀을까? 또 그렇게 태어난 녀석일수록 튼튼하고 똑똑했다면.

외부의 피를 섞기 쉽지 않은 부족사회에서 지나가는 손님의 순결한 피 섞음은 혈통을 건강하게 했을 것이고 그 손님은 사막의 신처럼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므로 체면불고하고 받아둘 선물 아닌가. 가장의 역할을 대신해 준 그 친구를 책에서는 과객혼(過客魂)이라고 미화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얻어야만 했던 가족 노동력. 그것은 생존과 직결된다. 그들에게 유희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그들의 모든 것은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의 풍속으로 자리잡고 우린 이를 문화라고 한다. 아내를 빌려주는 나라, 그 나라에 사는 남자에게 행운이란 무엇일까? 아마 마음씨 좋은 친구를 두기보다 아내가 이쁜 친구를 두는 것이 아닐는지. 광주 요산회 회원들과 목포의 오전석씨, 서울의 노병희씨 등 총 10명은 몽골 알타이산맥 탐사 및 뭉크하이한산 등반을 위해 몽골 항공에 몸을 실었다. 몽골은 그리 먼 나라가 아니다. 서머타임을 적용하는 몽골은 우리와 시차도 같고 3시간의 비행으로 닿을 수 있는 곳.

그런데 가기 어려운 나라를 꼽으라면 10손가락에 들어갈 만큼 쉽게 발길이 나서질 않는 곳이기도 하다. 울란바타르에 도착하니 현지 여행사는 염소 보독 만찬을 펼쳐 놓는다. 보독은 특별한 날에나 만드는 유목민의 대표적인 요리다. 먼저 염소의 머리를 자르고 식도나 항문으로 내장을 모두 꺼낸 다음 손을 넣어 칼로 살을 고르는 등 익기 좋게 칼질을 내고 식도가 제거된 목으로 야채와 감자는 물론 불에 달군 뜨거운 돌을 넣는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목과 항문으로 김이 새나오지 못하도록 철사로 꼭꼭 묶은 다음 밖에서 장작 등으로 열을 가해 익혀 먹는 음식이다. 나무가 귀한 몽골고원에서 나무로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보독을 만드는 데 최소 7시간에서 10시간이 걸린다니 대충 먹고 이동하는 유목민의 습성으로 10시간의 공을 들이는 정성만 보아도 해먹기 어려운 만찬이다. 그러나 보독 만찬은 입에 맞지 않아 우리에게 구경거리일 뿐 현지인들을 위한 잔치가 되어버렸다.

보그다산군의 최고봉, 성산 체체궁

울란바타르는 4개의 큰 산과 보그다 산맥에 의해 포위된 전형적인 분지다. 울란바타르를 감싸는 4개의 동서남북 정방향에 위치한 산으로 예로부터 성산으로 숭배되어 왔다. 이 성산 중 남쪽에 위치하는 체체궁산(2256m)은 보그다 산군의 최고봉이며 4대 성산 중 가장 높이가 높고 웅장할 뿐 아니라 산세가 수려해서 4대 성산을 대표한다(4대 성산이란 체체궁, 칭겔테이, 카이라한, 바얀추흐산).

이런 연유로 소비에트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가장 번성한 라마사원이 위치하고 있었다. 스탈린이 러시아를 통치하던 시대 몽골은 소비에트의 지시에 따라 라마교를 탄압하였기 때문에 이 사원에서 수도하던 160여명의 라마승은 모두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몽골은 탕구트족(티벳족)이 세운 서하(西夏)라는 나라를 멸망시키고 서하로부터 라마교를 받아들였다. 라마교는 몽골과 흥망을 같이 했다.

즉 국가적 정신통일, 통일 국가의 기틀을 갖추는 데 기여한 반면 라마교의 번성은 곧 국가의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종교가 지나치게 흥하고도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던가. 라마교가 흥할 때 아비 없는 자식이 몽골 전 아동의 70퍼센트였고 아들이 있는 집안이면 가장 똑똑한 아들은 라마학교에 보내 승려를 만들었다니 나라의 멸망은 신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돌 축만 남아 있는 사원 터가 굉장히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볼 때 사원이 꾀나 큰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원을 좌측으로 멀리 두고 능선을 향해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비로써 만주시르 코스를 따라 등산이 시작된다. 체체궁산은 3개의 등반코스가 있다. 가장 짧고 가벼운 코스는 만주시르(Manzshir) 코스로 울란바타르에서 약 7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만주시르시로 이동한 후 다시 10여분을 차로 달려가면 등반 기점인 만주시르 라마사원이다.

터만 남은 유적을 지나 우측으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스크리지대와 자작나무와 잣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아늑한 길이 이어진다. 2시간 가량 계속되는 완만한 오르막이 끝나면 능선에 닿게 되며 전망이 탁 트인다. 지금까지 시야를 가리던 숲은 사라지고 넓게 펼쳐진 초지 저 멀리 돌탑이 아련하게 보인다. 산 중턱에 수림이 우거지고 정상부위에 초지가 펼쳐지는 전경은 몽골 중부와 북부의 특징이다. 초지 중간중간에 산림이 자리하고 산림 사이사이에 초지가 펼쳐지는 모습은 특이한 몽골만의 전경으로 한 폭의 그림 같다. 돌탑을 향해 능선을 1시간 더 걷다보면 체체궁의 정상에 닿는다.

정상은 몽골의 보편적인 산과 같이 완만한 구릉이며 그 중심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즉 구릉 위에 턱하니 날아와 앉아 있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 덩어리는 울산바위에 비길 바 아니지만 그래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성산으로 불리리라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동행한 현지인들은 점심도 안 들고 오면서 깡통에 무언가를 정성스럽게 담아왔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감격해 하는 동안 그들은 라마의 깃발이 걸린 오부스(Ovoos 돌탑으로 네팔이나 티벳에서 룽다를 장대에 묶어 세우는 돌무더기)에 작은 제단을 만들고 작은 잔에 힘들게 들고 온 아이락(말 젖을 발효해서 만든 술로 일상의 음료 중 하나)을 올린 후 참배한다.

몽골고원에서는 푸른 이리와 흰 늑대가 같이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몽골족 스스로 자신들은 푸른 이리와 흰 늑대의 자손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삭막하고 척박한 땅, 태어나 죽을 때까지 보이는 끝없는 들판과 하늘이 마주 달리는 광활한 광야, 그 곳이 몽골이다. 그 몽골에는 주인인 텡그리가 있다. 몽골인들은 들판을 달리며 텡그리를 외쳤고 싸움터에서 죽음을 직면해서도 텡그리에게 감사했다.

죽음을 맞이한 몽골전사는 텡그리가 내 목숨을 거두어 하늘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용감한 최후를 맞았을 것이고 위대한 전사 칭기즈칸은 전투가 있기 전날 산에 올라가 눈물로 텡그리 신께 빌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의 신이 바뀌었다. 언제부터인가 몽골고원에서 벗어나면서 이리와 늑대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서 그들은 새로운 신을 섬겼다. 새로운 신을 섬기면서 몽골인들은 야성을 잃어 갔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체체궁산은 몽골인들이 텡그리(하늘신)을 믿었던 때의 성산이다.

알타이산맥의 지존 뭉크하이한

알타이 산맥은 크게 몽골알타이, 시베리아알타이로 나누며 몽골알타이는 다시 고비알타이와 몽골알타이로 나뉜다. 알타이는 몽골어로 ‘금으로 이루어진’이란 뜻의 알탄(Altan)에서 유래되었다. 알타이의 최고봉은 몽골알타이에 속한 타반 보그산의 후이뜨ㅇ봉(4355m)이며 시베리아 알타이의 최고봉은 벨루카산(4509m)이다.

우리가 이번 등반여행의 목표로 삼고있는 뭉크하이한산은 몽골 알타이의 제2위봉이며 타반보그가 최고봉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몽골 최고봉 대접을 받던 신성의 상징이었다. 아직도 시골의 촌부들은 뭉크하이한산을 최고봉 아니 텡그리가 머무는 성봉으로 알고 있다. 뭉크하이한산은 3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고봉은 4362미터로 몽골 독립의 아버지인 수후바트르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그러나 수후바타르는 긴 설벽을 통과해야 하는 등 등반이 쉽지 않아 그중 두 번째 높은 발란친(4123m)을 등반 대상지로 삼았다. 발란친은 정상부근의 만년설을 제외하고는 험한 너덜 지대지만 비교적 안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뭉크하이한 산을 찾아가는 길은 구법여행과 같이 길고 단조로우며 기대를 갖게 한다. 우선 구소련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3시간을 서쪽으로 날아가 호보트에 내린다. 몽골에는 정기적으로 비행기가 취항하는 도시가 다섯인데 호보트는 그중 하나로서 몽골 내에서 3대 도시에 들어갈 만큼 큰 도시다.

황량한 알타이의 중심인 호보트는 나무 하나 없는 황무지이지만 삭막함을 보상하듯 푸른 하늘과 맑은 구름 그리고 다양한 색조의 구릉이 자리했다. 우린 짐을 비행기에서 차로 옮겨 싣자마자 뭉크하이한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몽골을 여행하다 보면 반쯤 비워놓은 그들의 마음과 자연처럼 살려는 자세를 조우하게 된다. 3개월에 한번씩 이사가야 하는 그들의 환경에 집도 집기도 가구도 많이 필요 없다. 그저 살만큼만,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남은 것을 누가 가져가든 이미 마음을 비운다. 양을 막내자식으로 여기는 그들의 습성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양을 잡는 애정에서 자연습성을 찾을 수 있다.

어차피 먹기 위해 죽여야 한다면 가족이기에 고통 없이 죽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바로 자연 앞에 솔직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먼저 심장부위에 손이 들어갈 만큼 칼로 찢는다. 그러고는 손을 넣어 순간적으로 심장을 비틀어 쇼크사하게 한다. 순식간에 벌어지므 로 작은 반항 하나 없이 양은 눈을 감고 만다. 그리고 주인은 주먹을 넣어 밀면서 가죽과 고기 사이를 분리하기 시작하는데 양의 가죽을 벗길 때에도 피 한 방울을 대지에 내 놓지 않는다. 만약 피 한 방울이라도 대지에 흘리면 그 양은 먹지 않는다니 양에 대한 최대의 예우가 아닌가.

서울의 한 동네만도 못한 호보트시를 벗어나자 이내 아스팔트길이 끝난다. 비포장 도로이지만 평탄해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렇게 달리기를 5시간, 햇빛을 받아 다양한 색조를 발산하는 구릉들과 파란 하늘, 하늘에 맞닿은 넓은 들판, 둥실 떠다니는 구름,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광경뿐이다. 구릉은 파란색,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물감으로 칠한 듯하다. 히말라야에서 본 흰 산, 카라코람에서의 검은 색의 바위산, 우리 나라의 초록의 산, 인도네시아의 노란색의 화산 등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색깔의 산들을 보았지만 이 모든 산이 한 곳에 형제처럼 서로 어울려 있는 모습은 처음이다.

색감이 주는 신비함에 빠져 내 눈은 정신을 잃고 그 속으로 무섭게 질주해 들어간다. 첫날은 테헤르 동굴(Tschkher Cave)까지 5시간을 달려 야영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뭉크하이한산 아래 야영지까지 7시간을 달렸다. 직선거리로 달리면 총 7∼8시간이면 족한 거리지만 보다 아름다운 알타이의 자연을 보기 위해서는 테헤르 계곡을 경유해 4시간 정도 두르는 것은 감수해야 했다. 야영지(2700m)에 도착하니 바로 앞에 발란친봉이 버젓이 서있고 주봉인 수후바타르봉은 뒤에 숨어 보이질 않는다. 야영지에 도착한 다음날 수후바타르 베이스캠프인 3500미터까지 트레킹을 했다. 수후바타르를 정점으로 왼편에 프로브딘봉(4008m)과 오른편에 발란친봉(4123m)이 포진한다.

세 봉우리를 잇는 능선 아래로 넓은 계곡이 펼쳐지고 계곡 끝에는 빙하에 씻겨 쌓인 돌무더기 산이 나온다. 이 산에 오르면 호수가 하나 있고 그 호수가 수후바타르 등반 베이스 캠프다. 가볍게 수후바타르 목전까지 갔다오는 이 트레킹은 왕복 4시간이면 갔다올 수 있으므로 발란친과 수후바타르 등반 전 몸을 풀기 위해 가볍게 갔다올 수 있는 트레킹으로 최적지다. 정찰을 다녀온 결과 수후바타르 베이스 캠프에서 긴 설벽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 것은 동계등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여럿 참가한 이번 팀의 특성상 위험 부담이 컸다. 그래서 안전한 발란친을 등반하고 발란친에서 수후바타르까지 거리가 짧으면 수후바타르 등반을 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모든 것을 결정하고 누우니 아침이 다가오도록 잠이 오질 않는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뭉크하이한의 제2위봉 발란친봉을 오른다는 설렘과 기대도 그렇지만 정상 부위의 상태를 알 수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뭉크하이한 등반 전 인터넷과 외국여행 등산관련 서적을 무수히 뒤져봤지만 그 정보란 오리무중이었다. 타반보그에 대한 자료는 많았으나 뭉크하이한산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0년 전 철없이 왔던 기억을 더듬으며 뭉크하이한산을 기획하였지만 그때의 기억만으로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등산 가이드로 동행한 바얄이란 친구가 경험이 많아 안심이 되었다.

눈 덮인 스크리지대를 지나

아침 5시, 야영지를 출발해 발란친봉 아래까지 오르막길을 따라 1시간 30분을 걷는다. 여기서부터는 스크리지대다. 이런 큰 규모의 스크리지대는 나로서도 처음이다. 길을 막는 돌덩이가 너무 커서 돌아가야 하는 게 대부분이고 너무나 넓고 길게 펼쳐져 있다. 아마 해저면 이었던 몽골이 습곡현상으로 융기하였기 때문에 생겼으리라 생각된다. 바다 속 진흙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화강암으로 변성한 것으로 키나발루 정상을 상상하면 발란친봉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다.

좌측 절벽을 끼고 바위 사이를 돌아 올라가기를 6시간, 드디어 스크리지대가 눈에 덮인 지점에 도달했다. 눈 녹은 부분을 볼 때 만년설을 거두어 내면 계속되는 스크리지대가 연상되지만 눈 덮인 것이 이리 고마울 때가 없다. 스크리지대는 남쪽 능선까지 이어지므로 눈이 덮인 지점은 경사가 거의 평지에 가까울 만큼 완만하다. 12발이나 8발 아이젠만 있으면 누구나 이 눈길을 따라 쉽게 정상에 닿을 수 있다. 그러나 워낙 적설량이 적은 몽골의 특성상 흰눈이나 습설을 꿈꾸는 것은 무리다. 태양에 눈이 녹아 엉겨붙어 썩은 얼음과 피켈이 튀어나올 만큼 굳게 얼은 빙판길이다.

그래서 아이젠을 찬 발걸음 하나하나 힘을 주어가며 안자일렌을 하고 걷는 것이 안전하다. 발란친에서 내려다 본 알타이의 경관은 여느 산과 다를 바 없다. 눈 덮인 봉우리 아래 길게 혀를 내밀고 있는 빙하, 멀리 보이는 초록의 구릉 어느 하나 히말라야의 산과 다를 바 없었다. 발란친과 주봉 수후바타르와의 거리는 약 2킬로미터. 암부로 약 100미터를 내려간 다음 300미터 정도 설사면을 올라야 한다. 거리상으로는 바로 눈앞에 있지만 왕복 3∼4시간이 소요된다. 우리는 전원 발란친에 오른 것으로 만족하고 하산하려 했지만 그래도 주봉을 목전에 두고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광주 요산회팀은 자체적으로 회의를 했고 그 결과 가장 체력이 좋고 당일로 무사히 하산할 수 있는 최동식, 조길훈 두 회원을 대표로 수후바타르 정상에 보내기로 했다. 물론 2명의 등산가이드를 모두 같이 보내기로 하고 나머지는 하산을 시작했다. 발란친 등반 성공으로 만족한 전원은 수후바타르로 향한 2명의 동료를 뒤로하고 긴 하산길에 들어섰다. 하산은 3시간 정도면 가능하지만 전원 아침부터 굶은 터라 발걸음이 한없이 처진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몽골의 낮은 9시가 되어야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며 10시가 되어도 산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밝다는 것이다. 3시에 하산을 시작한 우리는 6시경 전원 야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수후바타르로 향했던 동료들도 상상을 뛰어 넘어 8시경에 돌아왔다. 등반을 정리하며 우린 이런 결론을 얻었다. 몽골의 산은 오르기 보다 오르는 곳까지 가기가 힘들다. 몽골의 산은 날카로움보다는 부드러움이 앞선 산이다. 거대한 흰 산처럼 한 눈에 위축되게 하는 것은 없지만 밋밋한 구릉을 오르면 끝인 줄 알았던 봉우리가 뒤에 또 있고 끝인가 싶으면 또 있어서 마음을 지치게 하는 산이다. 그리고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등산로가 전혀 정비되어 있지 않아 보기보다 훨씬 어렵다. 일년에 고작 10명도 오는 이가 없는 이 깊은 오지에 오는 사람이 어디 흔한 일인가.

결국 산행은 만족스런 결과를 얻고 끝났다. 그러나 등반이 끝났다고 아늑한 잠자리와 문명세계로의 전환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시 8시간 차를 타고 달려나가야 그나마 작은 도시가 나오고 3시간동안 비행기를 타야 도시 울란바타르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음날 호보트로 귀환했다. 벌써 6일이 지난 뒤다. 쉬지 않고 달려 총 8시간이 걸렸다. 유일한 호텔인 부야르트(Buyart)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 내 작은 배낭에 들어있던 2대의 카메라는 6통의 필름과 함께 사라진 뒤다.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지만 경찰에 신고하는 것보다는 작은 마을이므로 광고를 하면 필름만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가이드를 시켜 동네방네 알리고 다녔다.

난 도둑이 밤사이 문 앞에 필름을 던져놓고 가리라 기대했다. 우리의 작은 탐험을 알리는 데 그 필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침을 맞아 그 어느 곳에도 필름은 없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남았지만 그래도 몽골의 자연은 인상적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한 칭기즈칸의 자손이었으며 반쯤 비워 논 마음을 갖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지금도 뭉크하이한산의 매력을 잊을 수 없다. <글 사진|채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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